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어우렁더우렁 ‘생각하는 책’ 연주가 펼쳐진다
꼬마평화도서관이 또 문을 열었다. 지난 10월 25일 일산 백석동 백신초등학교 옆에 있는 우리 옷 공방 ‘채홍갤러리’에 들어섰다. 2014년 12월 9일 파주에 있는 보리출판사 1층 카페와 지하 공연장에 처음 문을 열고 나서 마흔다섯 번째로 문을 연 꼬마평화도서관이다.
그동안 6·25 때 미군에게 짓밟힌 현장에 들어선 노근리 평화박물관과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록물이 있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처럼 평화로 가려면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 현장이나 밥집과 한의원, 반찬가게와 향수공방, 초등학교와 중학교 복도, 자동차정비소와 다세대주택 현관처럼 ‘이런 데 도서관이라니 생뚱맞지 않아?’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엉뚱한 곳에도 문을 열었으나 우리 옷 공방에 들어서기는 처음이다.
내년이면 공방 문을 연 지 10주년을 맞는 채홍갤러리 양하나 대표. 가까이 사는 이웃끼리 정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꼬마평화도서관 문을 열었다고 했다.
스물아홉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장 늘보가 개관 축하 덕담을 하다 말고 가방을 열고 주섬주섬 책이라기에는 너무 작고 얇은 그림책을 한 권 꺼내 든다. 군대를 없애고 병영을 학교로 만든 나라 코스타리카 환경 이야기를 담아, 기후 시민 3.5가 만든 <엘레나와 발렌티나>이다.
발렌티나는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뜻의
작고 아름다운 나라 코스타리카에 살아.
발렌티나가 사는 마을
‘쿠리다비트’에서는
꿀벌과 나비에게도
시민권을 주었어.
책을 펼쳐 처음에 나오는 두 꼭지를 연주하고 난 늘보는 “1948년 12월 1일 우리나라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만들 때 코스타리카 국가수반 피게레스는 군대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고 오래도록 얘기해왔다. 그러면서도 코스타리카가 ‘아름다운 바닷가’라는 뜻을 담은 말인 줄은 몰랐다”라며 헤식게 웃는다.
이어 “이토록 결 고운 말로 나라 이름을 지을 수 있었기에 평화 품을 넓혀 어울려 사는 멋진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삼천리 금수강산을 나라 노래로 삼고, 살림살이를 뿌리로 삼는 우리도 평화를 잘 새기다 보면 벌과 나비뿐 아니라 푸나무에게도 시민권을 주는 나라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말을 맺는다.
‘생각하는 책 연주’ 첫걸음으로 양하나 대표가 고른 책은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2021 상반기 평화책)>이다. 주인공은 말을 더듬어서 웃음거리가 되고는 하는 아이다. 힘들어하는 아이 손을 잡고 강에 간 아버지.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치는 강물을 가리키면서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라고 얘기한다.
그 뒤로 아이는 울고 싶을 때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라고 생각하며 울음을 삼키고, 말하기 싫을 때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라고 떠올리면서 말을 이어간다. 마침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이야기하는 발표 시간에 저는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얘기할 만큼 힘을 얻는다.
그림책 연주에서 그림이 주는 울림을 놓친다면 팥소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깊이 남는 것은 아이가 눈을 지그시 감고 윤슬이 빛나는 강물에 몸을 맡긴 제 뒷모습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연주를 마친 이들은 '헤아림이 어울리는 첫걸음'이라고 뜻을 모은다.
이어 평생교육사 오경미씨가 차분하니 연주한 책은 책마을 해리에서 열린 여름동학평화캠프 아이들 목소리를 담은 책 <평화는 가끔 이렇게 뽀송뽀송(2021 상반기 평화책)>이다.
샤워를 끝내고 에어컨을 켜고 이불속에 들어가서
시원뽀송한 상태로 유튜브를 보는 것!
이게 진정한 평화지.
아이들이 일상에서 얻은, 알록달록한 스물세 가지 평화가 소복하다. 연주를 마친 이들은 이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순간순간이 평화로울 수 있겠다며 밝게 웃는다.
마지막으로 연주한 책은 옷 공방이니만큼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2019 하반기 평화 책)>이다. 꿈의 학교 교사이자 간호사인 이유경씨가 밝은 웃음과 연기로 생기 넘치는 연주를 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여성이 바지를 입는다는 모습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몸을 코르셋으로 꽉 조인 드레스를 입고 움직이기 힘들었다. 덥고 무겁고 답답하고 숨쉬기 힘들고, 너무 꽉 끼어 허리를 굽힐 수도 없었을 테다. 이에 맞서 “나는 바지를 입겠어!”라며 당차게 나선 메리 에드워즈 워커 모습을 그린 책이다. 연주를 마치고 나서 틀에서 벗어나려고 용기를 내는 데서 평화가 비롯할 수도 있겠다고 입을 모았다.
‘어우렁더우렁’이란 낱말을 좋아한다는 양하나 대표는 다달이 네 번째 주에 뜻 맞는 이들끼리 모여앉아 ‘생각하는 책 연주’를 하겠다고 했다. 어울림이야말로 내가 살고 너를 살리는 결 고운 울타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