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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법모자 김시인 Sep 10. 2024

내가 만난 책이야기 46

세계문학 읽기/데이비드 댐로쉬


세계문학 읽기/데이비드 댐로쉬/김재욱/앨피


이 책은 세계문학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읽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독자를 위한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지난 4월 제인 마운트의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을 읽으며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듯 이 책 역시 그렇다.


댐로쉬의 문학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몇천 년의 시간을, 동서양의 경계를 뛰어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희열을 느끼게 한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이 읽어야 개별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형, 상징들을 발견해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그 길이 너무 아득하기만 하다.


1장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세계문학을 읽을 때에는 차이점과 유사점의 스펙트럼 안에서 양극에 위치한 이화와 동화의 위험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한다. 그는 서양의 시인들은 그들을 에워싼 세계로부터 예술적 독립성을 주장해 온 반면, 동양의 시인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성찰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이해했음을 피력한다. 따라서 서양에서 시는 허구의 물이라는 인식이 전제된 반면, 동양은 자아와 동일성의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고 말한다. 동양과 서양의 시를 동일한 관점으로 읽을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내게 꽤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의 다른 시관에 바탕을 두고 시를 읽어야 하며, 동일한 전통에서 쓰인 시도, 동시대의 다른 시인의 시들과 비교 대조해서 읽을 때 그의 시적 특징을 더 도드라지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2장 '시간을 가로질러읽기'에서는 '신과 인간'에 대한 관점의 변화 과정을 살피면서 시간을 거슬러 읽기를  권유한다. 거슬러 읽기는 후대의 시인들이 고대의 텍스트에서 어떤 자원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대한 감각이 생기고 고대 세계가 얼마나 다양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3장 '문화를 가로질러읽기'에서는 다른 문화권의 작품을 읽을 때 작품의 생소함에 질려 독서를 연기하거나 무심결에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여 이미 아는 것에 피상적으로 동화시켜 버림으로써 텍스트의 표면에만 머물게 되는 위험을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댐로쉬는 다른 문화권의 작품들을, 작가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역사적 상황에 맞게 조정해 사용하는 텍스트를 제시하며, 작품의 원형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장 '번역으로 읽기'에서는 같은 작품의 번역이라도 시대와 번역가의 의도에 따라 번역이 달라짐을 피력한다. 또한 번역이라는 굴절렌즈를 통해 번역가가 그때와 지금, 이곳과 그곳, 다른 언어와 모국어 간의 간극을 고찰하고 그 간극을 메꾸려 할 때 구사하는 전략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번역의 불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댐로쉬는 훌륭한 번역은 원문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원문에 없던 텍스트가 추가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문학 작품은 번역을 통해 유통된다. 번역에 의존해서 읽을 수밖에 없지만 번역이 가진 한계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댐로쉬는 2-3개의 다른 번역 작품을 함께 읽기를 권한다.


5장 '멋진 신세계'에서는 낯선 땅을 탐험한 여행가들의 기록을 다룬다. 여행자들에 의해 드러난 낯선 세계는 여행자들의 신념 체계에 의해 구상된 세계라는 것을 독자는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함을 시사한다.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 이야기의 공통된 주제는 유럽의 탐험가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남긴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시각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실재의 여행 기록이든, 상상의 기록이든 말이다. 독자 또한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읽기 않으면, 유럽, 백인, 기독교 중심주의의 그들 사상에 함몰될 수밖에 없겠다는 경각심을 안겨준 챕터다.


6장 '제국을 쓰기'는 식민 지배를 경험한 지역의 작가들을 다룬다. 그들은 모국어로 글을 쓸지, 식민지국의 언어로 글을 쓸지 선택해야만 하고, 세계어로 글을 쓸 때도 작품이 작가의 나라에 대한 해외 독자의 관심사와 견해 혹은 환상에 부합하지 않으면 번역 출판에 난항을 겪을 수도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식민 지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주의, 제국주의에 대항한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의 나라 독일어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파울 첼란이 생각났다. 독일어는 그의 모어였다. 식민지국 작가들이 겪게 되는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


7장 '세계적 글쓰기'는 오늘날의 작가들이 세계 독자에 다가가기 위해 시도하는 다양한 글쓰기 방법론들을 소개한다.  그들은 탈지역화된 방식을  채택하고 (프란츠 카프카, 보르헤스, 베케트) 글로컬적 전략으로 글을 쓰고 (키플링),  글로컬리즘 방식을(오르한 파묵) 고수한다. 어떤 방식을 채택하든 전 세계의 독자를 염두한 글쓰기일 것이고, 작가들은 전 세계의 자산이 우리의 유산이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원형을 찾아 4천여 년의 시간 속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읽고 쓰는 일, 그 일은 분명 우리를 더 나은 인간이 되게 해 준다고 믿는다. 댐로쉬가 예시로 소개한 텍스트 중 읽지 않은 작품들이 많아 이해가 쉽지는 않았다.  폭넓게 읽기와 깊이 읽기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작품을 읽더라도 그 작품에 한정해서 이해하는 습관도 고쳐야 할 것 같다. 날마다 쏟아지는 책, 그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를 고민하는 이에게 댐로쉬의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 믿는다. 댐로쉬와 다른 견해를 가진 프랑코 모레티의 '멀리서 읽기'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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