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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Aug 17. 2023

녀석이 강림했다

최근 근황

 요즘 왠지 기운이 없다 싶더니 오랜만에 녀석이 온 듯하다. 병원에 다니거나 상담을 받은 경험은 없지만 나는 종종 이런 침체기가 있다. 스스로 느끼기엔 두 달 정도 간격으로 신나고 우울하기 반복하니 조울증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이 감정 또한 나 자신의 일부이니 데리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침 산책 시간을 늘렸다. 7시부터 8시 꼬박 1시간을 걷고 집안 청소를 하고. 토스 만보기에 꽂혀서 미친 듯이 실내에서 걷고 달리고. 창문 밖에서 보면 이상한 여자쯤으로 보이겠지만 몸을 움직여야 이 녀석이 좀 떨어져나간다는 걸 나는 장애인이 되는 과정에서 일찍이 체득한 바 있다. 그리고 아침은 과일과 채소를 먹고 도파민을 마구 쏟아내게 하는 당분 가득한 음식은 삼간다. 도파민이 폭발적으로 붐비되다가 줄어들면 멍청한 몸뚱이는 우울해진 거라 착각하여 한층 더 우울이 깊어지고 또 당분을 찾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움직이는 데 한계가 오면 글을 쓰거나 창문을 열어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여본다. 지나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엿듣고 재미있는 이야기면 웃어보려 한다. 안 좋은 이야기면 나 말고 또 우울할 사람이 어딘가에 있겠구나 하며 혼자서 동료애를 가져본다.

 장애를 갖는다는 건 수용이 아니다. 매일이 단련이고 수련이다. 극복한다거나 한결같이 웃으며 지내야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그런 욕심 부려봤자 어차피 안 지켜내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원인이 될 뿐이다. 게다가 어차피 우울은 장애를 떠나 누구나만나며 살아야 하는 놈이다. 다만 원인이 좀 다를 뿐이다. 그러니까 우울은 데리고 사는 것이다. 내보내면 좋지만 애초에 나갈 맘 하나 없는 놈이란 걸 아니, 가끔 불쑥 평화로운 나만의 방에 침입해 오는 녀석이 날뛰지 않도록 적당히 딴짓하며 우울이 온 것을 모른 척한다.

 예전엔 녀석을 어떻게 내보낼까 궁리했지만 생활이 바빠지면 자연히 사라져 있기도 하고, 모른 척 상대를 안 하면 제 풀에 지쳐 내 방에서 떠나기도 한다. 이 녀석이 활개를 치는 밤이 오기 전에 최대한 몸이 힘들어야 한다. 밤은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것만 잘 지키면 지쳐서 잠도 잘 수 있다. 밤에 생각이 많아지고 나 자신, 현실을 바라보게 되면 지하로 땅 파고 들어가는 격이니 절대 이상한 생각들이 들어올 틈을 주면 안 된다.

 그래서 오늘은 천사님한테 글도 검토 받지 않을 거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오탈자 투성이일 테지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조차 내려놔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냥 오늘 하루의 즐거움을 찾아봐야지.

 그래, 이따가 1시에 먹는 커피가 있다. 얼음 꽉 채워서 아아 한 잔하면 속이 시원해지겠지? 우울과 상대하지 않으려고 주말에 열심히 잰 제육볶음을 볶아 먹고 설거지를 왕창 만들어야겠다.

 아... 빨리 표고버섯 키트가 왔으면 좋겠다. 그 애들이 올망졸망 자라는 걸 보면 기분이 좀 좋아질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하루에 3번 이상 분무기로 물을 뿌려대야하는 번거로운 임무를 주겠지. 자라면 따서 요리해 먹고. 그럼 또 설거지가 나오고 청소를 하고 버섯에 물을 뿌리고. 도담이 산책도 까먹지 말아야지. 바쁘고 바쁜 일상이 지속될 것 같은 예감이다.

 우울이 내 방에서 나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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