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가 높다고 공부를 잘할까?
분명히 똑똑한데 불합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험은 단순히 머리가 좋은지, 지적 수준이 높은지를 판가름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똑똑하고 이해력이 뛰어난데도 번번이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강의실에서는 누구보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토론 자리에서는 학문적 통찰을 뽐내지만, 막상 시험 결과표에는 애석하게도 ‘불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찍혀 있다. 대체 왜 그럴까?
수험생활을 하면서,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건 지능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물론, 지능이 높은데 공부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하면 최고지만). 지능보다는 공부라는 행위 자체를 어떻게 다루는지, 불안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갈린다. 이 글에서는 ‘똑똑한데 불합격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다섯 가지 특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시험이 다가오면 불안이 커진다. 불안은 흔히 ‘양’으로 치환된다. 똑똑한 수험생일수록 더 그렇다. 기본서 한 권으로도 충분한데, 괜히 빠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바로 다른 기본서를 시켜야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책상 위는 온갖 기본서들로 뒤덮여 간다. 기본서 뿐만 아니라, 문제집, 최신판례집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불안해서 양을 늘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자료를 탐닉한다.
하지만 어차피 뇌에 방대한 지식을 모두 탑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분량이 늘어날수록 복습 주기는 무너지고, 중요한 내용을 걸러내는 눈은 자꾸만 흐려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불안 회피적 학습(anxiety-avoidant studying)이라고 부른다. 불안을 줄이려는 시도지만, 사실상 학습의 효율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아무리 똑똑해도, 직전에 본 사람은 못 이긴다. 특히 암기성 시험일 때는 더욱 그렇다. 변호사 시험처럼 절대적인 공부량 자체가 방대한 시험인 경우에는, 미리미리 양을 줄여 둬야 겨우 '직전에 본 사람'이 될 수 있다. 불안 때문에 늘린 양은 성적표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두 번째 특징은 ‘학자파’다. 이들은 책을 읽다가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절대 넘어가지 못한다. “왜 이렇게 규정했지? 판례는 왜 이렇게 해석했을까?”라는 의문에 붙잡혀 한 챕터를 이틀, 사흘씩 붙잡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해 중심의 공부는 중요하다. 하지만 시험은 연구가 아니다. 시험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정해진 범위를 답안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묻는다. 이해가 안 되면 일단 표시해 두고 넘어가는 ‘진도 관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파 수험생은 완벽한 이해를 추구하다 진도가 절반도 나가지 못한다.
실제로 대학원에 진학하면 이런 태도가 환영받는다. 연구자의 길에서는 의문을 깊게 파고드는 태도가 학문적 성취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험의 길에서 이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합격이 목적이라면 ‘일단 암기하고 나중에 이해’하는 전략적 태도도 필요하다. 연구를 하고 싶다면 진짜 대학원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세 번째는 ‘물음표 살인마’다. 강의 중에 떠오른 모든 질문을 반드시 강사나 교수에게 직접 물어야 직성이 풀린다. 질문하는 습관은 좋다. 그러나 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설명했나요?” “판례가 이렇게 바뀌었는데, 이 교재는 개정이 반영됐나요?” “저는 이렇게 이해했는데, 그게 더 맞지 않나요?”
문제는 질문 자체가 아니라, 질문이 ‘진도 방해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경우에는 강사나 교수에 대한 평가단이 되기도 한다. “이 강사는 왜 설명을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하지?”, "강사 바꿔야 하나."이런 생각에 시간을 쓰다 보면 정작 자기 답안을 다듬을 시간은 줄어든다.
시험에서 점수를 매기는 건 강사의 강의력이 아니라, 수험생의 답안지다. 질문은 ‘필요할 때 선택적으로’ 해야 한다. 질문하는 과정에서 자기 확신을 얻는 건 좋지만, 모든 의문을 해소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시험 준비는 끝없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하루가 지나면 절반 가까이 사라지고, 일주일 안에 복습하지 않으면 대부분이 소실된다. 그래서 시험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일주일 안에 최소한 한 번 복습하기’다.
하지만 똑똑한 수험생일수록 이 원칙을 무시한다. “나는 한 번 보면 이해하니까 괜찮아.”라는 과신 때문이다. 또는, '한 번 이해했으니까 안 까먹겠지?'라고 생각한다. 결과는 뻔하다. 시험장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합격하는 사람들은 뛰어나게 똑똑하지 않아도 이 원칙을 지킨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보고, 반복하면서 지식을 단단히 만든다. 자꾸 물고 늘어지다가 복습을 못하면, 애써 이해한 지식들도 통으로 날아가고야 만다. 벼락치기를 하고 난 다음 날이면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경험을 나만 해본 것은 아닐 것이다. 조금이라도 복습이라는 물을 또 붓고 부어야 겨우겨우 뇌에서 지식이 찰랑거리게 된다.
마지막은 브레인스토밍형이다. 이들은 공부하다가 생긴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 예를 들어 행정법을 공부하다가 “실제로 뉴스에서는 이 판례가 어떻게 보도됐지?”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검색창을 연다. 기사 한두 개만 보면 괜찮다. 하지만 결국 정치 기사, 사회 칼럼, 다른 블로그 글까지 읽다가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런 태도는 지적 호기심을 넓히는 데는 유익하다. 어쩌면 이 시대에 필요한 진짜 인재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험 준비라는 맥락에서는 치명적이다. 깊이 들어가야 할 시험 범위는 놓치고, 쓸모 없는 지식의 파편만 머릿속에 쌓인다. 결국 시험이라는 무대에서는 ‘얕고 넓은 지식’이 아니라 ‘집중된 범위 내의 숙련’이 승부를 가르기 때문이다.
똑똑한데 불합격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결국 ‘공부의 본질에서 벗어난 습관’이다. 불안을 달래기 위해 양을 늘리고, 완벽한 이해에 집착해 진도를 못 나가며, 질문과 호기심으로 자기 공부 시간을 갉아먹는다. 시험은 지능을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시험은 한정된 시간과 범위 안에서 반복하고 숙련한 사람에게 승리를 안긴다. 합격을 원한다면 똑똑함을 믿는 대신, 단순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
1. 필요한 분량만 정하고 지키기2. 이해가 안 되면 표시해 두고 넘어가기
3. 질문은 핵심적인 것만 추려 하기
4. 일주일 안에 반드시 복습하기5. 공부 중엔 호기심을 잠시 묶어두기
합격을 만드는 힘은 ‘비범한 지능’이 아니다. ‘평범한 규칙을 꾸준히 실천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