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살아낸다는 것

아이와 함께 한 생존형 도심 여행기

by 서해


도심 생활은 사실

여행자처럼 즐기기 전에

먼저 살아내야 하는 일이었다.


을지로 도심 집에 들어오긴 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주변은 전반적으로 어수선했다.


큰 마트, 유기농 식재료 마트, 전통시장까지 갖춘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 마트권‘ 에 살다

편의점도 입점하지 않은 곳이라니.

세탁소도, 아이와 갈 만한 놀이터도 마땅치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을 불안하게 한 건

주변에 즐비한 공구 상점들이었다.


아파트보다 그 상점들이 먼저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아이를 안고 보니 모든 풍경이 위태로워 보였다.


길거리 흡연, 노숙자, 도심의 비둘기까지.

그전엔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이

아이와 함께 보니 하나같이 불편했다.


어느 날, 아이를 아기띠에 안고 산책하던 중

근처 공구상점에서 정리하던 부품이 떨어져

내 발을 다쳤다.

하마터면 아이가 다쳤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소름이 가시질 않았다.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다시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그곳을 찾아가

인도에 적치된 물품을 치워달라고 항의했고,

치료비 3만 원을 받아왔다.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겁을 참고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행 중이었다면

환불받고 숙소를 옮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긴 여행지가 아니라

갓 돌 지난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할 삶의 터전이었다.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의 안전과 편의성을 기준으로

민원을 넣고 항의하고, 정보를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어린이집 근처 흡연 금지,

단지 내 배달 오토바이 진입 제한,

아파트 주변 도로의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너무 당연해 보이는 것들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다.


가장 불편했던 건 소아과였다.

소아과에 가려면

다른 아파트 단지까지 이동해야 했다.


동네는 어수선하고,

마트도 없고, 소아과도 없는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할까.

처음엔 막막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곳에서 살아내는 것,

어쩌면 그게 진짜 여행일지도 모르겠다고.


도심에서 살아가려면

생활 반경을 넓혀야 했다.


코앞에 없다고 끝은 아니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박물관이 보였고,

그 안에는 어린이 박물관이 있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민속박물관, 세종박물관,

창덕궁 앞 소리박물관까지.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삼청 유아숲놀이터는

플라스틱 바닥이 아닌 흙 놀이터였다.

알루미늄 미끄럼틀은 부모에게는 추억을,

아이게게는 모험심을 건네주었다.


사직동 서울교육청어린이도서관에는

출판된 어린이 책이 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이 작아 들이지 못한 책들은

여기서 마음껏 빌려 읽혔다.


연등회, 청계천 축제, 종묘제례악,

세계음식축제까지.

집 앞에서 열리는 축제들은

도심 생활의 뜻밖의 선물이다.


도심에 살아보니

생활 편의성은 분명 부족했고,

대신 오래 쌓여온 문화는

곳곳에서 숨 쉬고 있었다.


서하의 입에서

'종료(종묘)', '찬더꿍(창덕궁)' 같은 말이

툭툭 튀어나올 때마다

이 생활이 아이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걸 느낀다.


창덕궁 인정전 돌바닥에서

금 밟지 않기 놀이를 하고,

청계천에서 광화문까지

누가 먼저 가나 달리기 시합을 하던 시간들.


서하는 이 기억들을

커서도 기억할까.


아이와 함께 추억을 만들며

나는 이 도심 생활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더 젊었을 때였으면

더 즐길 수 있었을까.

문득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도 나쁘지 않다.


아이와 함께하는 도심 생활은

여행보다 더 진한,

진짜 여행 같으니까.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