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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현 Aug 21. 2021

유도와 몸(1) 나의 몸은 어떤 몸인가?

30대 여자의 유도 수련기 2

몸과 힘


구글에서 '유도선수 몸'을 검색하면 나오는 송대남 전 선수, 현 코치의 사진

아무래도 유도선수라고 하면 보디빌더와의 근육과는 다른 느낌의, 부피가 초인적으로 크진 않지만 굉장히 단단해 보이는 그런 몸이 연상됩니다. 각 종목의 프로 선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달한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몸은 거시적으로 보자면 움직임의 결과고, 미시적으로 보자면 움직임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특히 격투기에서는 체급, 다시 말해 체중이 공정한 경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척도입니다.


유도 경기의 체급은 여자의 경우 -48, 52, -57, -66, -70, -78, +78로 나뉘고, 남자의 경우 -60, -66, -73, -81, -90, -100, +100으로 나뉩니다. (숫자가 어떤 규칙에 따라 변화하는지 보이시나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몸싸움을 위해선 몸의 무게 자체가 중요한 거죠. 체중은 곧 힘이니까요.


유명한 움짤. 몸의 구성성분-지방과 근육-과는 상관없이 몸 자체의 무게에서 나오는 파워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 복싱의 경우엔 체급이 -48, -51, -54, -57, -60... 등으로 나뉘는데, 유도와 비교해 보면 유도 체급 구분의 갭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격기를 배워 본 적은 없습니다만, 유술이 타격기에 비해 그나마, 비교적, 조금이나마 체중에 덜 구애받는 종목이라는 뜻이 아닐까... 그런 추측을 해 봅니다.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최근의 인바디입니다. (근육량이 줄었어요!!! 왠지 자존심 상해!)

저는 신장 158cm에 52~55kg 정도를 오가는 신체 스펙을 갖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2~30대 여성의 평균 체중은 58kg, 같은 연령의 남성 평균 체중은 74kg 가량인데, 여성 평균보다 조금 작고 가벼우며 남성 평균에 비해서는 70%를 조금 넘는 정도의 체중이라는 계산이 나오네요.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제가 작고 가볍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리치가 짧고 힘이 약하다는 말이 되고, 따라서 더 많이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체중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상대의 범위가 달라지는 거죠.



몸, 평가, 기준


윽.... 이...뭔....??

여기서 잠깐... 여자의 체중, 가볍다, 무겁다, 뭐 이런 말을 들으면 대충 이런 표가 연상되기도 하죠. 인터넷 하다 보면 한 번 이상은 꼭 보게 되는 표입니다. 제 키에 해당되는 '예쁜 체중'은 46.2kg이라고 하는데, 제가 공황장애 때문에 비쩍 말랐을 때도 저렇게까지 가벼워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엔 47kg에서 더 먹어도 찌질 않아서 이걸 어떡하나... 나 죽을병에 걸렸나... 대충 이런 생각을 했었죠. 지금 저 체중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가 총 7kg를 빼야 하는데, 그럼 여자 몸에 지방이 딱 3kg가 남는... 그냥 말도 안 되고 사람이 살아 있기가 힘든 그런 몸이 된다는 뜻이네요.


뭐 이렇게 극단적인 체중까지 원하진 않더라도, 굉장히 많은 여성들은 키와 몸무게(요새는 키빼몸-키 빼기 몸무게라는 것도 있더라고요)에 집착하며 살아간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도 거기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이상적인 것으로 권장되는 걸그룹의 몸-지방량이 너무 적어서 월경을 거의 하지 않게 된다고 하죠-같은 걸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가끔 아 나 요새 너무 살쪘나? 같은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라서요.


사람이 그래도 최소한의 가오가 있으니까... 내 몸을 증오하고 체중계 숫자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몇 시 이후 야식을 먹으면 안 된다'같은 계획을 세운 적은 없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내 체중이 너무 무거운가?'라는 질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어요.) 언제나 머리 한구석에는 내 몸이 보기 좋은지 평가하는 숫자 기준이 있었던 거죠.


-48kg급 강유정 선수가 사진으로 남긴 몸

요새는 또 트렌드가 바뀌어서, '깡마른 몸'이 아닌 '탄탄마름' 몸이 유행이기도 하죠? 원래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몇 달간간 빡세게 헬스장 기구를 당기고 식이조절을 해 '지방을 쫙 뺀', '근육의 결이 겉으로 보이는' 몸을 바디프로필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유행이고요.


글쎄요, 여성의 근육이 보이는 몸이 남에게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여성성 없는 몸', '부끄러워해야 몸'으로 여겨지던 과거에 비하면 그래도 낫지 않은가 싶긴 해요. 하지만 동시에 결국 '아름다움의 기준'이 바뀌었을 뿐, 근본적으로 변한 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구글에 '바디프로필'을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 첫 페이지입니다.


바디프로필 부작용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몇 달간 빡센 운동(칼로리를 엄청나게 소비함)과 식이조절(섭취하는 칼로리를 제한함)을 해 만든 몸이 '평소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돌아오는 일종의 요요 효과겠죠.


후유증은 육체와 정신 양면으로 옵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몇 달간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말자'고 조여 두었던 끈이 '멋진 바디프로필 사진'이라는 결과를 받고 나니 완전히 풀려 버리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보상-욕구가 생기는 것이겠죠. 실제로 바디프로필 촬영 뒤 많은 분들이 폭식증에 시달리시고, 촬영을 위해 뺐던 몸무게는 그 이전보다도 더 늘기도 한다고 합니다. (칼로리를 전만큼 소비하지 않고, 섭취하는 칼로리는 폭식으로 인해 전보다 늘어났으니 당연한 결과겠죠? 특히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한 만큼 탄수화물을 향한 욕구가 엄청나진다고 해요.)


저는 피트니스 전문가도 심리학 전문가도 아니라 이에 대한 과학적인 메커니즘이나 해결책을 이야기할수는 없습니다만(당연하게도), 바디프로필 촬영이란 근본적으로 많은 여성이 입에 달고 사는 '다이어트'와 말만 달랐지 같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는 내 신체를 '기능하는' 몸이 아닌 '보여 주기 위한' 물체로 생각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움직이고 변화하는 몸


156cm에 -57kg급, 요시다 츠카사 선수의 빠르고 강하고 정확한 허벅다리 기술

위에서 말했듯 저는 한때 가오를 위해 티는 안 내지만 가끔 거울을 보며 내가 요새 좀 살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이전엔 '너무 살쪘나, 덜 먹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요새 잘 먹었더니 체중이 좀 늘었네.' 하고 생각합니다. 살을 찌우거나 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몸은 내 생활의 결과임을 인식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 계기는 역시 유도였습니다. 유도를 하다 보니 자연히 근육이 붙었고, 스스로 거울을 볼 때도 몸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팔을 올리면 삼각근이 튀어나오고, 팔에 힘을 주니 삼두가 단단해진 게 보이고, 팔의 둘레가 커진 게 보였습니다. 이 모든 게 제가 매일매일 열심히 운동한 결과였어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제 삶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즐겁게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 몸이 차차 변해 가는 과정을 본 건 살면서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SNS에 올렸던 1년간의 변화. (좌->우)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이 변하고 나니 좀 더 욕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더 몸이 좋아지고 싶기도 했고, 몸 사진을 몇 번 찍어 올리니 SNS상에서 관심도 받고.(유도 영상은...그만큼 관심 못 받는데...) 헬스를 하면 더 눈에 보이게 근육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힘도 늘고 몸도 더 멋지게 만들 겸 헬스를 하자는 계획을 세워 보기까지 했습니다.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유도하느라 너무 바빠서)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눈에 보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면 헬스가 더 효율적일 텐데, 아마 삼분할... 소근육... 대근육... 이런 걸 배우면 될 텐데(여전히 뭔지 잘 모름),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건 '근육이 크고 그 데피가 보이는 몸을 지닌 나 자신'이 아니라 '유도를 잘 하는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요. 꽤 중요한 깨달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과도기를 거쳐 다시 한 번 생각의 변화를 겪고 나니 거울 앞에서 몸 사진을 찍어 보는 횟수가 줄었고, 제가 좋아하는 운동 자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물론 제 몸을 굉장히 좋아합니다만, '이런 몸을 만들자'는 생각은 하지 않고, 내 몸은 99% 이건 내가 열심히 운동한 결과라고만 생각합니다.


(물론 유도를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모든 운동에는 그 운동의 움직임에 걸맞는 힘이 필요하죠. 어떤 사람들은 기술과 힘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운동을 업으로 삼는 선수들은 당연히 웨이트가 필수입니다만, 저는 아직 초보 생체인이니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른 글에서.)


더불어, 위에서 말한 '체중=힘'이라는 공식 역시 내 몸의 무게를 인식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다 줬습니다. 지금 저는 체중이 늘어도 전혀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맨 위에서 체급은 곧 힘이라고 이야기했죠. 매일 도장에서 저보다 무거운 남자들과 대련을 하다 보면 힘의 한계, 그리고 체급의 한계 등을 자연히 체감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체중이 느는 것은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이 갈 정도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걸 알게 되죠. 이 역시 '체중에 대한 마지막 집착'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지금 몸을 '움직여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도구'이자 '삶의 결과'라고만 인식합니다. 체중을 줄이거나 늘리겠다는 생각 둘 다 하지 않습니다.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보다 내 몸으로 무엇을 성취해 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훨씬 재미있습니다. 정말로.(대회에 나갈 때는 예외입니다. 제가 출전하기를 원하는 체급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겠죠? 먹는 걸 줄여야 되겠죠? 아직 잘 모름. 그 때가 오면 제 생애 첫 다이어트에 도전하게 되겠네요.)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이유


정유인 수영선수의 대박킹왕짱광배근.


상기의 이유로, 모든 여성들께 (굳이 유도가 아니라도)운동을 권하고 싶어요. 여성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운동을 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게 현대 의학의 정설이죠. 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보여 주기 위한' 물체로 몸을 인식하는 데 익숙합니다. 작은 옷-인터넷 쇼핑몰에서 프리사이즈라고 불리는-에 몸을 맞춰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너무나 익숙하고, 미용체중이라는 개념에 익숙하고, 살이 찐 상태를 남성보다 훨씬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깁니다. (여자의 몸에는 남성보다 지방이 많은 게 과학적으로 맞습니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굶는 다이어트' '1일 1식' '연예인 OOO 식단' 등을 따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고요.


겪어 온 바에 따르면 많은 남성은 내 체중이 너무 가벼우니 살과 근육을 늘리겠다고 말하지만, 많은 여성은 본인의 체중이 정상 체중을 밑돌아도 뱃살이 너무 많다, 숨겨진 살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지요. 항상 마른 몸이 '정상'이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살아왔으니까요.


나의 몸을 새롭게 바라보고, 나아가 내 몸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내 움직임에 따라 내 몸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아는 경험이 위와 같은 사고의 틀을 깨고 나오는 데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격투기든, 구기든, 역도 혹은 웨이트리프팅이든, 그 어떤 스포츠든 과거에는 성취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목표로 삼아 노력 끝에 성취한다는 건 장난 아닌 성취감을 줄 테고요.


우리 모두 평균 운동량이 적을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우리의 몸은 움직이고 기능하기 위한 존재입니다. 기왕 살아남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거,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게 좋겠죠. 거울 앞이 아닌 스포츠 필드-도장, 운동장, 헬스장, 어디가 됐든-에 서 봐요.


(제 종목이 유도인 만큼... 여러분이 유도를 하신다면 제가 특별히 더 기쁘겠죠?)




다음 글에서는 '작은 몸'을 가진 제가 '남초밭'인 유도장 몇 군데를 전전하며 어떤 고충을 겪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또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적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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