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애플 입사를 거절했다.

지금까지 이런 기회는 없었다. 이것은 행운의 사과인가 독이든 사과인가.

몇 번의 화상 면접 끝에 마지막 대면 인터뷰를 하러 캘리포니아에 있는 사과 농장(?)에 도착하였다

내가 면접을 볼 부서는 부동산 부지 개발 및 애플스토어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총괄하는 곳.

인터뷰는 생각 외로 간단했다.  팀원 및 그룹 장들과의 케미를 테스트하는 캐주얼한 면접이었는데 하나같이 청바지 차림의 허름한 힙스터 모습이였지만 헐렁해 보이는 외면과 다르게 전문지식에 기반한 질문들은 날카롭고 심도 있게 진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애플 클래스인가?  마치 부드러운 곡선 속에 숨어있는 강인한 성능의 애플 제품들 같았다. 기분 탓인지 옆에 놓인 휴지통 마저 세련돼 보인다.



이어지는 질문. 애플 스토어 디자인의 방향성을 설명하라는 것.

'딱 걸렸어.'  애플 라이트닝 케이블 버금가는 속도로 준비해온 대답을 술술 읊는다.. '세계 최고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인 것에 걸맞게 상상력과 혁신 및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IT 스토어에의 틀에서 벗어나  더 인간적이며 자연 친화적인, 창의적인 느낌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라고..  



마음에 드는 답이라는 듯 시니어 디렉터는 씩~ 아빠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스토어 디자인을 개발을 도와주는 일을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들어보니 아이디어나 디자인 콘셉트는 외부 건축회사 'Foster + Partners'에서 나오고  애플 쪽에서 하는 일은 그들과 협력하여 테크니컬 한 사무적 업무를 소화하는 직책이었고  당시 나는 LVMH의 많은 브랜드들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디자인 콘셉 트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창의적인 일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 조금 실망스러웠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여기서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갖고 바라본 도시의 풍경은 이상할 정도로 썰렁하고 공허했다. 도로를 꽉 매운 차들은 뉴욕이나 유럽의 '보행자 라이프 스타일'에 익숙한 나에겐 어색함 그 자체였고(심지어 난 무면허..!?)  아기자기한 골목 느낌의 "갬성"을  즐기는 나로서는 회사 일 못지않게 중요한 내 라이프 스타일이 도둑맞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잠시 머리를 비우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았다. 주변의 의식하는 소란한 소음을 끄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 슬픔이 와 기쁨이의 대립 같은 '이성과 본능의 말씨름'이 시작됐고 나는 장점과 단점을 차례로 써내려 가기로 했다.



(장점)

애플에서 뛰어난 기술, 디자인 익히고, 고급인력들과 일할수 있음

애플 주식 부자. 사과 농장 주인, 사과 겟!

'애플' 두 글자가 쓰여 있는 파워풀한 이력서, 앞으로 취업 걱정 없음

경제적인 행복감 만세 ;  부모님께 정말 자랑스러운 딸 등극!


(단점)

즐기는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인 일에서 멀어짐 (x)

적성에 맞는 분야의 인테리어가 아니라 지루할 수 있음 (x)

실리콘 벨리 라이프 스타일 맞지 않음 (x)

세계를 오가는 출장 많지 않음(x)



며칠 후 애플에서 전화연락이 왔고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아쉽지만 거절해 버리고 만다.

기능성과 깔끔함으로 무장한 이 완벽한 실리콘 밸리의 애플 라이프는 남들에겐 파라다이스가 될지 몰라도 나에게는 왠지 남의 옷을 입는 듯 불편하게 느껴졌고 무엇 보다도 누구나 선망하는 애플사의 직원이 되어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것보다, 내 직감을 믿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만의 미래를 개척하고 전진해 나가는 게 '나다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때 애플 주식을 좀 사두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이지만 사과농장 지분도 갖게 되었다!)



벌써 6 년이나 된 애플과의 인터뷰... 한때 나에게 관심 갖아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곧 애플 카가 나올 거란 뉴스도 들린다. 

끊임없이 멋지고 혁신적인 디자인과 제품들을 쏟아 내는 애플을 보면 왜 내 책상이 사과 밭이 되었는지 이해가 간다. 아이맥에서부터 아이폰, 아이패드, 에어팟은 물론 맥북 에어 까지.. 이제 머지않아 미래에는 이 모든 기기와 제품들을 넣을 수 있는 공간, 디자인의 총합산 물을 볼 수 있는 애플 홈, 애플 호텔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살며시 상상해 본다.



p.s 오늘따라 식구들과 후식으로 먹는 겨울 사과가 아삭아삭 하니 맛있다.



 












작가의 이전글 파리에서 만난 루이비통 회장과 피터 마리노.. 그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