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가지만 만지작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연습

by 서해

아이 등원부터 내 출근까지, 빠듯한 하루는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고 한 주도 금세 순삭이다.


어느덧 한 달.

달력을 넘길 때마다 애꿎은 마음만 더 촉박해진다.


‘아...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는 거 아냐.’

‘안 되겠어. 올해는 진짜 뭐라도 해야지.’


마음은 이미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정작 무엇부터 해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하고 싶은 건 마음속에 있다. 다만 그걸

현실 앞에 꺼내놓을 용기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 마음속의 그것들을 제외하고 ‘할 수 있는 것’만 떠올리다 보면 결론은 늘 같다.

하고 싶은 게 없다.


마흔이 되니 취향도 제법 까다로워졌다.


특히 음식.

조미료 들어간 음식은 못 먹겠고,

단 음식은 딱 질색이다. 기름진 것도 싫다.


일주일에 한 번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중국집 팀 점심날. 내 메뉴는 늘 짬뽕밥이다.

면도 아니고, 튀김도 아니고, 볶음도 아닌 맨밥이

나온다는 이유에서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


어릴 적엔 유행가 속 어머니가 불쌍하게 보였다.

저 맛있는 자장면을 왜 안 드실까.


이제는 그 어머니는 진짜 자장면이 싫으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딱 그런 입맛이 되었다.


사람 많은 장소도, 시끄러운 공간도 이제는 오래

버티지 못하겠다. 그런 자리는 일찌감치 눈치껏

피하고, 불편한 사람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둔다.


싫어하는 것들을 피하는 건 나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다. 하지만 아직 ‘진짜 좋아하는 것’으로 삶을

채우는 적극적인 행복 추구형까지는 못 된다.


결국 내 삶의 큰 줄기는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 채

잔가지들만 만지작거리는 모양새다. 큰 불행은

없지만, 그렇다고 큰 행복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조용하고 자연이 가까운 공간이다. 그래서 여행도, 등산도 좋아하고, 시댁 가는 것도 좋아한다.


시부모님이 계시는 강원도 원주의 전원주택 뒤로는

치악산의 사계절이 펼쳐지고,

앞으로는 너른 석양이 내려앉는다.


그 조용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몸이 먼저 느슨해졌다.


그리고 끼니를 정성껏 챙기는 것도 좋아한다.

텃밭에서 갓 수확한 싱싱한 제철 채소들은 그냥

먹어도 달았다.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직장 생활에 슬럼프가 찾아올 때마다 남편과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다 정리하고 원주 내려올까?”

툭 던지곤 했다.


하지만 대화는 늘 거기까지였다. 우리 부부에겐

그 말을 끝까지 밀어붙일 용기와 배짱이 없었다.


적당히 나이를 먹으니 취향은 점점 분명해지는데,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도시를 떠나는 건 여전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세요.'


자기 계발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 흔한 한 줄 앞에서

나는 매번 부족한 사람이 된다.


그러던 중 청약 열풍이 한창이던 때,

우리 부부는 인천 신도시 오피스텔 청약에 당첨됐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고,

집은 지어졌고,

입주일이 다가왔다.


당첨되던 당시만 해도 이 집을 입주일까지 가지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시절이라 적당한 시점에 프리미엄을 받고

매도할 줄 알았다. 그게 안되면 당연히 세를 줄

계획이었다.

입주를 앞두고

사전 점검을 하러 갔을 때

생각이 달라졌다.


말이 오피스텔이지 아파트와 다를 게 없었고,

복도식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심의 집보다 넓었고, 신도시라 아직 덜 채워져

조용했다.


넓고, 조용한 게 좋았다.


‘아, 여기서 살고 싶다.’


이번에는 마음의 소리를 그냥 두지 않았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꺼냈다.


“우리 여기로 이사 올까? 도심 집에서 여기로

옮기면 대출도 좀 갚고, 자금 여유도 생기잖아.”


남편은 곧바로 현실을 꺼냈다.


“출퇴근은 어쩌고? 서하 어린이집은?

여기서 살려면 차도 한 대 더 있어야 하는데,

그럼 정말 여유가 생길까?”


이번엔 무슨 마음에서인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대화를 조금 더 밀어붙였다.


“그럼 당장 이사는 말고, 세컨드하우스로 살아보면 어때? 계속 살자는 게 아니고, 몇 달만이라도."


그리고 덧붙였다.


"해외여행 갈 돈으로 여기 비용 부담하고,

결혼 10주년 선물도 포기할게.

세컨드하우스를 10주년 선물로 하자.”


여행 비용을 집을 '사용하는 데' 쓰자고 하니

남편도 슬슬 넘어오는 눈치였다.


마침 입주장이라 세를 맞추는 것도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아마 세입자를 만난

기분이었을 거다.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내가 좋아하는 그것’이.

조금씩 현실이 되어갔다.


나의 5도 2촌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