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에서 배운 도시 사용법
이사를 거의 하지 않으며 자란 나는 결혼 후
새로운 동네에서 사는 게 꽤 재미있었다.
새로운 출퇴근 길도 신선했고,
산책 코스는 물론
세탁소, 마트, 미용실, 새로 만난 단골집들,
모든 게 여행처럼 느꼈다.
연고가 없던 동네도 금방 적응했고,
마치 오래 산 사람처럼 마음을 줬다.
신기하게 떠날 때는 미련이 없었다.
이 동네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면서
전세계약 4년쯤 되어 가면
“이제 여기서 할 건 다 한 것 같아.”라며
다음 동네를 찾았다.
우리가 여행자처럼 살던 사이, 동네는 눈에 띄게 바뀌고 있었다.
첫 신혼집이었던 불광천길 빌라촌엔
어느 날 사람들이 빠져나가더니 아파트가 올라갔다.
두 번째 집이던 응암동 신축 아파트도
재건축 단지였다. 입주할 땐
“도전해 볼 만한 가격”이었는데,
1~2년이 지나자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숫자가 되었다.
은평을 지나 고양, 파주까지 신도시들은
계속 커졌고, “분양만 받으면 돈 번다.”는
말이 농담처럼 오갔다.
그 분위기 속에서 여행자처럼 떠돌던
우리 부부도 자연스럽게 부동산 얘기를 하게 됐다.
그리고 을지로 아파트에 청약이 됐다.
이건 전적으로 남편의 작품이었다.
서울은커녕 수도권 청약에서도 줄줄이 떨어질 때, 나는 "청약은 역시 안 되는 거였어."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달랐다.
당첨된 최하위 점수의 평형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욕심을 버리면 되는 거였어. "
남향을 포기하고,
방 두 개 욕심을 버리고,
비선호 평면도를 골랐다.
그 결과,
앞에는 청계천이, 뒤로는 남산이 보이는 아파트에 청약이 됐다.
단, 22평 북향,
큰 거실 하나와 방 하나.
입지는 훌륭했지만 들어가 살 생각은 나지 않았다.
둘이 살기도 빠듯해 보이는데, 아이까지 셋이?
그런데 무엇에 씐 듯
이 집을 처음 본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24층에서 내려다본 도심 풍경 때문이었다.
맨해튼까지는 아니어도 시부야 스카이라인
정도는 견줄만했다. 회사에서 보는 종로의 풍경과는 또 다른 결이었다.
뉴욕, 파리, 취리히, 도쿄.
어릴 적 동경하던 ‘도시 안에서 사는 삶’이
그 풍경 속에
문득 겹쳐 보였다.
작은 집에 살고,
도시는 거실처럼 쓰는 삶.
“이거 딱 도쿄 라이프 아니야?”
나의 도심 생활은
뜬금없이 도쿄 여행자로 빙의되어 시작됐다.
문제는 짐이었다.
방 세 개 집을 여유 있게 쓰던 살림을
줄이고, 접고, 구기려니
몸보다 마음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쓰던 식탁은 이 집에 어울리지 않았다.
식탁 상판은 창고에,
식탁 다리는 시댁에,
식탁 의자는 동생집으로 갔다.
4인용 식탁은 잘게 분해되어 다음을 기약하며
흩어졌다.
스키 장비와 CD는 시댁으로,
책들은 친정으로,
TV와 세탁기는 가족들에게로.
이 집에 남을 수 있는 건 의미가 분명하고,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야 했다.
미니멀라이프는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었고,
남편은 더 버리자고 했다.
하나를 사려면 두 개를 버려야 했고,
그게 귀찮아져
아무것도 사지 않게 됐다.
좁은 집에
내 공간도 줄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넓은 공간과
아무것도 없는 여백을
갈망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말이면
넓은 도심으로 나갔다.
직장인이 빠져나간 도심은
파도가 빠진 갯벌처럼 조용했다.
그 텅 빈 공간을 나는 여행자처럼 걸었다.
주말 도심에는 관광객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담긴 서울과
내 눈에 담긴 서울,
그들이 느끼는 낯섦과
내가 느끼는 감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난 여행자처럼 도심에 살았고,
다음 여행지를 찾듯
바다가 가까운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