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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Jul 05. 2023

피렌체의 아침 그리고 밤

 빨간 싱크대 선반에 올려진 모카포트를 꺼냈다. 보일러 통 압력추 아래까지 찰랑거릴 정도로 생수를 따르고 바스켓에 모카포트용 일리 커피를 가득 담았다. 그 위에 반짝이는 파란색 컨테이너를 올리고 꼭 잠근다. 이제 준비가 된 모카포트를 인덕션 위에 올린다. 불의 세기는 8 정도. 이제 5분만 기다리면 된다. 그 5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거실에는 어젯밤에 와인을 마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치즈를 담았던 접시, 와인잔으로 쓰기에는 조금 작은 듯한 세 개의 잔을 싱크볼 안으로 집어넣고, 붉은 테이블에 묻은 얼룩을 닦아 낸다. 잠시 후 치릭치릭 치리리릭 하는 소리가 난다. 커피 준비가 완료되었다.


 에스프레소 잔에 커피를 옮긴다. 엄마를 위한 커피에는 끓인 물을 조금 더 붓고, 함께 먹을 간식도 준비해 둔다. 집에서 가져온 Marshall 블루투스 스피커와 폰을 연결한 후 음악을 틀었다. ‘좋은 아침이야 참 좋은 아침이야~‘ 노래가 흘러나온다. 음악소리를 듣고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다. 어제 트러플 치즈가 맛있다며 많이 먹더니만. 이제 방으로 들어가 그를 깨운다. 그는 5분만 하면서 이불을 끌어안는다. 지금 시간은 아침 7시 30분. 조금 더 자도록 내버려 두기로 한다. 나의 하루 중 가장 바쁜 아침 준비 시간이다.  


피렌체의 아침

 피렌체에서 아침은 매우 소중하다. 관광객이 도시를 가득 채우기 전, 아름다운 피렌체 거리를 느낄 수 있는 짧은 시간. 단체 관광객들은 아침 10시부터 몰려들기 시작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아침을 느끼기 위해서는 늦어도 9시 전에 준비를 마치고 나가야만 한다.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챙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쓴다. 이곳의 햇살은 아침부터 따갑게 살갗을 찔러댄다. 모자와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뜨기도 힘들다. 우리의 아침 산책코스는 비슷하다. 숙소에서 산타 트리니타 다리를 건너서 산토 스피리토 성당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에서도 가장 사람이 많은 곳이라 이 시간이 아니면 건너가기 힘들다.


 피렌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한 장소는 산토 스피리토 광장이다. 피렌체 두오모의 거대한 돔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의 생에 마지막 작업이라는 산토 스피리토 성당이 있는 곳. 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파사드는 다른 성당과 비교해 보면 조금 밋밋하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단순함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중세의 성당이라 믿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곡선, 균형과 비례. 게다가 이 성당은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미켈란젤로가 십 대 시절 작업했다는 십자가를 보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그것도 2유로 밖에 하지 않는다. 유명하다는 성당 입장료가 대부분 9유로인걸 생각하면 굉장히 저렴한 가격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볼 게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성당 내부는 브루넬레스키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피렌체 쟁쟁한 가문들의 예배당을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이 광장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광장을 둘러싼 식당과 카페에 있다. 두오모가 있는 아르노강 건너편에 비하면 가격도 저렴하다. 광장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 한잔에 크루아상 하나를 먹으면 아침식사로 충분하다.  


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아침과 밤

 아침을 산책을 하고 나면 엄마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가까운 시립도서관으로 간다. 이 도서관 역시 피렌체에서 애정하는 공간 중 하나다. 오래전 수녀원으로 쓰였던 이 도서관은 전쟁 때 병원으로 쓰였다가 시에서 사들여 리모델링을 거친 후 도서관으로 공개되었다. 도서관 2층에는 카페가 있는데, 이 카페테라스에서는 두오모의 돔이 잘 보인다. 가격도 저렴하고 전망까지 좋은 이 카페는 당연하게도 늘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이탈리아어뿐 아니라 영어를 쓰는 학생들도 꽤나 많이 보인다. 피렌체 대학교 교환학생일까. 디지털 노매드? 여행 와서까지 공부를 하는 학생들?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아서 정답은 알 수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저녁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밥을 한다. 이국의 재료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아서 파스타 아니면 리조또다. 우리는 마늘과 고추를 잔뜩 넣어서 한국의 향을 조금 보탠다. 다행히 엄마도 맛있게 잘 먹는다. 한 번은 엄마가 한식을 먹고 싶어 하셔서 근처 한식당을 간 적이 있다. 우리는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그리고 닭갈비를 주문했다. 이곳의 맛은 한국이지만 운영방식은 이탈리아식에 가까워서 공깃밥과 물을 사 먹어야 한다. 기본 반찬이 조금 나오기는 하는데, 양이 너무 작아서 따로 주문하지 않으면 아쉽다. 가격도 한국에서 먹는 걸 생각하면 너무 비싸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끼는 한국의 맛이라 만족스럽긴 했다.


 저녁을 먹고는 다시 산책을 나선다. 피렌체가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시간. 아르노 강을 낀 피렌체의 일몰은 너무나 아름답다. 처음에는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올라가서 일몰을 보고 내려왔다. 그런데 이 미켈란젤로 광장 역시 피렌체에서 사람이 많은 곳 중 하나다. 다들 일찌감치 서쪽을 향해있는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피자를 먹으며 맥주를 마신다. 빈자리는 찾기 어렵다. 대낮부터 자리를 잡지 않는 한 사람 머리 위나 어깨옆으로 삐죽한 공간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다리 위에서 일몰을 본다.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보는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 서쪽으로는 아르노 강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저물어가는 햇살에 비친 베키오 다리가 있다. 난간은 걸터앉기 딱 좋은 높이고, 다리의 폭이 좁아서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다. 문제는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다. 저녁 무렵이 되면 난간에 걸터앉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옆에 있는 알라 카라이아 다리로 간다. 이곳은 사람이 많지 않아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다.

 

화려한 피렌체의 밤

 붉게 물든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검푸른 빛으로 변해갈 무렵, 여기저기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빨간 셔츠에 헐렁한 검은색 바지를 입고 검은 곱슬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은 남자가 회색 쓰레기통을 뒤집어 긴 나무 막대를 꽂아 만든 악기를 연주한다. 막대에 달린 쇠줄을 튕길 때 나는 소리가 마치 더블베이스 같다. 마른 체격의 할아버지는 알토 색소폰을, 둥그렇게 배가 나온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트럼펫을 연주한다. 절로 몸이 두둠칫 거리는 흥겨운 연주다. 지갑에 가지고 있던 유로 동전을 털어서 통에 넣고는 걸음을 옮긴다. 시뇨리 광장에 입구에는 마른 체격의 남자가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부르고 있다. 둘러싼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흥이 오르는지 가벼운 스텝을 밟기도 한다. 그는 노래를 마치고 우아한 미소와 몸짓으로 인사를 한다. 가지고 있던 동전을 다 털어 넣은 게 아쉬워진다. 가진 현금은 10유로짜리 지폐뿐. 이거면 마르게리타 피자 한판에 젤라토 하나를 먹을 수 있는 돈인데, 하며 지갑을 닫는다. 그가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리를 옮긴다. 피렌체의 밤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광장마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매일 밤마다 공연을 감상한다.


 세상사람 모두가 아는 아름다운 도시에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아름다움은 붐비는 사람들에 묻힌다. 피렌체에 있는 동안은 사람들에 치여 피곤하고 지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나고 나니 생각난다. 사람들을 피해 걸었던 피렌체의 아침 그리고 밤이.



이번 매거진은 민현​​​​​​​​​​ 님과 함께 꾸려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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