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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l 05. 2024

인생 속 쉼표와 마침표 그리고 느낌표

번아웃과 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글에는 다양한 문장부호가 있다.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큰따옴표, 작은따옴표 등등. 인생도 똑같다. 온갖 사건과 행동의 끝에 마침표가 찍히고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경치에는 느낌표가, 신기하고 궁금한 대상에는 물음표가 마구마구 찍힌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작은따옴표에 넣어야만 할 때도 있다. 문자는 인간이 사용하는 것이니 인생사를 문장부호로 담았나 보다. 과연 내 일상에는 어떤 문장부호가 많을까 나는 가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바로 쉼표다.


 내 말에 맨날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365일 불멍, 물멍을 하는 쉼이 많은 인생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쉼표의 뜻을 찾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쉼표: 명사 문장 부호의 하나. ‘,’의 이름이다. 같은 자격의 어구를 연결할 때 쓰거나, 짝을 지어 구별할 때, 이웃하는 수를 개략적으로 나타낼 때, 열거의 순서를 나타낼 때, 문장의 연결 관계를 분명히 하고자 할 때, (중략)..’

 네이버 국어 어학사전에서 말하는 쉼표의 정의다. 지금까지 나는 쉼표는 쉬는 표의 준말로 알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쉬라는 의미가 하나쯤은 쓰여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쉼표는 기본적으로 열거였다. 설명마저도 쉼 없이 빽빽하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 최근 내 인생엔 쉼표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6시에 일어나고, 강아지 밥을 주고, 메일을 확인하고, 글을 쓰고, 일을 하고....

 오늘 장 볼 것은 대파, 양파, 당근, 돼지고기...

 네, 네. 그, 그럼 어쩔 수 없죠. 마감일 맞춰드릴게요.

  적어도 2, 30분 안에 이 일을 끝내야 해.

 쉼표가 많으면 예쁜 글이 아닌데 나의 일상엔 쉼표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할 일을 만들고 무리해서 일을 받고. 프리랜서가 되고 월화수목금토일 연중무휴로 달리고 있다. 유치원 때 받은 줄줄이 사탕 목걸이는 맛이라도 다양했지 이건 뭐 맛도 고만고만하고 끝이 없으니 그저 쳇바퀴 위를 달리는 기분이다.


 이런 삶을 보람차고 뜻깊게 느낄 때가 있었다. 항상 바쁜 삶. 언제나 누군가가 찾아주는 인생. 뭔가 프로패셔널하고 멋져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우쭐거리며 30분 단위로 하루를 쪼개어 생활한 적도 있다. 그런데 작년부터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10분만 쉬어도 죄책감이 몰려오는 것이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자신이 나태해 보이고 한심해 보인다. 거기에 웃음이 사라졌다. 친구를 만나도 전혀 웃을 수 없다. ‘이 시간이면 돈을 더 벌 수 있는데 오히려 쓰고 있네’라며 친구들 만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값비싼 명품을 사고 싶은 것도 아니다. 물욕도 없어서 한 달 용돈 30만 원이면 충분한 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지갑을 못 여는 짠순이도, 돈돈거리면서 살아야 할 정도로 팍팍한 살림도 아니다.


 나는 왜 이토록 시간에 쫓기는가. 무엇 때문에 웃음을 잃었는가. 어쩌다 일을 동시에 해야만 안심하는 몸이 되었는가. 힘들 걸 알면서도 무슨 이유로 잠을 줄여가며 일을 받는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부동산 유튜브를 보며 운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이제는 안쓰럽다. 반짝거린다고 믿었던 나의 습관이 초췌해 보인다.


 ‘일중독’. 고장 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 마냥 멈출 수 없다. 숨은 차오르고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계속 달린다. 용기를 내어 잠시 바닥에 내려오면 오랜 비행 끝에 땅에 발을 디딘 우주인처럼 속이 울렁대고 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앞으로 50년을 이렇게 살 자신은 결코 없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다. 패닉 상태다.


 살면서 인생에 쉼표를 찍으라는 말을 자주 접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쉼표는 쉬라는 의미겠지만 실제 문장부호 쉼표가 그런 의미가 아니란 걸 위에서 확인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제 그 말에 질색한다. 얼마 살아보진 않았지만, 쉼표는 언젠가 반드시 우리 숨통을 조여온다. 내가 겪은 바 그렇다. 쉼표는 아직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끝나려면 멀었으니 잠깐 쉼표를 찍으라는 것뿐이다. 쉼표 뒤엔 할 일이, 뒷이야기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언제 마침표가 나온다고 예고해 주지도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레일이다. 그럼 이제부터 나에게 어떤 게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나는 내 인생에서 최대한 쉼표를 지우려 노력한다. 최대한 호흡을 짧게 하려 노력한다.

 그러고 나서 필요한 건 마침표와 느낌표다. 왜인지는 아래 두 단어의 뜻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침표: 명사 문장 부호의 하나. ‘.’의 이름이다. 서술·명령·청유 따위를 나타내는 문장의 끝에 쓰거나, 아라비아 숫자로 특정한 의미가 있는 날을 표시할 때, 장, 절, 항 등을 표시하는

문자나 숫자 다음에 쓴다.’

 ‘느낌표: 명사 문장 부호의 하나.’ ‘!’의 이름이다. 감탄문이나 감탄사의 끝에 쓰거나, 어구, 평서문, 명령문, 청유문에 특별히 강한 느낌을 나타낼 때, 물음의 말로 놀람이나 항의의 뜻을

나타낼 때...(중략)’

 네이버 국어 어학사전에서의 마침표와 느낌표다. 문장을 마무리 짓는 마침표. 감탄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느낌표. 지금 내 인생에 필요한 것들이다.


 내가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마침표를 빨리, 자주 찍는 것이다. 인생이 꼭 한 문장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상황은 바뀌고 환경이 달라지기에 어차피 삶은 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한다. 때로는 미련 떨며 질질 끌다가 일을 망칠 때도 있다. 과감한 마침표는 새로운 문장의 시작이기도 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사람 사는 것은 글이랑 정말 똑같다. 문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작자는 방향을 잃고 독자는 지루해지니까.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삶이란 작품에서 작자이자 독자 두 몫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고통이 두 배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길게 늘어질 때가 있더라도 기본은 탄력 있게 탁탁 점을 찍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행동은 일상에서 느낌표를 발견하는 거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마음에 귀 기울여야 한다. 생활 속에서 자주 감동해야 한다. 나를 감탄하게 하는 대상을 찾아 그 곁에 붙어있어야 한다.


 진심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을까 고민도 했다. 그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래도 내가 시도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 노력 중이다. 평소 작업장인 집을 떠나 카페에서 차 한잔하며 일을 한다거나 짧게 업무를 정리하고 의미 없이 동네를 서성거려본다거나. 어릴 때 갖고 싶었던 캐릭터 물건을 사보기도 한다. 일부러 시간을 정해 침대에 가만히 누워도 있어 보고 강아지와 필요 이상으로 공놀이를 해본다. 이 또한 해야 할 일을 늘린 것은 아닐까 싶다마는 이전의 것들과는 결이 다르다. 이 모든 행위는 분명 나에게 있어 쓸데없는 짓인 것이다. 처음에 이런 비생산적인 일을 자발적으로 늘리는 데에 꽤나 큰 괴로움이 따랐지만 전보다는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듯하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느낌표를 찾아 떠나려 한다. 목적지는 푸른 바다가 아닌 집에서 가까운 대형 가전 매장이다. 가정용 스마트팜 가전이 나온 것을 얼마 전 지인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그것을 보러 간다. 몇 년 전에 서울시 텃밭에 당첨되어 소소하게 채소들을 기른 적이 있다. 그땐 정말 즐거웠다. 보들보들한 여린 새싹이 싱그러운 줄기를 내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이 풍요로웠다. 그 시절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혹시 그 기기를 집에 들이면 다시 내 마음에 봄이 찾아와줄까. 괜스레 기대해 본다. 오랜만에 찾아올 일상 속 느낌표에 벌써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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