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춘기

나의두 번째 사춘기

by 시원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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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ntelm, 출처 Unsplash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사춘기를 겪었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에 불편했고 관계도 서툴렀다. 내 주장만이 옳고 다른 이들의 의견은 듣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지적을 해오면 늑대처럼 달려들었고, 지지 않으려 부단히 억지를 부렸었다.


그러다 보니 감정의 섬세함 속에서 멍하니 웃고 멍하니 화를 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오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다. 그 시절 나는 사춘기란 감정에 휘둘렸다.


그 시절의 나처럼 사춘기를 겪는 딸아이가 있다. 그 아이 역시 자신에게 불편한 한마디가 들려오면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활화산으로 변한다. 평소에 몇 배 되는 높은 억양과 말 속도로 자신만의 논리로 쏟아붓었다. 그럴 때마다 난 멍하니 딸아이가 하는 소리를 듣고 있을 뿐, 아무 말도 못 한 채 아이의 무답 논리 속에 내 감정을 식힐 뿐이었다.


나 역시 그때 그 시절 그랬을 테지, 무답 논리 속에 빠져 사춘기를 보냈을 거였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감정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쯤 나는 어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감정의 섬세함은 어느새 무뎌졌다. 표현보다 참는 것이 일상이 되어 감정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 표정까지 애쓰는 시간을 보내다 지치면, 우리는 두 번째 사춘기인 어른의 사춘기를 맞는다.


나의 어른의 사춘기는 2년 전이다. 20년간 한 직업 속에서 무뎌진 감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자부심이었던 나는 어른의 사춘기가 찾아와 사는 것이 물음표가 되었다.


어른의 사춘기가 찾아오면 일도 관계도 심지어 먹는 것조차도 귀찮아진다. 무뎌진 감정은 섬세해져 눈물이 흐르고, 앞으로의 살아야 할 날보다 지나온 날에 후회한다.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말했다.

"당신은 왜 하루 살이 같이 사는 거야"

아내 눈에는 내가 하루살이처럼 위태롭게 보였을까? 하루 동안 열심히 불태우고 내일 다시 하루를 살기 위해 열심히 불태우는 하루살이가 아니라, 그저 쳇바퀴 돌듯 반복된 일상이 지친 내 모습을 본 것일 테였다.


아내가 어떤 의미에서 말한 것인지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운함이 앞서 큰소리로 화를 내었다. 열심히 살아온 자부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나 스스로 만든 것일 테지만, 인정하기 싫어 가족의 이유를 대었다.


그 순간 밀려오는 불편한 마음이 씁쓸하고 슬펐다. 섬세한 감정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나를 휘몰아쳤다.

가시덩굴 안에 풍선이 놓여있을 만큼 위태로웠다. 하루의 삶이 고단한 삶이 되었고 고단한 삶이 고통스러운 삶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어른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