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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Feb 15. 2024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는 늘 나를 지켜 보고 있었다

 도담이는 매우 똑똑하다. 예를 들면 그 앞에 손바닥을 세로로 세워 보이면 기다려, 손바닥을 농구 드리블하듯 아래로 하면 엎드려 등. 음성이 아닌 여러 행동 지시로도 나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차린다. ‘까까 가져와~’하면 자기 간식 봉지를 물어오고, 다 먹은 애견 간식볼도 ‘가져와~’ 한 마디에 반납까지 완벽하게 한다. 야외 배변 똥고집이 나이를 먹고 다시 시작되어 고생스럽긴 하지만 한두 번 가르친 쓰레기통 찾기도 척척 해내니 그닥 불편함도 없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내 복장에 따라 행선지가 어디인지 안다는 사실이다. 내가 신고 나가는 신발, 가방에 따라 그냥 동네 산책을 하는지,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멀리 나가는지 꿰고 있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착용할 때는 마스크를 쓰는 것만으로도 신발장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안내견 코트를 입혀주길 기다렸다. 규칙적인 생활 탓도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지하철 승강장 칸에 딱 맞춰 서주고, 열차 안 방송만 듣고도 내릴 역을 알아채서 벌떡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하는 녀석은 매일 나를 놀라게 한다.

 너무 눈치가 좋아 친구나 직장동료들과 무리를 지을 때면 식당이나 카페 앞으로 데려가는 버릇이 있지만 이 행동 또한 7년을 함께 하면서 늘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혼자는 산책이나 마트, 누굴 만나면 식사나 카페니까.

 그렇다. 우리는 줄곧 함께였다. 어쩌면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님보다 더 긴 시간을 공유한 사이다. 그리고 그는 늘 나를 지켜보았다. 내 표정, 손짓, 움직임 하나하나에 꼬리를 흔들며 귀를 쫑긋대고 한결같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까지도 그는 늘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짝사랑에 빠진 소년이 소녀를 바라보듯 조용히.

 그에 비해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듯하다. 장난감은 간식 없이 안 가지고 놀며, 낙엽 밟기와 언덕진 산 둘레길 걷길 좋아하고. 바다와 물은 그닥 관심 없고. 만져주길 원하는 부위 몇 군데 정도뿐이다. 거기에 덧붙이면 그가 편히 잠을 잤던 음식점과 카페 몇 곳 정도.

 돌이켜 봤을 때 그는 똥고집 빼고는 나에게 모두 맞춰주고 있었다. 나도 그가 최대한 피곤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이야 했지만 보폭부터 생활까지 그가 내게 맞춰준 게 더 크다. 이런 말 하면 뭐 하지만 그에게서 성숙한 사랑의 형태를 보았달까. 유튜브를 보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강아지가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보이는 사랑이라고. 종교인은 아니라서 신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마 ‘진정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도담이와 함께한 7년간의 여정의 종착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달 남짓이다. 그와 추억을 쌓았던 가게들을 마지막으로 가고 싶지만 코로나를 못 이기고 닫은 곳이 대부분이라 아쉽다. 대신에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귀 기울여 본다. 도담이는 오늘도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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