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한마디에 왜 늘 내가 손해를 감수하게 될까?
자꾸 손해 보고 있나요?
대화를 마친 뒤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는다. 싸운 것도 아닌데 꺼림칙하다. 억울한 것도 아닌데 자꾸 되새김질하게 된다.
“이 말은 사실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내 일이 돼버렸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내가 먼저 양보했고, 먼저 맞춰줬고, 먼저 감정을 눌렀다. 말투 하나 때문에 손해를 감수한 셈이다. 왜 나는 자꾸 그런 말을 고르게 되는 걸까.
다음 항목 중 5개 이상 해당된다면, 당신은 말투 안에 손해 감수 패턴이 내재된 사람일 수 있다.
-“괜찮아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기보다는 내가 감당하는 편이다.
- 다툼이나 충돌을 피하려고 먼저 물러선다.
- 회의나 대화 중에 내 생각보다는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 내가 뭔가를 도와줄 때, ‘상대가 고마워하길’ 기대한 적이 있다.
- “그냥 내가 하는 게 편해서…”라는 말을 자주 한다.
- 거절한 뒤에도 괜히 미안해진다.
- 혼자서 책임을 더 많이 지게 되는 일이 반복된다.
→ 체크가 많을수록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말투’가 습관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 착한 말투가 당신을 지켜주는 것 같지만, 실은 스스로를 가장 먼저 침묵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손해 보는 말투의 핵심은 ‘습관적인 자기 삭제’다.
“제가 할게요”, “그냥 넘어가죠”, “괜찮아요”라는 말 안에는
사람 좋다는 평판을 유지하려는 무의식적인 전략이 들어 있다.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말로 감정을 덮는 법’을 먼저 배운다. 결국 말의 내용보다 말의 의도가 자기 보호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배려와 포기는 다르다. ‘이번에도 내가 감당해야겠다’는 태도는 상대에게는 편할지 몰라도,
나 자신에게는 침묵을 강요하는 방식이 된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고, 싸우고 싶지 않았고, 누구보다 원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이 양보했고, 더 조용히 감췄고, 더 먼저 움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을 먼저 배려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도리어 “너는 늘 잘해왔잖아”, “네가 좀 더 어른스럽잖아”라는 말로 더 많은 감정을 감당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다. 배려는 반복되면 책임이 되고, 양보는 당연해지면 권리가 된다. 내 말이 자꾸 손해로 이어지는 이유는 상대가 모질어서가 아니라, 내가 경계를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말을 줄이거나 피하는 대신, 조율된 문장으로 ‘손해 감수 말버릇’을 멈추는 연습이 필요하다
① “그건 제가 아닌 다른 분과 상의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 회의나 업무 요청에서, 내가 책임지지 않아야 할 일까지 떠안을 때
→ 포인트: 회피가 아니라, 책임선을 분명히 그어주는 말
② “지금은 도와드리기 어려운데, 다음 주 중이라면 조율 가능해요.”
→ 즉각적인 요청이나 돌발 상황에서 부담을 조정할 때
→ 포인트: No라고만 하지 않고, ‘조건’을 덧붙여 협상형 말투로 전환하기
③ “조금 불편했지만, 다음엔 이렇게 조정되면 더 좋겠어요.”
→ 반복되는 무례함이나 선을 넘는 요청에 대한 감정 표현
→ 포인트: 비난 없이, 감정을 담은 피드백을 명확하게 전하기
이 세 문장은 거절과 배려, 표현과 존중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 말을 아끼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필요한 말을 정확한 형식으로 꺼내는 연습이다.
말을 바꾸려면 실제 장면을 상상하며 훈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다음은 자주 겪는 ‘손해 보는 대화’ 장면에 맞춘 거절 훈련 시나리오다.
시나리오 1. 회식 준비, 또 나에게 몰릴 때
- 상대: “○○씨, 이번에도 회식 장소 좀 알아봐 줘요~ 늘 잘하시잖아요.”
- 연습 대답: “지난번에 제가 두 번 연속 맡았으니 이번엔 다른 분이 해주시면 좋겠어요. 다음엔 다시 제가 하겠습니다.”
시나리오 2. 돌발 야근 요청을 받았을 때
- 상대: “오늘 급하게 이것 좀 정리해 줄 수 있어요?”
- 연습 대답: “지금 바로는 어려운데,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하는 건 가능할 것 같아요. 급하시면 다른 분과 함께 나누는 건 어떨까요?”
시나리오 3. 반복되는 감정 노동 요청
- 상대: “이 얘긴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좀 들어줄래?”
- 연습 대답: “네 마음 이해는 돼. 그런데 나도 지금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듣기 어려울 것 같아. 조금 정리되면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이처럼 말의 기술은 감정을 숨기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중하게 그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거절은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말은 관계의 온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자기 존중감의 기준선이기도 하다.
‘말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 이전에, ‘더 이상 내 감정을 지우지 않는 말’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문장 하나다.
“이번에는 제가 안 할게요.”
“그 말은 조금 서운했어요.”
“그건 제 몫이 아닌 것 같아요.”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비로소 나 자신이 보호받는다. 손해 보지 않는 말은 이기적인 말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말을 통해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