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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택주 Mar 29. 2024

궁금하다, 중립이 뭐야?

‘가온섬’과 ‘가온선’인데, 묶인 ‘가온섬’보다 ‘가온선’이 더 끌려

궁금하다, 중립이 뭐야?

중립은 우리말로 ‘가온섬’과 ‘가온선’이라 할  수 있어. 그런데 나는 묶인 느낌인 ‘가온섬’보다 움직이는 듯한 ‘가온선’이 더 끌려.      


하나. 중립이 뭐지?

중립은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누구에게도 힘을 보태지 않는 걸 일컬어. 우리 말로 풀면 ‘가운데섬’ 또는 ‘가운데선’이라고 할 수 있어. 옛말을 가져다가 ‘가온섬’ 또는 ‘가온선’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테지? ‘섬’은 움직씨 ‘서다’를 이름씨로 바꾸어 놓은 말이야. ‘섬’이라고 쓰면 묶인 느낌이 들지만 ‘선’이라고 하면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서 어쩐지 가온선이라는 말이 더 끌려. 가운데 길을 간다는 뜻을 담아 ‘거온거님’이라고 할 만도 해.


서 있든 걷든 넘어지지 않으려면 허리가 튼튼해야 하고 다릿심도 좋아야 하잖아? 마찬가지로 둘레에 휘둘려 오락가락하지 않고 똑바로 서려면 줏대를 탄탄하게 세워야 해. 그런데 탄탄한 줏대만으로는 가온서기 힘들어. 어떤 운동이든 잘하려면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 입네’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가온설 수 있어.


이를테면 내가 펼친 뜻에 드세게 “아니야!” 하고 손사래 치며 나서는 사람을 보고, ‘뭐 저런 놈이 다 있느냐고’ 핏대를 세워서는 가온서기 어려워. 어처구니없는 말일지라도 잘 듣고 내 뜻을 가만가만 살살 펼칠 수 있어야 하지. 그런데 우리는 흔히 내 생각과 네 생각이 어긋날 때 “너 따위와는 함께 갈 수 없어!” 하고 낯을 붉히고 돌아서곤 해. 그러나 지난 뒤에 곱씹어보면 생각이 서로 어긋났을 뿐 그만한 일로 성을 낼 까닭은 없었는데 하고 뉘우칠 때가 적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펴는 뜻과 나를 같이 놓거나 네가 펴는 뜻과 너를 같다고 받아들이지 않아야 가온설 수 있어.


중립은 흔히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세워야 할 뜻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사람 사이를 꺼내는 까닭은 사람 사이에서 중립하는 힘을 기르지 않고서는 나라 사이에서 중립하기 힘들다고 봐서 그래. 나랏일도 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잖아.


나라 사이에서 중립은 본디 싸움에서 비롯했어. 기원전 656년쯤 아시리아가 이집트를 쳐들어갔지. 이때 이사야라는 이스라엘 사람이 유대 사람들에게 어느 쪽에도 들지 말자고 해서 처음으로 중립을 지켰다고 해. 중립이란 두 나라가 싸울 때 싸우는 어느 쪽에도 아주 작은 힘일지라도 보태지도 않는 외교정책이야. 이런 중립은 싸움이 끝나면 저절로 힘을 잃어.


중립은 통상중립(customary neutrality), 영세중립(permanent neutrality), 그리고 비동맹 중립 (nonalignment neutrality)으로 나뉘어. 통상중립은 앞서 얘기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펼친 중립 정책을 가리키는데 우리말로 하면 ‘여느가온선’이라고 할 수 있어. 뒤에 낱낱이 밝히겠지만 영세중립이란 싸움이 있고 없고를 가리지 않고 중립을 이어가는 것인데 우리말로는 ‘늘가온선’이라고 해야 해. 비동맹 중립은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 중립으로 우리말로는 겯지 않는다는 뜻을 담아 ‘안겯가온선’이라고 해야 하겠다. ‘곁’과 한 뿌리에서 나온 ‘겯’이 씨말인 ‘겯다’는 서로 겨드랑이를 낀다는 말로 어깨동무를 가리키는 말이야.

      

파주 도서출판보리 1층에 있는 카페 보리와 철새 꼬마평화도서관(1호)


둘. 중립국은 얼마나 될까?

세계에는 중립을 지키는 나라가 여럿이 있어. 북유럽은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와 아이슬란드가 있을 만큼 가장 중립국이 많은 곳이야. 영국, 독일, 러시아처럼 힘이 센 나라들이 둘레에 있어서 힘이 센 어느 나라 편에 서지 않고, 군사 동맹도 맺지 않으면서 중립을 이어가고 있어.


그러나 핀란드는 2023년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들어가서 중립에서 벗어났어. 스웨덴도 나토 가입을 앞두고 있어. 마지막까지 스웨덴에 문 열기를 꺼렸던 두 나라 가운데 튀르키예(터키) 의회 문턱을 넘은 데 이어 마지막 남은 헝가리도 총리가 스웨덴이 나토에 들어오는 것을 반긴다고 밝히고 의회 비준을 앞두고 있으니 중립을 지키기 어렵게 되었어.


이 밖에 중립으로 기울어 있거나 중립을 내걸고 있는 나라로는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태국, 미얀마, 싱가포르, 파키스탄, 크로아티아,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몰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 있어. 조선은 연방제 통일을 굳게 지키면서 연방 외교정책은 반드시 “비동맹 중립”을 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지.   

  


셋. 영세중립과 중립화, 얼마나 다를까?

영세중립 또는 영구중립과 중립화는 종종 같은 뜻으로 쓰여. 그러나 영세중립은 나라에만 쓰고, 중립화는 나라를 아울러 여러 나라가 같이 쓰는 땅이나 물길, 어느 나라 땅도 아닌 남극과 북극에도 쓰이지. 영세중립이란 한 나라가 둘레에 있는 센 나라(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힘을 보태지 않고 제힘으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센 나라들이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언제까지나 뒷받침하는 제도를 일컬어.


영세중립국은 스위스를 비롯해 네 개가 있어. 오래도록 중립국을 꿈꾸던 스위스는 1815년 11월 둘레에 있는 여덟 나라가 이 뜻을 받아들여 영세중립국이 되었어. 오스트리아는 1955년 4월 소련과 먼저 모스크바에서 각서를 주고받아 영세중립국 협정을 맺고 이어서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 뜻을 받아들여 영세중립국이 되었지. 스스로 영세중립을 하겠다며 외치고 나서서 영세중립국이 된 나라도 있어. 나라 이름이 ‘아름다운 바닷가’란 뜻을 가진 코스타리카는 1983년 11월에 영세중립국이 되었지. 투르크메니스탄은 1995년 12월 12일 유엔총회에서 유엔에 들어 있는 일백여든다섯 나라가 모두 좋다고 뜻을 모아서 영세중립국이 되었어.     

채식당 마지에 있는 꼬마평화도서관(2호)


넷. 스위스는 어떻게 영세중립국이 됐을까?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처럼 센 나라(강대국)에 둘러싸인 스위스는 끊임없이 시달렸어. 이 나라들이 거듭하여 쳐들어왔거든. 나라 안도 무척 시끄러웠어. 주와 주 사이가 좋지 않았거든. 끊임없이 다투어오며 시달려 오던 스위스 사람들은 1436년부터 집안싸움을 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어.


그 뒤로 1515년 마그리나노에서 프랑스와 싸웠는데 크게 졌어. 나라가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된 불 맞았지. 그때 스위스 사람들은 스스로 나라를 지키려면 영세중립국이 되어야 하겠다는 뜻을 세워서 의회가 받아들였어. 1815년 3월 나폴레옹 전쟁을 마치는 비엔나 회의에서 몇몇 연합국이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이 되겠다는 뜻을 받아들이고, 같은 해 11월 둘레에 있는 여덟 나라가 모두 받아들여서 첫 영세중립국이 되었지.


벨기에는 1839년, 룩셈부르크는 1867년에 영세중립국이 되었으나 1919년과 1940년에 스스로 영세중립국을 내려놨어. 조선은 1904년 1월 20일 스스로 영세중립국이라고 외쳤으나 일본이 갈라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지. 바티칸 시(교황청)는 1929년 이탈리아와 영세중립 협정을 맺어 영세중립 도시가 됐어. 남극에 있는 도시 안타르크티카도 1961년 남극에 발을 디딘 나라들이 뜻을 모아 중립을 이룬 도시가 됐지.    

  


다섯. 우리나라가 중립해야 하는 까닭이 뭘까?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처럼 손꼽는 센 나라에 둘러싸여 있지.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을 마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가 된 미국은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그러나 그 품이 휴전선 북쪽에 있는 조선에는 미치지 못하지. 한국과 조선을 아우른 우리나라가 어느 센 나라에 확 쏠린다면 다른 나라들이 가만히 있겠어? 그러니 아시아가 안정되고 세계가 평화로워지려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나라가 누구 품에도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해. 우리가 반드시 영세중립국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야.     



여섯. 통일에 앞서 한국과 조선이 따로따로 중립국이 될 수 있을까?

그럼. 조선은 1980년부터 줄곧 남북이 연방제 통일을 하되 이 나라 외교정책은 반드시 “비동맹 중립”을 해야 한다고 외쳐왔어. 그러니까 조선이 내놓은 중립 외교정책을 한국이 받아들이면 통일하기 전이라도 연방제나 연합제를 하면서 중립 외교를 할 수 있어. 센 나라에 둘러싸인 우리에겐 남북이 중립을 이루는 것은 매우 마땅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우리가 중립국이 되어도 좋다는 뜻을 내놓기를 기다릴 것 없이 한국과 조선이 뜻을 모아 중립을 외치고 나서면 되어.     

꼬마평화도서관으로 되살아난 서랍들


일곱. 미국과 중국 틈새에서 한반도가 중립할 수 있을까?

우리 겨레는 1945년 미국과 소련이 갈라놓고 나서 일흔여섯 해 동안이나 남북으로 나뉘어 살아왔어. 우리가 중립하려면 한국과 조선이 중립하기로 뜻을 모으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이 뜻을 알려 이 나라들이 뜻을 같이하면 통일하기 전이라도 영세중립국이 될 수 있지. 또 한국과 조선이 스스로 영세중립을 하겠다고 외치고 나서서 앞서 얘기한 네 나라가 그 뜻을 받아들이도록 할 수도 있어.


가까이에 센 나라들이 없는 코스타리카 공화국은 스스로 중립을 하겠다고 외치고 나서서 영세중립국이 됐지. 여러 이해가 걸린 센 나라에 둘러싸인 한반도라 하더라도 눈치 보기를 멈추고 한국과 조선이 먼저 중립을 하기로 뜻을 모은다면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어. 한국과 조선이 영세중립을 하기로 뜻을 모은 다음에 둘레에 있는 나라들을 타이르거나 투르크메니스탄처럼 유엔에다 중립국이 되겠다고 뜻을 밝혀도 좋지 않을까? 한류 바람이 세계를 휩쓰는 요즈음 같은 때에 밀어붙인다면 어렵지 않게 뜻을 이룰 수도 있을 거야.  


   

여덟.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중립을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영세중립국이 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반길 거야. 한국과 조선이 영세중립국이 되면 눈엣가시 같은 주한미군이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한국을 연구하는 중국학자들 가운데 62.1%나 되는 이들이 우리가 중립화 통일을 하면 좋겠다고 하고, 러시아 학자들도 38.5%가 그랬대. 중국과 러시아에는 한국과 조선이 영세중립국이 아니라면 어떠한 통일도 바라지 않는다는 여론도 돈다고 해.      

꼬마평화도서관 내세움


아홉. 우리가 중립국으로 통일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무엇보다 한국과 조선에 사는 사람들이 국제사회에다 대고 영세중립을 하겠다며 외쳐야 해. 그러려면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세중립이 무엇이고 영세중립을 하면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해. 그래서 중립을 이루려는 사람들은 한시바삐 나라 사람들에게 중립하면 무엇이 어떻게 좋아지는지 널리 알리고, 중립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흔들고 있지. 뜻을 세운 사람들이 내남없이 나서서 우리나라가 중립을 하면 세계가 얼마나 평화로워질 수 있는지 온 나라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쉬지 않고 흔들어야 해.    


  

열. 일본은 한반도 중립화를 받아들일까?

아니. 일본은 우리나라 중립화나 한국과 조선이 하나 되는 통일을 막아서고 있어. 일본이 우리나라가 평화롭기를 바라지 않는 까닭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어. 첫째 첨단기술을 갖춘 한국과 인건비가 낮은 조선이 어깨동무하여 제품값 낮추면 일본이 경쟁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해. 둘째 우리가 통일되면 우리나라 국방력이 세질까 봐 겁먹고 있어. 셋째 통일된 우리나라가 중국과 더 가까워질까 걱정스러워서 그래. 옹졸하지? 일본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본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힘들이 그렇다는 말이야.    


  

부릉부릉그림책도서관 2호


열하나. 한국과 조선이 한꺼번에 중립화할 수 있을까?

한국과 조선이 한목소리로 중립을 외치고 나서려면 한국과 조선 두 정부가 중립하겠다고 뜻을 모으면 되어. 그러나 차례를 잘 밟아야 해. 중립하겠다고 한국과 조선이 한목소리를 내려면 먼저 한국과 조선이 서로를 나라로 받아들여야 해. 차근차근 한국과 조선이 중립화하겠다고 뜻을 모은 다음엔 둘레에 있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에 따로따로 또 함께 우리나라 중립을 받아들여야 해. 그래야 우리나라와 아시아가 평화를 이어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열둘. 중립과 통일 어떤 걸 먼저 해야 좋을까?

중립은 언제까지나, 그러니까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나라를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제도야. 평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없지. 통일을 서두르다 보면 우리나라를 평화롭게 하려는 본디 뜻에서 벗어날 수도 있어. 자손 대대로 한결같이 이어지는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타게 바라는 일이잖아. 그러니 한시바삐 통일하려고 서두르기보다 중립을 먼저 해야 해. 통일이랍시고 했는데 평화가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어? 모르긴 해도 통일을 이어가기 어려울걸. 통일을 앞당기려고 애쓰기보다 평화가 지키는 데 더욱 힘을 써야 하는 까닭이야. 평화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과 조선 어느 한쪽이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서로 받아들여야 해. 말을 바꾸면 비겨야 한다는 말이야. 네 번째 글에서 얘기했듯이 연방국인 스위스는 주와 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오랫동안 나라가 무척 시끄러웠어. 그러다가 1436년부터 집안싸움이 가라앉았어.


그랬는데 그만,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고 나서 나라 사람들은 다시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싸웠어. 오랜 다툼 끝에 나라를 연방으로 만들었으나 힘이 달리는 가톨릭 쪽 칸톤들이 정권을 쥔 개신교 쪽 칸톤과 뜻이 맞지 않아 일으킨  전쟁이 일어났어.


까닭은  이러했어. 1840년대 초 연방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개신교 주에서 강세를 보인 스위스 자유민주당은 새로운 스위스 연방 헌법을 내놨어. 연방의회에서 절반이 넘는 지지를 받아 1841년 아르가우 수도원과 수녀원 문을 닫고, 재산을 빼앗아 가톨릭교회를 억눌렀지. 1844년 가톨릭 주 7개는 ‘존더분트(Sonderbund, 분리파)’를 이뤘어. 연방의회는 존더분트에게 흩어지라고 했으나 존더분트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맞서자 연방군이 존더분투를 쳤어. 1847년 11월 3일부터 29일까지 짧게 일어난 이른바 존더분트 전쟁(Sonderbund War)에서 백삼십여 사람이 숨졌지. 스위스 땅에서 일어난 마지막 싸움이었어. 이긴 개신교 주들은 진 가톨릭 주들에게 연방 개혁을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어, 가톨릭 주들이 내놓은 뜻을 거의 받아들여 새 연방 법을 만들었어. 스위스 사람들은 삼십만 대 이백만으로 새 헌법을 반겼어. 마침내 스위스가 조용해졌지.


이걸 보면서 “지는 게 이기는 것.”이란 옛 얘기가 떠올랐어. 어려서는 이 말씀에 담긴 뜻을 알지 못했어. 나이가 제법 든 다음에야 힘 없는 쪽에서는 수그리고 나서도 몹시 속이 아리고 쓰릴 테니까 힘 가진 쪽이 수그려야 싸움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 힘 있는 쪽에서 물러설 줄 알아야 평화가 온다는 말이야. 그러니 맨 처음에 말했듯이 어깨에 힘 빼고 ‘나 입네’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생각이 서로 어긋났을 뿐 그만한 일로 성을 내거나 삿대질할 까닭은 없다고 받아들여야 해. 그 바탕에서 우리가 펴는 뜻과 우리를 같이 놓거나 너희가 펴는 뜻과 너희가 같다고 여기지 않고 가온서기(중립)로 통일할 힘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열셋. 한반도 중립화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중립을 이루는 길을 다섯 단계로 나눠볼 수 있어.

① 먼저 한국과 조선이 서로를 나라로 받아들여 힘을 모아야 해. 우리 겨레를 짓밟아 가슴에 한을 남긴 일본이나 이념이 다른 중국과 러시아하고도 물건을 사고팔며 오가잖아. 그런데 한겨레인 한국과 조선 사람들은 오가지 못할 까닭이 뭐야? 더구나 한국과 조선 모두 유엔 가입국이야. 그러니까 서로를 나라로 받아들이고 교역을 트고 오가야 해.

② 불가침, 서로 쳐들어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서울과 평양에 대표부를 두어 영세중립을 하기로 뜻을 모아야지.

③ 한국과 조선이 겨레통일회의를 빚어, 중립통일헌법과 통일선거법을 만들고

④ 한국과 조선이 따로따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과 영세중립협정을 맺고 나서

⑤ 따로따로 영세중립국이 된 한국과 조선이 본디 하나였던 대로 영세중립국으로 통일하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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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넷. 우리나라 보수들은 왜 중립을 가로막고 나설까?

모든 보수가 중립을 가로막고 나선다고 할 수는 없어. 우리나라가 중립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보수 인사들은 진보 인사들보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손사래부터 친다고 할 수는 있지. 그러나 보수주의자인 이승만 대통령도 중립을 꿈꿨을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립을 멀리하지 않았어. 1960년 1월에 펼친 여론조사에서 한국 사람 32.1%가 영세중립 통일을 바란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이듬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부가 중립 통일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가두거나 죽였어. 그리고 제3공화국 정부는 중립통일을 꿈꾸는 사람들을 북한 통일정책을 따르는 친북인사, 곧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며 영세중립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았지. 진보 정치인들조차 중립이라는 말을 뻥긋하지도 못했어.


살림이 넉넉한 보수 인사들은 애써 안정된 삶을 버리고 변화를 가져와야 할 까닭을 찾지 못한 탓도 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짚어 보면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나라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립은 보수 인사들도 아랫대를 생각하면 반대할 까닭이 없어. 왠지 알아? 중립이란 본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들 사이에 일어난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스스로 지키려는 것을 일컬어. 쉽게 말해 중립은 나라 사이에 물건을 사고팔거나 돈은 자유로이 오가는 게 하되 어느 나라하고라도 군사 동맹을 맺지 않는 것을 가리키거든. 중립에 담긴 뜻을 모든 사람이 알도록 애써야 하는 까닭이야.   



열다섯. 조선은 중립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과는 달리 조선은 중립에 팔을 걷고 나서고 있어. 조선은 남북이 연방제로 통일을 하되 외교정책은 반드시 “비동맹 중립”을 해야 한다고 외쳐 왔지. 한국에 있는 미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영세중립 국가에는 외국 군대가 있을 수 없거든.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북녘을 쳐들어가는 훈련으로 받아들이는 조선은 한국에 머무는 미군이 떠나기를 빌고 또 빌어왔어. 김일성은 1960년대부터 줄곧 남북이 중립을 이뤄야 한다고 외쳤어. 김일성전집에서 김일성은 중립을 스물일곱 번, 중립화를 세 차례나 얘기할 만큼. 김정일도 조선이 스위스식 무장중립(Swiss like armed neutrality)을 하기를 바랐어. 더욱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퍽 오랫동안(91-98) 스위스에서 공부했으니 영세중립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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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우리나라가 중립하려면 뭣부터 풀어야 할까?

중립을 이룰 바탕을 닦아야 해. 가장 먼저 우리나라가 중립화하겠다는 뜻을 나라 사람들이 굳게 세워야 하지. 둘째, 한국과 조선을 아우르는 이들이 중립화하기로 뜻을 모아야 하고. 셋째,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센 나라들도 우리나라가 중립화해야 한다고 뜻을 모아 협정을 맺어야 해.     

6.25 때 미군이  애먼 우리 민간인을 학살한 노근리 굴다리 현장에서


열일곱. 둘레 센 나라들이 받아들여야 중립할 수 있나?

중립하는 까닭은 흔히 작고 약한 나라가, 에워싸고 있는 센 나라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면서 평화를 한결같이 이어가는 데 있어. 우리는 이제 작고 약한 나라라고 보기 어려워.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 중국과 러시아에 견줄 수는 없어. 그 나라들에 견주면 토끼에 지나지 않아. 땅이 넓지 않고 사람도 많이 살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둘레에 있는 나라들과 평화협정이나 조약을 맺어야 하는 까닭이야.


곧 에워싸고 있는 센 나라 어디라도 우리를 쳐들어가지 못하도록 협정이나 조약을 맺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평화롭기 어려워. 그러니까 힘에 부치더라도 에워싸고 있는 센 나라들이 우리가 중립을 이루는 데 뜻을 함께하도록 만들어야 해.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 열 돌 잔치 마당



열여덟. 한국과 조선이 중립하면 무엇이 좋을까?

중립하면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평화를 이어갈 수 있고,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무기를 사는 데 돈을 쓰지 않아도 되어. 우리가 중립국이 된다는 것은 아낀 군비를 복지로 돌릴 수 있다는 말이야. 코스타리카도 군대를 없애고 영세중립국이 된 나라인데 그 돈으로 교육과 의료복지를 이룰 수 있었어. 다른 나라와 싸우지 않아도 되니 외국 은행이나 국제기구와 외국 자본을 받아들이기 쉬워.


영세중립국을 대표하는 스위스는 200년이 넘도록 전쟁이 없어서 나라 지키는 데 들어갈 돈을 복지로 돌리고, 평화란 멍석을 깔고 금융업이 발달해 잘 사는 나라가 되었어.


코스타리카는 어땠을까? 1980년 가까이서 싸우는 나라 비행기가 날아와 마구 총질을 해서 코스타리카 사람이 여럿이 다쳤어. 그때 코스타리카 대통령인 로드리고 카라조는 “폭력에 평화로 맞서겠다”라며 유엔 승인을 얻어 나라 안에 유엔평화대학(UPEACE)을 세웠지.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 어수선할 때 코스타리카가 오래도록 이어온 평화 연구가 더욱 빛났어.    


 

열아홉. 중립교육과 통일교육과 묶을 수 있을까?

중립교육이나 통일교육을 해야 하는 까닭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평화롭게 하는 데 있어. 우리가 중립을 이루고 통일한다는 것은 이 땅에 평화를 대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야. 한국과 조선이 중립을 이룬다면 한국과 조선이 갈등과 맞섬을 줄일 수 있을 테고 그러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테지? 중립한 한국과 조선은 통일을 이룰 걸림돌이 없어져서 분단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 그러니까 중립교육과 통일교육을 묶으면 서로 보람찰 거야.     



스물. 한국은 선진국이고, 조선은 핵무기를 가졌는데도 다 같이 영세중립해야 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해서 평화가 뒷받침되지는 않아. 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해서 안전이 뒷받침되는 것도 아니지. 경제력이나 핵무기를 가진 것이 나라 평화와 안정에 좋은 조건일까? 아니라고 봐.


그러니까 남다른 꿈을 펼쳐서 한국과 조선이 어울려서 이 땅에서 핵무기를 없애고 서로 보람찰 수 있도록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제사회를 아울러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해. 센 나라 싸움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는 중립보다 더 좋은 정책은 없을 거야.      



스물하나. 한국에 중립 운동하는 모임이 몇 개나 있어? 외국 단체도 있나?

나라 안에 중립 운동을 하는 모임은 다섯 개, 나라 밖에서 한반도가 중립화를 이루도록 애쓰는 모임은 네 개가 있어. 나라 안에 있는 모임은 한반도중립화연구소(설립 1999. 8. 21)를 비롯해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2001. 10. 30),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2014. 03. 19), 한반도중립화통일론연구소(2015. 04. 5), 한반도중립화를추진하는사람들(중추사 2020. 06. 25)가 있어. 나라 밖에서 중립 운동을 펼치는 모임은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프랑크푸르트 지회(2001. 12. 3),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본부 (뉴욕 2011. 01. 21), 한반도평화통일포럼 (LA 2003. 01. 10),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LA지회(2016. 01. 15)가 있어.     

평화 그림책을 켜는 산울배움공동체 꼬마평화도서관(48호) 송승민 관장


스물둘. 한국과 조선 중립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한국과 조선이 한꺼번에 중립을 이룰 수 있다면 가장 좋지. 그러나 조선이 핵무기를 만들어서 미국과 유엔이 엄청난 경제제재를 하고 있어. 더구나 정서나 경제 규모가 크게 벌어진 한국과 조선이 한꺼번에 중립하기는 어려울 거야. 이렇게 볼 때 한국이 먼저 중립을 이룬 뒤에 조선도 중립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도 좋지 않을까? 다행히 한반도 중립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한국이 먼저 중립화를 하자”는 뜻을 밝히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희망이 있어.      


-이 자료는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가 만들고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가 아이 눈높이에 맞게 다듬고 보탰습니다. 우리를 한국 북녘을 조선이라고 한 까닭은, 평화는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데서 온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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