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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Dec 06. 2023

지난 가을에

근황

 드디어 글을 쓴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글 쓸 틈도 없이 바쁜 가을이었다. 월~일 쉼 없이 밤 11시, 이따금 새벽까지 일을 몰아치는 나날이었다. 사실 모든 일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그저 아주 짧은 한숨 한 번 쉴 짬이 생겼을 뿐,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덮쳐오려는 우울을 피해 애써 바쁘게 일상을 돌리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어째 예상보다 지독한 일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분명 덕분에 우울따윈 사라져버렸다. 역시 감정에 잔주름이 생길 땐 몸을 움직이는 편이 좋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건 다름 아닌 '그날'이 왔기 때문이다.  사후관리 선생님으로부터 결국 그 말을 듣고 말았다.

 도담이의 은퇴. 다음에 만날 안내견 친구가 무사히 시험을 합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더랬다. 도담이와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내년 9월까지. 그러나 그때 나와 어울릴 만한 안내견이 있을지는 모른다고, 없으면 도담이가 무리해서 더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새로운 인연을 포기할 것인가, 도담이를 일찍 보내야 하는가.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인가.

며칠 간의 고민 끝에 나는 3월 중으로 그를 보내기로 했다. 정말 많이 울었고 가슴 아파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그를 보내주는 것이 새로운 가정에서 더 행복하고 빨리 적응할 수 있을 듯했다. 거기에 새 식구는 언젠가 맞아야 하는 법, 어차피 우리는 계약 관계였다.

 `100번, 1000번 헤어지는 이유를 설명해줘도 그는 모를 터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누나'가 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 가슴이 아픈 게 아니라 그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에 아프다.

 나는 와인색 털실 두 뭉치를 샀다. 은퇴하는 그에게 선물할 네키목도리를 뜨기 위해 그에게 어울리는 붉은 실을 골랐다.

 나를 위해 태어나준 너를 위해 이별 선물로  반드시 목도리를 떠주겠노라 다짐해왔다. 언제 어디서든 따뜻하게 지내라고, 누나는 늘 곁에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이제 막 뜨기 시작했는데 벌써 눈물이 날 것 같다. 그와 이별이 얼마 남지 않은 와중에 바쁜 현실이 야속하다.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주고 싶은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산책뿐이라니. 간식 몇 번 더 주는 게 다라니.

 도담이의 숨소리가, 코고는 소리가, 잠결에 꿈꾸며 바닥을 치는 꼬리 소리가 나를 슬프게 한다. 항상 웃는 누나가 되어야 하는데, 웃는 모습으로 기억해주었으면 하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은 시간 그와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워야겠다. 이제 정말  D-DA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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