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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통 Mar 12. 2022

목욕탕 간식 이야기

시원한 우유와  따끈한 어묵탕

뽀송하게 목욕을 마치고서 문을 열고 나서면 차가운 바깥공기가 코를 통해 훅 하고 들어왔다. 뜨끈한 탕에서 놀며 이완됐던 근육들이 겨울바람에 다시금 한껏 움츠러들었다.

겉옷을 두 손으로 꽉 움켜 잡고는 후다닥 달려 골목을 빠져나갔다. 우측으로 돌아서 몇 걸음만 더 가면 노부부가 운영하시던 작은 분식집이 나왔다.

드르륵. 노란 테이프로 '분식'이라고 커다랗게 적혀있던 반투명 여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머리가 하얗게 샌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꼬마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셨다.

굳이 요즘 스타일로 해석하자면 인더스트리얼 무드랄까?

인테리어랄 것도 없던 가게 안은 회색 시멘트 바닥과 하얗게 칠만 마친 노출 천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고, 민트색 테이블과 의자들 사이로 난로가 한대 켜져 있었다.

차가워진 몸은 금세 가게 안의 온기로 데워졌다. 이름도 메뉴도 기억나지 않는 그곳에 가면 우리는 붕어빵과 어묵탕을 먹었다. 다른 메뉴를 먹어본 기억은 없으니 어쩌면 그 두 가지만 판매하고 계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기도에 살 때까지만 해도 목욕 후에 여탕 안 매점에서 판매하는 간식을 먹는 게 일종의 '목욕탕 루틴'이었다. 탕에 들어가 때 빼고 광 내고 엄마표 베이비오일 마사지까지 마치고 나면, 언니와 나는 곧장 매점 냉장고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두 꼬맹이가 팬티 한 장 달랑 걸치고선 짧은 팔을 뻗어 냉장고 안에서 간식을 하나씩 골라 잡았다. 흰 우유를 못 마시는 언니 덕분에 달달한 초콜릿 우유나 요구르트가 단골 메뉴였고, 언니와 달리 가리는 게 없던 나는 종종 바나나 우유를 마시기도 했다.

우리는 [매점] 푯말을 달고 있는 카운터 앞 나무 평상에 나란히 앉아 빨대 꽂은 우유를 홀짝홀짝 들이켰다.

한참 뜨거운 물에서 놀고 나와 마시는 달콤한 우유와 요구르트는 극강의 단맛과 시원함을 선사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찾아오던 엄마와의 목욕탕 나들이는 전라도 이사 후 조금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다.

동생들 육아와 가게 일로 늘 바쁘셨던 엄마 대신 외할머니와 동행하는 날이 더 많아졌고, 그마저도 자매끼리 가야 하는 날이 늘어갔다.

동네에 하나뿐이었던 목욕탕에는 매점조차 없었고, 목욕탕은 그저 '목욕을 하러 가는 곳'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목욕을 끝내고 찾아갔던 분식집에서 어묵탕을 맛본 날, 나는 잃어버린 목욕탕 가는 재미를 발견한 듯했다.

노부부께서 내어주신 녹색 플라스틱 사발에는 주문한 개수만큼 꼬치 어묵이 들어있었는데, 진한 탕 국물에 큼지막한 무 한 조각과 꽃게 다리 한 두 개가 같이 들어있었다.

어린 초등학생 손님들을 배려한 푸짐한 어묵탕이었는지, 고작 몇백 원짜리 꼬치 어묵 몇 개에 꽃게 다리를 넣어주시는 인심이라니. 지금 떠올려봐도 정말 온정 넘치는 주인 부부셨다.

그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심만큼이나 훌륭한 것은 어묵탕의 맛이었다.

지금이라도 비결이 뭔지 여쭤보고 싶을 정도로 깊고 진했던 육수와 쫄깃한 어묵 꼬치는 없는 용돈을 털어서라도 더 먹고 싶게 만드는 맛이었다.

길가에 서서 종이컵에 한 국자씩 떠 마시는 어묵 국물도 맛있지만, 국그릇 가득 담아주신 국물을 수저로 떠먹는 맛은 간식이 아니라 식사를 즐기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미처 다 마르지 않아 얼어붙었던 머리카락과 한껏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난로의 열기와 뜨끈한 국물 한 수저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살캉하게 잘 익은 무와 국물을 번갈아 먹다가 갓 구워져 나온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면 단짠단짠의 조합을 맛볼 수 있었다. 주인 부부의 후한 인심은 얇은 붕어빵 반죽 속에 가득 들어있는 팥 소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힘주어 누르지 않아도 베어 문 자리에서 앙금이 밀려 올라오는 푸짐함.

어묵탕 한 그릇과 팥 소 그득한 붕어빵은 주머니 속 얄팍한 쌈짓돈도 아깝지 않을 간식이었다. (그때고 지금이고 나는 어묵을 참 좋아한다.)

엄마가 목욕비만 딱 맞춰 주시는 날엔 울상을 지으며 오백 원만, 천 원만 더 주라며 응석을 부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새로운 목욕탕 가는 재미 역시 그리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야 말았다.

목욕탕이 먼저였는지, 분식집이 먼저였는지... 계절이 바뀌고 날이 풀린 어느 날 목욕탕에는 불이 났다고 했다. 등굣길에 지나다 찾아가 본 목욕탕은 외벽 한쪽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재정비 후 다시 문을 열거라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목욕탕은 아예 폐업을 선택했고, 어째서인지 분식집도 오래지 않아 문을 닫고 영업을 종료했다.

아마 더 이상 소일거리 삼아 운영하시기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힘에 부치셨을 거라 짐작만 해 볼 뿐이다.

다른 목욕탕은 20분 거리 읍내까지 버스나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고, 목욕을 하자고 대식구 함께 이동해 탕 목욕을 하고 나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동네에 비해 읍내 목욕탕은 그 값도 더 비쌌다.

목욕탕의 부재로 자연스레 목욕은 집에서 해야만 했다.

고등학생 때야 친구들과 종종 찜질방에서 놀고 나와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먹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가끔 있는 이벤트에 불과했고, 커서는 언제든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하면 되니 목욕탕에 가는 일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숨이 턱 하고 막히던 뜨거운 사우나 공기와 목 끝까지 푹 잠기던 커다란 온탕, 몸 구석구석 오일 마사지를 해주셨던 엄마의 손길, 무엇보다 목욕 후에 즐기던 달콤한 간식들은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돼버렸다.  

몇십 년째 같은 회사에서 똑같은 우유와 요구르트가 생산돼 나오고 있고, 더 맛있는 어묵탕과 붕어빵을 먹게 되더라도 손발이 쭈글쭈글 해질 때까지 탕에서 놀다 나와 먹었던 그때 그 맛을 재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긴, 목욕을 마치고 먹는다 한들 세상의 맛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내가 느끼는 맛은 그때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식구들이 각자의 일로 외출을 하고 혼자 남게 된 주말, 나는 그저 목욕바구니를 흔들며 목욕탕으로 향하던 그 시절 어느 주말의 나를, 그때의 그 맛을 추억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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