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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미 Nov 25. 2024

프롤로그 - 베이비시터가 되기로 했다.

“ Good parents ”


어릴 때부터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너 같은 딸 낳아봐라!”

그럼 저는 당당하게 대답했죠.

"난 분명 좋은 부모가 될 거야!"



 그런데, 막상 영국으로 떠나 베이비시터 일을 하게 되니, 좋은 부모는커녕 좋은 베이비시터가 되기도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20대의 경험은 30대의 영감이 된다." 이 한 문장이 저의 20대를 설명해 줍니다. 당장 나에게 많은 돈을 주지 않아도, 지금의 경험들이 언젠가 분명 내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죠.

 

**오페어(Au Pair): 외국인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과 급여를 받는 일.**


 그런 저에게 베이비시터, 정확히 말하자면 오페어(Au Pair)라는 직업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런던에서 숙식도 해결되고, 언젠가 엄마가 될 나에게 좋은 연습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오페어로서의 일상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잡했습니다. 주 3회 한국요리해 주기, 아이들 등하교 돕기, 식사와 간식 챙겨주기, 놀아주기, 씻기고 재우기, 때로는 부모님이 외박하여 혼자 아이들을 24시간 돌보는 베이비시팅까지 맡았죠.


나중에 이 차와 관련된 큰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엔 무척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매일 크고 작은 일을 해내며 조금씩 성장하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아이들에게 저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제 말에 쉽게 따르지 않고, 오히려 만만하게 보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버릇없는 행동으로 인해 부모님과 4자 대면을 하는 일도 있었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이를 악물고 참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턱이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무의식적으로 이를 꽉 물고 지낸 탓이었습니다. 육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된 거죠.


 하지만 오페어는 정말 매력적이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영국의 다문화 가정에서 현지인과 문화 교류를 하고,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참여하며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으니까요. 런던의 화려한 외부보다 그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드는 경험은 소중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언어의 장벽 때문에 답답함이 쌓여가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한국에 계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수고인내가 필요했을지 그 마음이 새삼스레 느껴졌습니다.


"난 엄마처럼 안 될 거야!" 라며 투덜대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조용히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20대 중반의 제가 낯선 땅 런던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하루하루를 통해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좌충우돌, 웃음과 눈물로 가득했던 그 특별한 런던에서의 베이비시터 일상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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