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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Jul 20. 2023

피렌체, 신상 찾기

 한 도시에서 한 달 정도 길게 머물 때, 우리는 그곳이 어서 몸에 익기를 기대한다. 들어서는 우리를 향해 씽긋 웃음 지으며 반기는 단골가게를 만든다거나. 절로 발걸음이 옮겨질 만큼 익숙한 골목길을 산책하는 그런 일상 말이다. 그래서 매일 같은 곳을 산책하고, 마음에 드는 가게가 생기면 여러 번 찾아간다. 주인이 우리를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처음에는 엄마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패키지여행의 바쁜 일정 때문에 비엔나에서 커피 한잔을 못 마시고, 알프스 트래킹 중에 사진 한 장을 제대로 못 찍었다며 아쉬워하는 엄마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나의 오해였다. 엄마는 언제 또 여기 오겠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온 김에’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야 하는 거였다. 아무리 폴짝폴짝 뛰며 너무 아름답다고, 행복하다고 외치는 장소도 딱 한 번 뿐이었다. 내일 엄마가 좋아했던 카시네 공원 또 갈까, 그러면 엄마는 뭐 하러 거길 또 가 다른데 가자, 안 가본 곳. 그럼 그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어머님은 신상만 좋아하시네.” 그래서 시작되었다. 피렌체에서 신상 찾기.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 매일매일 다른 장소 찾아가기가.


 신상을 찾기 위해서는 피렌체만으로 부족했다. 기차를 타고 찾아가는 근교도시. 그런 곳이 필요하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은 신상을 찾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다. 역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 대부분은 전광판 앞에 모여있다. 저마다 타고 갈 기차의 플랫폼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알려주면 좋을 텐데, 플랫폼 정보는 기차가 떠나기 10분 전쯤 떴다. 10분 안에 낯선 기차역 안에서 플랫폼을 찾아 걸음을 옮기고, 앉을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게 다 가능한가. 빠듯하지 않은가. 이런 사정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다들 느긋하다. 나만 급한가. 서둘러 걸어가는 나의 뒤로 엄마 역시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럼 그는? 그는 그냥 현지인이다. 뭐 그리 급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괜찮아. 시간 넉넉해.


성벽 밖으로 내다본 시에나 풍경과 비오는 캄포광장


 한때는 피렌체보다 더 부유한 토스카나의 중심도시였다는 시에나. 이 도시는 13세기에 멈추어 있었다. 좁은 길 양옆은 붉은 벽돌로 세워진 높은 건물이 해를 가리고, 그 사이사이 상점들은 아기자기하다. 이웃한 피렌체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도시였다. 온전히 남아있는 성벽 너머로 보이는 토스카나 특유의 푸른 언덕과 사이프러스 나무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이 광경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어 만자의 탑에 오르기로 했다.


 만자의 탑은 푸블리코 궁에 있었고, 궁을 가기 위해서는 캄포광장을 지나야 했다. 비스듬한 조개 모양의 캄포광장 중앙에는 배수구가 있었다. 캄포 광장을 걸으며 엄마는 비 오면 물 잘 빠지겠네,라고 말했다. 물이 어떻게 빠지는지 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탑에 오르기로 예약한 시간이 되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담당자는 타워에 오를 수 없다고 말했다. 창구로 가서 환불을 받으란다. 가지고 온 우산도 없었던 우리는 푸블리코 궁 계단에 앉아 중정으로 쏟아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우르르 쾅!


 그 이후로도 엄마는 어딘가를 걸을 때마다 물 잘 빠지겠네라는 말을 했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아름다운 베르나차와 마나롤라 풍경

 

 친퀘테레. 아름다운 다섯 개의 마을. 여행 전부터 꼭 가고 싶은 곳 중에 하나가 친퀘테레였던 엄마는 평소에 잘하지 았던 화장도 곱게 하고서는 아침부터 우리를 재촉했다. 서둘러 봤자 플랫폼은 10분 전에나 알려줄 텐데도 말이다.


 우리는 미리 친퀘테레 카드를 사 두었다. 이 카드로 다섯 개의 마을을 오가는 기차를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으며, 유료 트래킹 코스 입장료까지 포함이었다. 가장 매력적인 옵션은 기차역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화장실 한 번에 1유로. 당시 환율로 원화 1500원. 화장실 한 번에 1500원이라니 비싸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거라도 있으면 감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공중 화장실 찾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몇 번 고생을 한 이후로는 지나다 화장실 표시가 있으면 눈여겨봐두고는 했다.


 맑은 날을 골라 가서일까. 친퀘테레는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이탈리아 어디나 그렇듯 아름다운 만큼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다섯 개의 마을로 나뉘어서 그런지 피렌체 보다는 걸어 다닐 만했다. 몬테로소에서 베르나차로 향하는 트래킹 코스는 특히 여유로웠다. 유료라서? 아니면 걷기에는 너무 뜨거운 날이기 때문일까? 절벽을 따라 난 오솔길을 걸으며 엄마는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고, 우리는 엄마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취했다.


 날이 매우 덥기는 해서 두 번째 마을인 베르나차에 도착하자 시원한 젤라토가 간절해졌다.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젤라테리아를 찾아 피스타치오와 레몬맛 젤라토를 사들고 다들 먹는 오징어 튀김까지 사서 벤치에 앉았다. 앉아서 바라본 이 동네는 건물에 걸려있는 빨래마저도 누군가 일부러 걸어놓은 듯 조화를 이루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땀을 식힌 뒤 기차를 타고 마나롤라 마을로 이동했다.


 절벽 위에 세워진 알록달록한 건물이 인상적인 마나롤라는 어디서 많이 본듯했다. 친퀘테레 정보를 찾으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바닷가 절벽 길을 따라 걸으면 이 광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말수도 줄고 한 손으로는 배를 만지고 있었다. 베르나차에서 먹었던 젤라토와 오징어 튀김이 문제였던 것 같았다. 우리는 발길을 돌려 기차역으로 향했다. 친퀘테레 카드를 사용할 때였다. 작은 마을이라 코 앞에 있는 것처럼 여겼던 기차역이 막상 가려니 왜 그리 멀리 있던지...


 그날 우리는 친퀘레레 다섯 개의 마을을 모두 돌아보지는 못했다. 다 비슷비슷한 분위기겠지...


생각보다 더 기울어진 사탑과 한적한 마리나 디 피사의 풍경


 피사는 사탑 말고는 볼 게 없다더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 한 장 찍기도 힘들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온 김에’ 피사의 사탑 하나 보고 오자 하는 마음으로 떠났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좋은 게 아닌가. 널찍한 보행자 도로는 걷기 좋았고. 피사 특유의 로마네스크 양식은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사람이 많아봤자 피렌체 보다는 나으니… 피사의 두오모와 세례당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었다. 실제로 보면 별거 아니라던 사탑도 생각보다 훨씬 기울어져 있어서 몸을 기우뚱한 채로 꼭대기에 오르는 기분이 묘했다.


 피사 중심부를 다 돌아본 우리는 피사가 바닷가 도시라는 것을 떠올렸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하면 마리나 디 피사에 갈 수 있었다. 그곳은 우리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낯선 풍경의 바닷가였다. 해안을 따라 하얀 자갈이 깔려 있는데, 꼭 새하얀 대리석이 달고 달아 자갈이 된 것 같아 보였다. 바닷가 주변으로는 백 년은 거뜬히 넘었을 것 같은 건물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데. 푸른 바다 하얀 자갈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붐비지 않아 한적한 거리에서 우리도 꼭 백 년쯤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행복했던 순간이었는데, 이 사진만 보면 괜히…

 엄마는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최고를 경신했는데. 마리나 디 피사가 최고로 아름다운 바닷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엄마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바닷가에서 딸과 함께 앉아 있는 뒷모습 사진도 찍어야 하고, 물 수제비도 뜨고. 작고 아름다운 하얀 조약돌도 찾아야 했다. 우리는 바다 한번 보고, 바닥 한 번 보고 하면서 아담한 조약돌을 주워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 이거는 어때, 장모님 이건 어때요, 하면 엄마는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하면서 하나씩 가방에 담았다.


 어느덧 해가 기울 시간. 저녁을 먹기 위해 해변을 따라 걷다가 바다를 향해있는 테라스가 마음에 드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해산물 플래터와 피자 그리고 파스타를 주문했다. 음식은 맛있었고 저물어가는 빛은 아름다웠다. 점점 더 소녀가 되어가는 엄마는 태양을 향해 하트를 그려 보이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뭉클해졌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엄마와 함께 이곳에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그 이후로는 잠깐식. 길어야 하루 이틀 정도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정도로는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새 엄마는 일흔을 넘겼고,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강인했던 마음은 조금씩 무뎌져 다시 소녀가 되어 있었다.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걸어가는 것도 재밌고,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것도 신비롭고. 엄마와 함께 하기 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그래,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신상 찾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이제 다음에는 어디를 가보나. 지도 좀 들여다보자.



이번 매거진은 민현​​​​​​​​​​​ 님과 함께 꾸려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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