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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May 18. 2024

판교에서 온 서퍼의 마음

원하는 파도가 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 지쳤다. 하는 수 없이 그보다 덜 마음에 드는 파도를 잡아본다. 자빠졌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생각이 든다. 아 어차피 자빠질 거 마음에 쏙 드는 파도에 올라나 타 볼 걸. 이번엔 뭐가 됐든 마음에 드는 놈이 아니면 나도 타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져본다. 한참을 둥둥 떠 있는다. 저 멀리부터 스멀스멀 파도들이 모양을 잡아 온다. 어 이놈인가! 하는 순간 다른 서퍼가 그놈을 잡아탄다. 그 서퍼는 신이 난 듯 파도 위에 올라타 춤을 춘다. 아 저 파도 내 파도였는데! 라며 부러움에 그에게 슬쩍 눈을 흘긴다. 또 한참 그 잘생긴 파도가 오지 않는다. 둥둥 떠 있는다. 햇빛에 뒷목이 뜨겁다. 아오 몰라. 아무거나 적당한 놈으로 타자는 마음이 불쑥 든다. 잡아보려 했지만, 그 적당한 놈은 힘이 부족해 나는 서 보지도 못하고 파도에 쓸려 해변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두세 번 더 파도에 쓸리니 이미 모래사장 앞이다. 고민과 결정들이 지나간 파도 숫자만큼 나를 넘나 들었지만, 결국 나는 파도를 탄 것도 타지 않은 것도 아닌 채 바다를 빠져나왔다. 바다로 들어오기 전 회사 멤버들이 우린 어떤 파도를 탈 거냐며 물었던 전화가 떠오른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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