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hell Shin Apr 02. 2024

대학정원 확대와 의대생 휴학의 정치학

의대정원과 교육정책

의대입학정원은 2000년 3500명 수준이었으나 의약분업 이후 축소되어 현재 3000명 수준으로 근 30년 동안 증가하지 않았는데 이는 1993 년 이후 고등교육기관 (4년제, 전문대학 기준, 한국교육개발원 통계) 재적생이  1,548,691명에서  2013년 기준 2,878,017명으로 거의 2배가 증가되어 온 상황과 대조적이다. 대학정원이 2배가 늘어나는 동안 의대정원은 1990년대 수준에서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휴학이 지난 역사에서의 의대생의 휴학 이슈를 생각나게 하였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취학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1978년 말까지 고등교육 취학률은 8% 이하 수준으로 국민적인 수요에 비하여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대학생들이 참여한 4.19 혁명의 성공은 군사정부가 대학의 정원 증원을 극히 꺼리는 실질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당시의 경제상황에 비교할 경우 비교적 높은 고등교육 취학률 또한 정부가 정원확대를 억제하도록 하는 정당성을 제공하였다. 3,4 공화국 내내 중화학공업, 수출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국립대 해당학과 정원을제외하고 강력한 억제정책을 취하였다. 반면, 고등학교 평준화와 농어촌 지역, 근로청소년들에 대한 중등교육 취학률 확대정책에 힘입어 중등교육 취학률은 거의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고 이러한 대비되는 정책으로 대학입학경쟁이 심화되어 이에 따른 사교육비증가와 재수생의 증가는 사회적 문제로 발전하였다.


이후  대학정원의 획기적인 확대를 가져온 것은 1980년 신군부의 졸업정원제 채택이었다. 군사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통한 정권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사교육금지, 대학본고사 금지, 대학입시에 내신반영 등 대대적인 교육조치를 채택하였는데 과도한 대학입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입학정원 관리를 졸업 시 정원으로 대체하여 입학 시에는 30~50%를 입학정원보다 더 선발하도록 하되, 졸업 시에는 학업에 충실하지 않은 학생들을 유급시켜 원래의 정원만을 졸업시킨다는 졸업정원제를 도입하였다. 당시 1981년 서울의 주요 대학들은 거의 기존입학정원 대비 50%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추가로 선발하였고, 서울대의 경우 미달사태를 맞는,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실제 일어났었다. 사실 당시 교육계에서는 대학에 입학만 하면 공부를 소홀히 해도 되는 대학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처럼 엄격한 학사관리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막상 전격적으로 도입이 되자, 교육여건 미흡과 대학의 자율성 침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물론 군부의 실질적인 의도 또한 엄격한 학사관리를 통해 대학내 시위및 정치활동을 억제하려는 것이었을 것이다고 지적된다.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대학에서는 추가로 선발한 학생에 경우 유급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여야 하였으나,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2~3 학년이 되었을 경우 유급을 피하기 위해 군입대를 선택하거나 휴학을 이용하면서, 2, 3학년부터 일정비율을 낙제시키고자 했던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학계에서 강하게 졸업정원제에 따른 유급정책을 반대하였는데, 의과대학에서는 학업의 연속성상 휴학이 불가하여 의대에 들어온 우수한 학생들만 유급을 당해야 하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끈질기게 반대하였다. 이후 의대와 여대부터 대학에 일부 자율을 주는 정책으로 허용하면서 1987년 최종적으로 정부의 일률적인 유급비율적용 정책은 폐지되었다. 물론 폐지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는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서슬파랐던 군부의 결정을 돌리는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1980년 졸업정원제 도입 정책은 취학률을 30% 수준까지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막을 내렸다.


당시 교육여건 개선이 수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폭적인 대학정원 확대는 대학사회의 혼란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정원 확대는 정부의 대학 본고사 금지, 고등학교 내신반영, 사교육금지, 대학장학금 확대 등의 정책과 같이 시행되면서, 타그룹과 비교하여 저소득층 학생, 농어촌, 중소도시 지역학생, 여학생들의 대학교육기회를 더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학졸업인력의 증가는 대졸자 인력부족에 따른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를 줄이는데도 기여하였다. 당시의 사례는 고등교육기회 확대시기에 교육기회의 형평성, 사회의 형평성 지수가 같이 상승하고 사회이동성 확대에 기여한 사례로 매우 드문사례이다. 1980대의 암울한 일련 사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강력한 교육조치로 당시 대학입학생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흙수저가 많은 세대이다.


대학정원결정은 대대로 교육분야의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번 사태로 대표사례를 추가하게 되었다. 경제규모와 의료분야의 성장을 고려할 시, 노령인구 급증에 따른 추가 의료수요 등을 고려해야한다는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 정밀한 진단과 수술이 필요한 경우 몇달을 기다려야하는 현재상황 또한 해결됐으면 하는 문제이다. 고등교육분야 모든 분야에서 진입규제는 완화되고 규모는 성장했다. 1995년 5.31 교육개혁에 따라 대학정원 결정은 국가의 판단에서 대학자체 판단으로 이관된 지 오래이고 현재 의료분야를 비롯한 극히 소수의 분야만을 정부가 정원을 규제하고 있다.


지역대학의 의대정원이 늘어 해당지역 학생들의 입학기회가 확대되고, 의학분야와 타 분야의 보수 수준의 격차가 점차 줄어들어, 우수한 학생들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또 늘어난 입학정원이 경제적으로 특정계층과 사교육시장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에게 독점되지 않는 상황으로 만드는 것,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믿는다. 물론 완벽하지는 못할지라도 교육여건의 개선과 입시에 있어서의 불확실성을 줄기기 위한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대비도 같이 갈것으로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용감한 카자흐스탄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