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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서 Jan 03. 2023

새해를 맞이해 유서를 써봤습니다

남은 인생과 휴가를 소중하게 여길 것을 다짐하며...

   연말 한 주의 휴가가 손에 잡힌 모래알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아차! 정신 차려보니 벌써 12월 30일 금요일을 맞이한 아침이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 휴가가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니! 하루종일 입고 있던 잠옷을 내던지고 오랜만에 외출복을 입고 밖으로 뛰어나갔었다. 부랴부랴 미술관엘 가고, 렌즈도 사고, 겨우 몇 가지 외부 활동을 억지로 수행한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누웠다. 누워서 지난 휴가를 떠올려보니, 연말 맞이 청소도 안 했고, 휴가 때 읽어야지 하고 내내 벼르던 책들은 아예 펼쳐보지도 않았고, 피아노 뚜껑은 열지도 않았고, 피부과는 늦잠으로 못 가고... 소파에 너무 오래 누워있어서 허리만 욱신거렸다. 


내 휴가..ㅠㅠㅠㅠㅠㅠ


     언제까지나 휴가일 것 만 같은 넉넉한 마음에 오늘의 휴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냇물 속에 빠진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내일 하겠지 뭐~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출근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내 휴가의 끝자락이 보일 때쯤 흘려버린 시간들이 후회되고, 또 남은 휴식의 시간들이 빛이 났다. 




    삶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 앞에 인생이 까마득하게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끝이 보일 텐데도, 우주의 관점에선 찰나의 순간일 텐데도, 나는 금 같은 하루하루를 게으르고 오만한 태도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2022년이 더욱 그런 날들이었다. 회사에서도 일상에서도 뚜렷한 계획과 목표 없이 흘러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잔잔해진 삶 위에 떠다녔다. 만약 내일 당장 삶이 이대로 끝난다면, 내가 정해야 하는 목적지는 어디인가. 


    휴가를 허망하게 흘려보내고 나니 내 인생도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날까 봐 갑자기 위기감을 느꼈다. 삶에 대한 태도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평소 한 번쯤 써보려 했던 유서를 써보기로 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일도 '내'가 연속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유서를 쓰면서 미리 내 인생의 온점을 찍어보면, 좀 더 죽음이 실감 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유서의 첫 구절은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처음에는 '죽음'이나 실존'에 대한 나의 평소 감상 따위로 시작했다. 죽음 앞에 실존적 고민이 무슨 소용이람. 죽는 거라니까. '내'가. 내일 당장!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적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자기 비난으로 시작해서 비하로 끝났다.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어떤 게 아쉬운 삶을 살았는지, 어떻고 저떻고. 어차피 내일 내가 사라질 테니 옛다 나의 치부들을 모두 보아라!라는 투의 고발문이었다.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싶은 욕구에서 써낸 글은 그냥 자기 파괴적이기만 했다. 속은 시원하지만 이것도 삭제. 


    곰곰이 생각했다. 이 글은 누가 읽을 것인가. 언제 읽을 것인가. 유서라는 본질을 고려할 때, 당연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죽고 난 뒤에 본 글이 될 테다. 그럼 이 글은 남은 사람들에 대한 편지였다. 




안녕하세요. 주위 사람들. 저는 죽었습니다.  


    내 유서의 첫 시작이다. 나의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여보는 것으로, 또 그를 주위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려는 목적으로 선언했다. 나에게도 죽음을 더 사실적으로 상상하게 되는 트리거가 되었다. 이대로 잠들어 깨지 못한다면....


속 시원하게 한 번 모두의 기대를 깨 보면, 지루한 삶을 한 번 탈출해 보면, 진탕 싸움을 해보면, 이상한 짓을 하거나 다 부셔보면 좋았겠네요. 솔직하지 못한 태도로 삶을 살았다는 부분이 가장 후회됩니다. 


     이어서 여러 후회되는 일들이 떠올랐다. 사회적 규범과 주위 사람들(특히 부모님)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한 지나친 노력들이 후회스럽다.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나 소중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우물쭈물하다 흘려보낸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어차피 이렇게 죽을 건데 어설프게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질주해볼 걸, 왜 남에게 욕먹을까 걱정하면서 몸을 사렸을까.


이기적이고 어딘가 많이 비틀린 저와 달리, 엄마는 이타적이고 한결같고 또 다정하고 사랑의 말을 많이 해주고, 갖은 풍파에도 흔들림 없는, 마음의 힘이 센 사람입니다. 그 속에서 전 늘 안심하고 행복했답니다.
늘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삶의 동반자를 자처해주는 인내심 강하고 다정한 친구들을 다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혈연으로 묶이지는 못했지만, 피보다 진한 우정의 힘으로 나를 오래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후회를 한 바탕하고 나서 남아 있는 기쁨을 세보았다. 내 삶은 후회도 기쁨도 많았다. 내 기쁨은 바로 사람이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얘기를 적었다. 누구나 '엄마'라는 말은 눈물의 스위치가 아닌가...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한 얘기들을 적는데 신파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친구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 앞에서도 눈물을 쏟았다. 유서를 다 적고 보니 글보다 흘린 눈물의 양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많이 경험하고 많이 어울리는 그런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후회와 감사함을 거친 후, 내 유서의 마지막을 끝내는 문장이다. 유서는 나를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쓴 편지라는 목적으로 써 내려갔지만 다 적고 읽어보니 이 글의 독자는 내가 되어야 했다. 많이 경험하는 데 삶의 지향점을 두고, 늘 다정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2022년의 내가 미래를 살아갈 나에게 남긴 충고로 다가온다. 


Interstellar(2014), Paramount Pictures 

   

    인터스텔라 하면 떠오르는 그 대사, 'STAY'처럼 죽을 날을 받아둔 평행 우주의 또 다른 내가 지금의 나에게 남긴 메시지 같기도 하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가 사형에 처해졌을 때 비로소 삶을 제대로 인식하고 행복을 느낀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슬프면서도 동감했다.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해야 삶을 더 가치 있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내년 연말에도 유서를 써볼까 한다. 그 후년에도 말이다. 




표지 사진 출처 : Photo by Debby Hud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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