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능이 끝나자마자 다들 휴대전화를 구입했지만, 아빠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고1 때 삐삐라 불리던 무선호출기를 사주시고 1주일 동안 나와 대화하지 않으셨다.(더불어 엄마와도 대화하지 않으셨다.) 매일 인상을 쓰신 채로 학교에 픽업해 주셨다. 등교 시간은 아침 7시 반 이전, 하교 시간은 밤 11시 이후였기 때문에 버스를 타기도 애매했다. 아빠 성격 알면서 기어코 원하는 걸 받아내서 집안 분위기를 살벌하게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는 더 오래갔다.
운 좋게 며칠 후 우리 집 현관문 앞에 휴대전화 할인 안내문이 붙었고, 그날 아빠는 휴대전화를 사 주셨다. 안 사주신다고 한 이유가 돈이었나 보다. 그런 이유는 전혀 개의치 않던 시절이었기에, 그저 신나기만 했다.
휴대전화 뒤 번호 숫자 4개 중 반복되는 건 없다. 흔히 기억하기 좋은 숫자도 아니고, 번호 조합이 예쁜 것도 아니다. 그 번호를 고집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당연하게 아빠 번호와 같게 하라고 부모님이 말씀하셨을 것이고, 수긍했을 것이다.
복직하면서 아이 휴대전화를 사주어야 했다. 번호 뒷자리는 엄마와 똑같이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단칼에 거절했다. 내가 봐도 내 번호는 귀엽지도 멋있지도 않았기에, 남편 번호와 똑같이 하는 건 어떤지 권해보았다. 남편 번호는 내가 좋아하는 오리 닮은 숫자와 열쇠 닮은 숫자와 행운의 숫자들의 조합이고, 기억하기 쉽기에 괜찮은 제안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그것 역시 바로 거절했다.
아이가 정한 번호는 다행히 내 번호와 한자리만 달라서 가까스로 외울 수는 있었다. (가운데 자리 외우는 거만으로도 버겁기에.) 아이는 번호에 대해 설명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빠, 엄마의 번호 중 한 가지씩 다 있으니 기운 내라고 위로했다. 그 번호 역시 딱히 귀엽다거나, 입에 딱 달라붙는다거나, 머리에 쏙 박힌다거나 하는 특별한 매력은 없지만 우주에서 제일 멋있는 번호라고 칭찬해 주었다.
친정 아빠와 친정 엄마는 아이 번호가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하셨다. '보통' 엄마나 아빠 뒷자리와 똑같게 하지 않냐고 말씀하셨다. 다른 집이 정말 그런지 물어본 적 없고, 궁금한 적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아이가 가족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행동을 하지 않아서 은근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아이와 나를 일치시키는 것만큼 위험하고 나쁜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몸도 마음도 자꾸 일치되기 마련이다.
밤새 눈이 아파 뒤척이다 일어났는데, 아이의 한쪽 눈도 퉁퉁 부어있다. 내가 밤새 기침한 다음 밤은 너가 밤새 기침하듯이.
"너 왜 또 엄마 따라서 아픈 거야!"
"원래 맨날 엄마 아프고 나면, 다음 날 내가 아프잖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는 요즈음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내 인내심을 몇 번이고 무너뜨린다.(원래도 손톱만 한 인내심이지만.) 학교 가기 전에 밥을 먹지 않겠다, 같은 옷만 입겠다, 다른 마스크를 쓰겠다고 몇 번을 드러눕는다. 아픈 것은 몸이 하는 일이라 꼭 나를 따라 하는 아이지만, 머리와 마음으로 하는 것은 꼭 나와 반대로 하려 한다. 떼쓰지 못하고 살아온 부모를 따라 하지 않고 하루에 몇 번씩 땡깡 부리는 것이 내심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아이가 클수록 불안해 지고 나와 반대로 가고자 하는 아이를 그저 지켜봐주기가 힘들다. 요 몇 달 사이 아이는 베이비페이스와 하이톤의 목소리만 제외하고 많이 변했다. 말투와 말하는 내용, 그리고 행동들이 그렇다. 내 아이가 보통 다른 아이들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 내 모습을 보면 아이가 아닌 내가 더 많이 변했을 것이다.
마침 변화된 시점이 나의 복직 전과 후로 나누어지기에, 동일한 조건이 아닌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큼 서로의 변화를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딱 얼마큼 내려놓아야 아이에 대한 책임감도 내려놓지 않는 것인지 판단이 어렵다.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가 진정 아이 행동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내 기분이 좋지 않아서인지도 알 수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다.
아이에게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을 쏟아붓고 소리를 지른다. 특히 시간이 촉박한 출근시간에 그렇다.
"그렇게 엄마 잔소리가 싫으면, 너 할 일은 네가 스스로 하던가! 엄마 사무실 늦었는데, 밥도 안 먹고 옷도 안 입으면서!!"
아이가 반격한다.
" OO 시 대표 캐릭터 이름도 모르면서!!!"
(요즘 사회 시간에 우리가 사는 고장에 대해 배우나 보다?)
"내가 왜 몰라!! 내가 시청 소속 공무원인데! 나도 알아! 꽁! 드! 리! "
"거짓말하지 마!"
아이는 운다. 나도 울고 싶다. <제발, 아이 앞에서 울지 좀 마세요!!!>라는 강의를 들은, 배운 엄마니까 참는다. 눈물을 참으니 눈에 핏줄이 곤두서고 콧물이 나와 훌쩍인다. 아이는 과연 오늘 아침, 내가 울지 않은 걸로 쳐줄까?
특별히 날 낙심하게 하는 것들이 없었다. 살면서 부모님의 인정을 받지 못해 낙담 부스러기 비슷한 것들을 연습하며 살아온 대신, 큰 낙담을 할 기회를 잃고 살았다. 20년 넘게 바뀐 적 없는 전화번호 네 자리처럼,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큰 도전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뭘 도전해야 실패하고 낙담할 기회가 생기지 않는가.
결혼하고 남편과 아이 때문에 처음 낙담이란 걸 시작했으며 매일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사실 나 자신에 대하여 뭔가를 소망하고 낙담해야 하는데,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낙담을 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
아이에 대해선 그런 생각이 안 먹힌다. 특히 아이가 아플 때마다 분노한다. 더 많이 아프거나 영원히 아픈 아이들을 보며 이런 걸로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 뿐이다. 아이 틱 증상이 심해질 때, 기침 소리가 거칠어질 때, 알레르기로 눈이 퉁퉁 부은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내가 싫다. 예의 없는 태도의 아이를 바로바로 훈육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현관 밖으로 밀어낸 날 한없이 가라앉는다.
저녁에 또 날 보면, 함께 책을 보자며 활짝 웃고 혀 짧은 소리로 말을 걸겠지. 그러면 하루 종일 꺼져있던 난 살랑살랑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출근 전 또다시 아이와 진흙탕 싸움을 반복하겠지.
"정말, 내가 못 살아!!"
"엄마, 지금 살고 있잖아!"
그 어떤 상황도 다 지나간다는 것은 만 8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혹시라도 이 불행이 영원할까 봐 걱정하고 기도하고 불안해한다. 그러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닥칠까 봐, 조금 미리 낙담하지 않으면 더 큰 시련이 올까 봐 그렇다. 이만큼이라도 살아보니, 드라마에서만 보던 무시무시한 일들이 종종 닥치기도 하더란 말이다. 겪기 어려운 고비가 다가오기 전에 일부러 시름에 잠기는 것은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나의 걱정은 능동적인 걱정이다.
겉으로는 늘 아이를 걱정하는 우리 부모님과 타인의 의견에 수긍하지만 내심, 빛나는 아이라 믿고 있다. 아이의 전화번호 네 자리가 특별하듯, 그의 땡깡도 유별난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긴다. 하루하루 아들 걱정거리 덩어리로 존재하는 건 능동적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