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이로움

산책과 루틴

by 누워있는 아보카도

우리는 매일 오후 한 시간씩 산책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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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나가기 전 산책 코스를 신중하게 고민하지만 산책의 주도권은 개가 쥔다.

개는 본인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 개가 앞서 가고 나는 개를 따라간다.

개는 줄을 당기며 본인의 의사를 표현한다. 나는 대체적으로 개의 의견을 존중해 주지만 가끔 동의할 수 없다. 나의 반대 의사는 우리 개의 목줄을 개가 가고자 하는 반대방향으로 당기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그럼 개는 차라리 주저앉는다. 개의 머리와 몸은 여전히 개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 개는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개는 내 반대에 반대한다. 짐승과 인간의 줄다리기는 팽팽하다. 인간이 짐승보다 몸무게도 세배는 많이 나가고 팔다리도 길고 직립보행도 하고 생각도 복잡하게 하지만 개의 고집을 현명하게 꺽지 못해 그저 줄을 당기는 것으로 개에게 반대한다. 대치가 길어지면 개는 슬그머니 일어나 내 쪽으로 오는 듯하더니 다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냅다 달린다. 이때 개의 행동에 속아 긴장을 늦춘다면 개의 목줄을 놓쳐 개가 달아나 버리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으니 손과 어깨에 힘을 빼면 안 된다. 나는 개의 이름을 연거푸 부르며 안된다고 거듭 말한다. 개는 여러 번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나서야 자신이 졌음을 인정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터덜거리며 온다. 이때 머뭇거리면 다시 개가 반대로 뛰어 달아나니 잽싸게 나의 의견을 관철해야 한다. 개는 터덜거리다 이내 나와의 신경전을 잊는다. 개는 아무렇지 않아 졌다. 개는 다시 신나게 이곳저곳 냄새를 맡고 파헤치고 오줌을 갈긴다. 앙금이 남는 건 인간뿐이다.


우리는 숲으로 간다. 숲의 초입은 나무가 이리저리 쓰러져 있고 덤불이 엉켜 있고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개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해 숲의 입구를 지나치려 한다. 하지만 이 지저분해 보이는 입구를 지나면 소나무가 쭉쭉 양 옆으로 뻗어있는 길이 나온다. 간간이 들리는 차소리를 제외하고 숲에는 나와 개만이 있다. 아니다. 다른 개와 다른 주인들도 있다. 숲의 중간에서는 큰 개들이 목줄을 풀고 마음껏 뛰어다닌다. 개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나의 개를 발견하면 호기심을 주체 못 하고 바로 달려오지만 환영받지는 못한다. 나의 개는 예의 없이 들이대는 개들에게 이빨을 드러내 보이고 으르렁거리며 꺼지라고 경고한다. 그래도 나의 개의 의중을 눈치채지 못한 둔한 개에게는 위협을 가한다. 그마저도 놀이로 생각하는 개에게는 쫓아가서 위협한다. 예의 없는 개들의 대다수가 내 개의 두 배 이상의 체급을 가지고 있기에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나의 개는 아랑곳없이 꺼지라고 대놓고 말한다. 큰 개들의 대부분이 개학교를 졸업하고 사회화가 잘 되어 있기 망정이지 아니었음 이미 나의 개는 크게 다쳤을 수도 모르겠다.


개들이 람보르기니처럼 날뛰는 중간 숲을 지나면 한적하고 길이 좁아지는, 그러나 멋들어진 숲이 나온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바람이 나무를 뒤흔들어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부서진다. 새들이 지저귄다. 그곳에는 나와 개와 나무와 새들 밖에 없다. 낙엽을 밟아 사부작 거리는 소리. 내 숨소리. 개의 거친 호흡. 나무 냄새. 봄을 맞아 날씨가 풀리는 냄새. 풀냄새. 나무 냄새. 그런 것들밖에 없다. 그곳에서는 모처럼 개보다 숲 자체에 신경이 간다. 개의 저지레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냥 아무도 없는 숲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이 묘하게 감동적이다. 가끔 해가 나고 아니면 구름 져 어두 컴컴한 숲의 풍경이 이렇게 안심이 될 수 없다. 이끼로 뒤덮인 낮은 구릉이 낙엽으로 뒤덮인 골짜기가 앞으로 더 나아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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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는 개의 이로움을 깨닫는다.



나는 나의 쓸모를 찾을 수 없어 너무 괴로웠다. 지원서를 내도 번번이 서류에서 탈락했다. 내 박사학위는 지원자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의욕조차 인사팀에게 일으키지 않았다.

집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며 청소를 하며 밥을 하며 나의 10년 공부가 결국엔 무쓸모였다는 생각에 수없이 괴로웠다. 괴로움은 나의 의욕을 앗아가고 무의욕인 상태로 집에 들어앉아 다시 괴로워하는 일이 버거웠다.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으나 아무거나 했으면, 아무나 나를 찾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하였다. 마음이 산만한 나날들이었다. 즐거운 일이 없는 날들이었다. 개와 함께 집에 있을 때 개도 나도 지루함에 절여져 가는 날들이었다.


매일 한 시간씩 숲으로 가는 일은 나에게 때로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도 있다는 걸 납득시키는 과정이었다. 시간을 들여 밖으로 나가고 해를 쐬고 바람을 맞고 걷고 개를 운동하게 하고. 이런 일들이 전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낭비가 아니라고 숲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개라도 키우지 않았음 언제 깊은 숲까지 들어오겠냐며 나를 감화시키는 것 같았다.


루틴은 지루하다. 내가 딱히 정성을 쏟고 싶지 않은 일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는 건 공이 든다. 날씨를 확인하고 알맞은 옷을 입고 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집 앞으로 한 걸음 내딛기까지의 노력. 사실은 그 간단한 일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든다. 하지만 일단 밖에 나가면 관성에 따라 걷게 된다. 나는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나의 생활의 큰 틀을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인간에게 루틴이 얼마나 중요한지 규칙 없는 삶이 얼마나 나태해질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러한 별거 아닌 하루가 나중에 얼마나 소중해질 수 있는지, 내가 이맘때를 회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고 나를 행복했다고 기억할 단초가 된다는 것을 무시했었다.


나의 개는 이러한 일상의 소소함의 소중함을 계속 일깨운다. 내 일상에 유치하고 무가치한 일은 없음을 개는 특유의 단순함으로 나에게 계속 설득시킨다. 개는 이렇게 이로운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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