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지성은 공존할 수 있는가?
어제 이어령 교수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보았다. 한국과학기술원이 우리나라 과학인재들을 양성하여 세계 초일류기업을 일궈내는데 지대한 기여를 한 것처럼, 문화부장관 재임시절 성사시킨 한국예술종합학교는 클래식 음악계의 뛰어난 한국의 연주자들과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한국드라마의 제작에 참여하는 인재들을 양성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렇게 별도 대학으로 설립하는 일은 대학을 관장하는 부처와 공무원 인사와 조직, 예산을 담당하는 부처 등등에서 모두 반대하고, 대부분의 대학교수들이 강하게 반대하여 많은 난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종합학교 설립에 가장 반대한 교수를 초대원장에 임명한 일화도 기억된다. 이 밖에 국어에 대한 체계 확립, 디지로그에 대한 예지력, 창조성에 대한 강조 등 이 분에게 한국 국민들은 많은 빚을 졌다.
이 분의 인생을 생각할 때 인생의 노년에 받아들이신 신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인간 지성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지성인이었으나, 딸의 병 앞에서 딸의 병을 낫게 해 주시면 딸이 믿는 하나님을 믿어 보리라고 하나님께 약속을 하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많은 저서와 강의로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간증을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를 믿고 의지하게 되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 신앙을 갖는 일은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낯선 일인데, 특히 자기관리 투철하고 자신의 양심과 노력에 따라 누구보다 더 선하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이였음을 고백하고 자신이 아닌 절대자를 삶의 중심에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분의 회심에 그를 존경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 분도 여느 할머니나 엄마들이 자식의 병 앞에서 절대자에게 막무가내로 매달리는 것처럼 별 수 없구나하고 실망하였을 수도 있다. 인간은 뭔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것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다고 생각이 될 때, 스스로의 선택으로 신앙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능력으로 불가항력일 것 같은 환경에서 인간이 내리는 비합리적인 선택이고 자신의 자존심을 꺾는 일이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한두번씩은 겪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누군가는 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 이것도 신학적인 난제라고 들었다.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신앙을 지키는 일은 더 어렵다. 기적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지만 기적이 나타난 후에는 그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다. 기록에 있는 수많은 기적을 경험한 후에도 인간이 신에게서 멀어지는 이유이고, 기적이 있었음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 인간사회의 방식이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고친 10명의 나병환자 중 사마리아인 한 명만이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하였다는 일화가 단면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다시 이성적인 생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여러 기적과 신과 동행한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죽은 사람을 살린 이야기, 18만의 군사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하루 밤사이에 몰살당한 이야기, 전쟁 중 해가 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바다가 갈라지는 이야기, 바다를 걷는 이야기, 두 마리의 물고기와 다섯 개의 빵으로 오천 명이 먹은 이야기,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한 이야기 등등… 믿어 보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없는 한 도저히 믿기 힘든 일들이다. 회심 후 이러한 이야기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의심이, 외부에서는 비아냥거림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신과의 동행을 통해, 인간에게는 신이 주신 선물인 지성과 함께, 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영성의 영역이 허용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삶을 마감하였다.
이 분이 마지막 가면서 보여주신 죽음에 대한 초연한 모습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 듯하다. 죽음을 가까이하는 것이 삶을 가장 값지게 사는 방법이라고 하던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소명대로 살아가는 일, 오늘을 선물처럼 살아가는 일, 매번 잊고 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