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Musee du Louvre) 북쪽, 루아알 광장(Place du Palais Royal)에서 쭉 뻗은 오페라 거리(Avenue de L’Opera)를 따라 가면, 정면에 보이는 것이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Opera National de Paris, Palais-Garnier)이다. 파리 오페라 혹은 가르니에 궁으로도 알려져 있다. 신바로크 양식 스타일로 샤를 가르니에에 의해 설계된 건물은 건축학적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도 시민과 관광객들의 가장 사랑을 받는 곳이 바로 이곳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이다.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 시기에 건립 계획이 세워졌다. 당시 오페라 하우스 건립 계획은 당대의 이름난 모든 건축가들의 구미를 당기며 공모가 이루어졌다. 171건의 응모 작품 중 로마와 그리스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35세의 무명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가 우승하였다. 그는 기능적인 계획과 프랑스 제2제국 시대의 기호를 잘 조합한 아이디어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다.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1862년에 착공되어 프랑스 제2제국 시대가 끝난 후인 1875년에 준공되었다.
건축기간은 무려 15년간 계속되었는데, 특히 건물의 지하에서 발견된 수로 때문에 건축물의 토대가 세워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무대에 기중기(현재 이 구조는 엘리베이터 시스템으로 작동) 설치시는 예산 부족으로 공사의 난항을 겪었다. 바그너가 그의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했던 것처럼 오케스트라를 보이지 않게 하려고 하는 계획마저 예산 부족으로 포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오케스트라 피트 플랜은 지휘자가 무대 가장자리에 서서 청중과 오케스트라를 마주 보게 연주를 하였다.
또한 공사 기간 중 프랑스 사회는 1867년 멕시코 출병 실패, 1870년 보불 전쟁 패전과 나폴레옹 3세의 망명, 1871년 파리 코뮌과 제3공화제의 발족 등 프랑스 근대사의 주요 변화들로 인해 정치·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사회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가르니에는 그의 일생 역작을 탄생시켰고, 건축 시 반영되지 못했던 다양한 그의 아이디어는 후에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오페라 하우스를 건축할 때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건립과 함께 그 화려함으로 인해 국제적 유명세를 타게 된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대리석과 청동, 금박을 다용한 파사드와 모자이크 장식 천장, 대리석, 조각 등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건축자재는 당시 최신의 소재였던 철을 사용하여 종래 극장 건축에서는 불가능했던 거대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00여 좌석이 5층의 객석으로 균형 있게 배정되어 관객 수용 규모에서도 당시 최대의 극장이었다.
관광객과 파리 시민들의 휴식처로 늘 북적거리는 입구 앞의 돌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면 네 개의 기둥 앞에 헨델, 글룩, 륄리, 라모의 좌상이 눈길을 가장 먼저 끈다. 오른쪽에는 매표소와 안내소, 오페라와 발레에 관한 책 등을 파는 상점이 있다. 정면에는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그랑 에스 칼리에(Grand Escalier)’라고 불리는 대리석의 호화로운 계단이 나타난다. 대리석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퓨티어의 샘물'이 있으며 손님용 원형 홀로 이어진다. 계단을 오르면 광장에 면한 넓은 휴게실이 나오는데, 그 앞에는 베네치아풍의 모자이크로 장식한 둥근 천장의 다실이 있다. 이곳을 지나면 화려한 벽걸이 융단으로 꾸며진 전시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한때 황제가 건축가 가르니에에게 건물 내부에 대해 “이게 뭐냐?, 이건 스타일이 아냐”라고 회의적으로 물었을 때, 가르니에는 “이것은 바로 나폴레옹 3세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는 바로 이 오페라 하우스 내부의 호화 장대함을 그대로 반영하는데, 크림슨 색깔과 황금 색깔로 장식된 내부는 오펜바흐가 재미 삼아 조롱했던 부르주아의 꿈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큰 돔은 현재는 댄스 스튜디오로 쓰이는데, 예전에는 그 유명한 샹들리에(오페라의 유령에서 바로 그 샹들리에)를 청소하기 위한 빈 공간으로 사용되었었다.
건물 자체는 건립 후 전 세계 극장 및 오페라 하우스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었다. 특히 19세기 후반 폴란드의 바르샤바 필하모니 홀, 우크라이나 국립 오페라 하우스,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와 상파울루의 시립극장, 베트남의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등은 대표적으로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를 그 원형으로 하고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페라 하우스 개관 이래 공간 규모의 거대함에 놀란 나머지 당시 관객뿐만 아니라 극장에 종사하는 직원, 단원들 사이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이 숨어 있는 거 아닌가?"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추리 소설가 가스통 루르(Gaston Leroux)는 이에 착상하여 오페라의 유령을 쓰게 되었다. 특히, 공간의 몇 가지 사실은 더욱 소설의 현장감을 더해 주었다. 실제로 지하 마구간을 증축할 때 수맥에 직면한 직원이 수몰된 방이 실제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는 지하 하수도 위에 있었으며, 실제 샹들리에 부품이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난 사실 등을 소설에 적절하게 활용하였다.
오페라 유령의 소설이 설정되었던 그 당시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무려 1,500명의 직원들이 있었으며, 심지어 앞마당에는 오페라 배우들의 백마를 위한 마구간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뮤지컬에서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그 당시 정치적 음모와 분열의 온상이었다. 프리마 돈나로부터 무대기술 직원들까지 이 오페라 하우스는 음해와 음모로 점철되었다. 모든 관계자들이 이권을 위한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자기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이전투구의 양상이 이어졌다.
오늘날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의 공간은 가스통 루르가 소설에서 묘사한 것과 거의 흡사한 형태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3,672평의 부지에 객석은 전체 극장 공간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건물 내부는 17층으로 되어 있는데 이중 7층부터는 바로 무대 밑에 위치하고 있다. 오페라 배우들의 말들을 위한 마구간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아직도 이 건물 밑에는 바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관객들을 매료시킨 호수(사실은 지하 하수도)가 있다는 점이다.
직원 한 명이 공연 소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벌을 오페라 하우스 옥상에서 사육하였는데, 주위에 정원이나 가로수 길이 많아 벌들이 살기는 최적의 장소였다. 지금은 이 옥상의 벌집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옥상에서 사육된 벌에 의해 만들어지는 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홍차 전문회사 포션(Fauchon)사에 의해 ‘오페라의 꿀’로 판매되어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의 중요한 기념 선물로서 출연자나 관객에게 환영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시 독일군의 파리 입성 후 휴전 조약을 맺은 다음날 아돌프 히틀러는 몰래 파리 당일 관광을 즐겼는데, 그 순행의 시작이 바로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였다. 오페라에 조회가 깊었던 히틀러는 극장의 내부 구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점령 하에서는 독일군 관리 하에 극장 운영을 계속하였고, 바그너의 독일 오페라가 주요 프로그램을 점령하였다.
유럽의 여타 오페라 하우스와 달리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1962년 마르크 샤갈의 천정화를 제외하고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사실 오리지널 천정화는 라파엘로를 존경했던 폴 보들리의 ‘선율과 조화’였는데, 샤갈은 이 원형을 해치지 않기 위해 오리지널 프레스코에 판화를 덮어 씌우고 그의 새로운 작품을 그리게 되었다. 신선한 감각이 살아난 천정화 ‘꿈의 꽃다발’로 탄생되었는데, 소재는 다양한 오페라 작품들에서 차용하여 오페라 축제를 묘사하고 있다. 샤갈의 천정화는 이제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어 관광객들을 매료시킨다.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화려함에 있어 세계의 오페라 하우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다만 너무나도 호화로운 극장에 비해 최근의 공연 자체는 솔직히 그다지 감탄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극장 명칭은 그대로 오페라 하우스를 쓰지만 오페라는 거의 열리지 않고 발레와 오페라 갈라, 관현악 연주회를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진다. 건립 당시 황제의 꿈과 부르주아의 기쁨 등 일반인들에게는 사실 어필하기 힘들었던 이 오페라 하우스는 1939년 국영이 되었으며, 1989년 바스티유에 오페라 하우스가 생긴 이래 지금은 발레 전문 공연장으로 역할을 다하며 관광객들의 주요 투어 코스가 되었다.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의 유용한 정보
건축 연도 : 1875년
건축가 :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
객석 수 : 1,979석
객석 구성 : 말발굽형 객석, 5층의 박스석, 1개의 발코니
프로시니엄 : 넓이 13.25m, 높이 9.8m
무대 : 넓이 32m, 높이 34m, 폭 24.5m
시즌 기간 : 9월부터 6월까지
티켓 가격 : 5€~160€
극장 가이드 투어 : 매주 수요일과 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홈페이지 : http://www.operadeparis.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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