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힘이 세다"

나의 오래된 사랑, 강분석 선생님

by 파랑S

오래전, 혼자 짝사랑하던 선생님의 글에서 사과 두 알이 담긴 사진이 올라왔다.





“벌레에게도 몸을 내어주고, 그러나 병도 들지 않고, 가뭄과 잦은 비도 비켜서 사과로 자란 녀석. 흙과 물, 햇볕, 거기에 어쩌면 나의 바람도 한몫을 했을까.”


사과.jpg 강분석 선생님의 '벌레 먹은 사과' 엽서 사진

나의 브런치스토리 메인 프로필 사진이다.



10년도 더 전에 기꺼이 농부의 삶을 선택하신 선생님은, 크고 환한 농작물 앞에서는 함박웃음을 지으시고, 벌레 먹고 땅에 떨어진 농작물 앞에서는 조용히 가슴 아파하셨다. 그 마음은 사진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깊은 산골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시는 선생님은, 처절해서 가슴이 아팠고 또 때로는 그 치열함이 너무나 뜨거워 그 열기에 데일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그 애달픔은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한 감상이었다는 것을. 선생님은 당신의 방식대로, 고요하고도 단단하게, 득도의 길을 걷고 계셨다.

가끔씩 수확한 농작물을 판매한다는 공지를 올리실 때면, 나는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낸다.


“○○입니다. ○○ 한 박스 주문합니다.”



두 문장 쓰는데, 손끝에서 아득함과 떨림이 동시에 올라온다. 마치 연서를 쓰는 기분이랄까. 오래전 감정이라 희미하긴 하지만, 분명 그런 기억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갑자기 홈페이지의 문을 닫아버리셨다. 당혹스럽고, 심지어는 화가 날 뻔했지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간절한 사연이 전해졌고,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늘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비 오는 새벽이었나?

선생님을 다시 찾았다.

닫혀 있던 홈페이지가 새로 열려 있었다.

심장이 훅 달아올랐다.


여기까진, 몇 년 전 일이다.




선생님의 글을 만나기 전에는, 나도 모르게 나는 허공에 말을 흘리며 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좋은 글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했던가.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문득, ‘나는 내 글대로 살아내고 있는가’라는 회의가 밀려왔고, 그 끝에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따라왔다. 여기저기 흩뿌렸던 말들을 지울 수 있는 만큼 지웠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진담을 거의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선생님은 나에게 나쁜 영향력을 주신 셈이다. 농담만 하는 인간이 되어버렸으니까.






나이가 더 들면 선생님 댁 방 한 칸에 들어가 그냥 뭉개며 살아 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자식이 없는 나이 든 선생님을 내가 봉양(?)하며 고요한 산골에서 선생님의 기운을 받아 살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사실은 지금도 지니고 있다.

선생님은 강건한, 인디언 추장의 아내 같은 이미지였다.

땅과 나무와 바람과 햇살과 비의 친구로 사시는 분이니 대지의 딸이라 해도 되겠다.

아아... 나는 아마 이렇게 평생 짝사랑만 하다가 삶이 끝나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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