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가능성을 곁에 두기로 했다
내가 이 주말집에 기대한 건 우선 '해양 라이프'였다.
바다를 한없이 보며 사는 인생은 어떤 느낌일까.
바다가 오피스텔 바로 앞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주방 창 너머로 멀리 인천대교가 보였다.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 바다로 내달릴 수 있었다.
그 가능성을 늘 곁에 두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남편은 다소 맹랑해 보이는 '해양 라이프' 계획에
코웃음을 치면서도 내가 아이와 바다를 즐길 동안 자기만의 시간을 누릴 꿍꿍이를 조용히 세웠다.
어찌 됐든 서로가 손해 보지는 않을 것 같다는
묘한 합의 속에서 이 생활은 시작됐다.
남편은 연애시절부터 로또를 자주 샀다.
나는 되지도 않을 종이를 뭐 하러 계속 사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남편의 대답은 의외로 설득력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 로또를 사야 로또에 당첨되는 일도 생기는 거지."
마흔이 되어서야 그 말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투자를 해야 수익률이라는 것도 있고,
5도 2촌의 삶도 집이 두 개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에서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중장기계획을 세웠다.
팀원들끼리는
“5년 뒤 우리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는데
5년 뒤 매출을 어떻게 맞춰?”
“매출은 그렇다 치고 원가는 또 어떻게 맞추냐.”
하며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지만,
회사는 개의치 않고 매년 치열하게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다.
중장기 매출 계획 승인을 앞두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이만큼의 계획을 세워 본 적이 있던가.
“회사의 비전이 뭡니까?”라고 툭하면 묻던 내가,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10년 뒤의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걸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그 질문들이 보였다.
그래서 조금 과감해질 수 있었다.
맞벌이 생활을 하며 남편이 번 돈은 생활비로,
내가 번 돈은 고스란히 모아 왔다.
고정비를 포함한 월 지출액은 남편 월급을 넘기지 않았고, 내 수입은 적금과 투자로 나뉘었다.
꽤 그럴듯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시스템은 육아휴직과 집을 사면서 무너졌다.
수입은 줄고, 빚은 늘었다.
또 집을 사며 모아둔 목돈은 사라졌고,
마이너스 통장이 생겼다.
내 월급의 목적은 더 이상 적금도, 투자도 아닌
마이너스 잔고를 줄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회사 생활을 이어가다 잔고가 드디어 플러스로 돌아섰을 때, 난 세컨드 하우스를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다시 목돈이 들어가야 했고,
다시 마이너스 통장을 써야 했으며,
월 지출은 남편의 월급을 넘어섰다.
돈 모으는 재미로 30대를 살아온 내가 이런 결정을 하다니.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아마도 40대가 되니 노는 방식도,
돈 쓰는 취향도 달라진 모양이다.
아니면,
마이너스 통장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도심에서 먼 곳에 나를 두면
나는 떠나보겠다고,
아니면 다른 삶을 살아 보겠다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나는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데 투자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