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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서 Mar 21. 2023

30분을 쉬지 않고 달려보자

    초보 러너에게는 10K나 하프나 풀마라톤이나 거기서 거기다. 3~4분도 연속해서 달리기 힘든 사람에겐 10K 나 42K나 매 한 가지로 까마득한 고지라는 말이다. 나의 1차 목표는 30분 달리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런데이로 실내 달리기를 한 달 정도하고 나니, 3분을 연속해서 달릴 수 있게 됐다. 3분은 1분과 2분 달리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막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끝나던 2분 달리기에서, 멈추지 못하고 1분이나 더 달려 3분을 채우는 일은 숫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3분을 달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때, 어떤 장소에서 들어도 심장을 뛰게 하는 BGM 리스트를 구성하는 과정이었다. 여기 심사 숙고한 리스트가 있다. 

선정 원칙
장르도 국적도 관계없이 비트만으로 심장을 뛰게 하는 곡으로 선별하라

2NE1 - 내가 제일 잘나가 (러너를 위한 곡, 그 잡채)
브루노 마스 -  Runaway Baby 
트와이스 - YES or YES
크라잉넛 - 말달리자
현아 - 버블팝
싸이 - 챔피언

     경쾌한 BGM에 맞춰 달리다 보니, 어느새 3분 달리기고 2분 걷기를 총 6번 반복할 수 있는 강인한 폐기능을 갖춘 러너(ㅋㅋ)로서 1차 탄생할 수 있었다. 




    무려 4분까지도 연속해서 달릴 수 있는 나 자신에게 크게 만족한 후,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히 한강으로 진출했다. 5분 달리기를 할 차례였다.

5분을 어떻게 달리나요...


    5분 달리기는 한 곡 하고도, 반 곡을 더 들어야 하는 긴 시간이다. 심박이 끝까지 상승한 상태에서 거의 삼분이나 더 달려야 하는 새로운 힘듦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5분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은 데는 야외 달리기의 시작한 기쁨도 한 몫했지만, 새로운 소비가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드디어 러닝화를 구매했다. 돈을 쓰면 무형의 '의지'도 구매할 수 있었다. 십만 원을 넘게 쓰고 난 후, 달리기에 대한 결심이 단단히 굳어졌다. 5분이든 7분이든 달려야만 했다.


나이키 리액트 인피니티 런 플라이니트 2 (원래 이런 색이었지...)


    운동은 장비빨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마찰력이 더 좋고 푹신한 운동화에 러닝용 양말까지 신으면 왠지 제대로 달리는 사람처럼 보이고, 스스로를 진짜 러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결국 더 잘 달려지는 것만 같았다. 코스튬 효과는 실재했다.




    3분 달리기 시절 앞으로의 코스를 미리 살펴보면서, 와 이걸 어떻게 달려? 구간이었던 7분 달리기와 10분 달리기까지 장비빨로 무사히 해치우고 보니, 30분 달리기라는 고지가 꽤 손에 잡힐 듯한 거리감으로 다가왔다. 


    뒤돌아보면 오히려 4분이나 5분 달리기가 더 힘든 문턱이었다. 아직 지구력이란 능력이 아예 없는 일반인의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고비를 넘어서니 lv.1의 지구력을 탑재한 느림보 '러너'로 탈바꿈해 있었다. 완전 다른 세계였다. 


    15분 달리기나 20분 달리기를 앞에 두고도, 두려움과 긴장에 이어 기대감이 섞이기 시작했다. 목표하던 지점까지 포기하지 않고 통과했을 때, 그 짜릿한 성취감이 충분히 여러 번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점점 달리기가 즐거워졌다. 



    어느 일요일 오전, 며칠 전부터 별러 왔던 30분 달리기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복장을 갖추고, 비장한 마음으로 오래간만에 일요일 오전 외출을 감행했다. 한갓진 한강 변으로는 편안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초여름의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그 사이로 죽을 것처럼 달리는 내가 있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1분, 3분, 5분, 10분, 15분, 20분 지점들을 하나하나 넘어섰다. 25분을 넘어서자 드디어 실감이 됐다. 30분을 진짜 달리는구나. 남들은 아무 준비 없이도 쉽게 달리는 거리겠지만, 나에게는 '평생 할 수 있을까?' 불가능의 물음표만 가득했던 높은 탑이었다. 오르고 보니 조금 실감이 난다. 불가능은 진짜 없었나 보다. 


마지막 달리기에 온 힘을 다하고, 보상으로 사 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3개월 동안 26번에 달리기 끝에 30분 달리기를 완료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26번 있었고, 26번이나 포기하지 않았던 이 계절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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