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재미교포, 피난민, 일제시대
애플 TV에서 파친코가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일제시대 한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까지의 평가는 비교적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탄압과 잔인함을 이 드라마가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이 일본통치하에서의 일본인과 한국인과의 갈등을 다룬 것만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인 구한말부터 식민지 강점기를 다룬 박경리의 토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북한에서 피난온 가정 출신으로서 일본인과 결혼한 재미교포 엘리트 여성작가가 치열한 연구와 인터뷰 끝에 풀어낸 재일교포 여성의 이야기는 한국인의 시각과는 조금은 다르게 세계사에서 또 다른 한국 여성의 삶을 창조하였고 자칫 친일 반일에 휩쓸리기 쉬운 우리에게 신선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리 이병헌 주연의 미스터 션샤인이 처음 방영되었을 때, 그 드라마는 친일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조직폭력배 양자가 되어 한국사람들을 괴롭히는 남자 조연이 독립운동가 여성 주인공을 연모하고 그녀를 목숨걸고 지키는 역할로 등장하면서 의도치 않게 친일파를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분명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주인공인 선자 또한 강인한 한국여성의 삶을 보여주나 이 인생 또한 매우 복잡하여 식민시대 영화라 하면 하면 친일파였거나 독립운동가 주인공을 떠올리는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녀는 한국에서 일본인을 대신해서 부산 어시장을 관리하는 야쿠자 두목의 사위인 고한수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아이를 갖게된다. 일본인 부인과 아이들이 있지만 한국에서 편하게 살게 해주겠다는 그의 제의를 거절하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도 자신의 배우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전도사의 부인이 되어 일본으로 떠난다. 오사카에 온 후 고한수가 준 시계를 팔아 경희 집의 빚을 갚게 되고, 이후 인지하지 못했지만 고한수의 배려하에 식당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고 생활을 이어간다. 그녀는 고한수의 아들을 반듯하게 키워내나 이후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의 멸시를 동시에 받는 야쿠자라는 것과 자신이 그의 돈으로 대학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되고 가족을 떠나 한국인임을 숨기고 일본인처럼 살아가다 자신의 한국인 신분이 드러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선자의 둘째 아들은 일본인 주인의 신임을 받고 파친코를 인수받아 생계를 이어간다. 그녀의 손자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사회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어떤 처지에 있던 한국인임은 변함이 없다는 현실의 벽을 깨닫고 갈등한다. 매우 슬픈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선자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 주위의 선자에 대해 어떨 때는 존경을, 어떨 때는 동정을 하게 된다. 드라마를 만든 감독이 모든 가정에는 선자와 같은 인물들이 있다는 말은 우리의 삶에 한국여성들의 희생이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 주변에는 목숨을 잃을 각오로 자신의 원칙과 대의명분을 지켜왔던 위대한 인물이 있어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있지만, 또한 막다른 상황에서 한 때 잘못된 결정과 실수를 하였지만, 묵묵히 삶을 살아내 온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 누구도그 환경에 처해보지 않고 사람의 죄를 정죄하고 남을 비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민진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세계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한국의 역사를 너무 모른다고 지적했다. 조선이 어떻게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지, 식민지 시대의 삶이 어땠는지, 광복 후 우리 사회가 어떠하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현재처럼 부유한 국가가 되었는지에 대해 사실 우리는 너무 모른다. 우리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보다 부끄러운 역사로 배웠다. 선자의 삶은 우리의 안스러운 역사였으나 이제 우리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의 한 부분으로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주변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가장 감명깊게 읽은 소설로 꼽는 분들이 많았다.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삶이 선과 악, 좌와 우 등 이분법적으로 확실히 나누어지지 않고 인간이란 존재는 매우 복잡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매우 복잡한 존재일진대, 이러한 복잡한 존재들이 같이 모여 사는 사회의 모습은 얼마나 더 복잡할 것인가? 우리사회의 지나친 갈등들,,, 나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음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가끔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더라고 일보전진에 만족하는 너그럽고 포용적인 사회로의 진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