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ood parents ”
어릴 때부터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너 같은 딸 낳아봐라!”
그럼 저는 당당하게 대답했죠.
"난 분명 좋은 부모가 될 거야!"
그런데, 막상 영국으로 떠나 베이비시터 일을 하게 되니, 좋은 부모는커녕 좋은 베이비시터가 되기도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20대의 경험은 30대의 영감이 된다." 이 한 문장이 저의 20대를 설명해 줍니다. 당장 나에게 많은 돈을 주지 않아도, 지금의 경험들이 언젠가 분명 내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죠.
**오페어(Au Pair): 외국인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과 급여를 받는 일.**
그런 저에게 베이비시터, 정확히 말하자면 오페어(Au Pair)라는 직업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런던에서 숙식도 해결되고, 언젠가 엄마가 될 나에게 좋은 연습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오페어로서의 일상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잡했습니다. 주 3회 한국요리해 주기, 아이들 등하교 돕기, 식사와 간식 챙겨주기, 놀아주기, 씻기고 재우기, 때로는 부모님이 외박하여 혼자 아이들을 24시간 돌보는 베이비시팅까지 맡았죠.
처음엔 무척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매일 크고 작은 일을 해내며 조금씩 성장하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아이들에게 저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제 말에 쉽게 따르지 않고, 오히려 만만하게 보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버릇없는 행동으로 인해 부모님과 4자 대면을 하는 일도 있었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이를 악물고 참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턱이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무의식적으로 이를 꽉 물고 지낸 탓이었습니다. 육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된 거죠.
하지만 오페어는 정말 매력적이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영국의 다문화 가정에서 현지인과 문화 교류를 하고,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참여하며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으니까요. 런던의 화려한 외부보다 그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드는 경험은 소중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언어의 장벽 때문에 답답함이 쌓여가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한국에 계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수고와 인내가 필요했을지 그 마음이 새삼스레 느껴졌습니다.
"난 엄마처럼 안 될 거야!" 라며 투덜대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조용히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20대 중반의 제가 낯선 땅 런던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하루하루를 통해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좌충우돌, 웃음과 눈물로 가득했던 그 특별한 런던에서의 베이비시터 일상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