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주근접이 빼앗아간 나의 숨구멍에 대하여
이 도심 집의 진가는
복직 후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직주근접이라니.
잠시 눈물부터 닦고 써야겠다.
내 통학인생을 말하자면 할 말이 많다.
버스를 타고 30분은 가야 했던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아니면 동생 손 잡고 20분은 걸어 등교했던
초등학교 시절부터였을까.
내 인생은 늘 집과 목적지 사이가 멀어 피곤했다.
첫 직장인 증권사는
업무 특성상 7시까지 출근해야 했고,
늦지 않으려면 5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나름 치장을 하고 또각또각 뛰던
조금 우스운 여자가 바로 나였다.
그 이후의 직장들도 다 멀었다.
아니면 집이 늘 먼 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게 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 피로를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며 살았다.
결혼 후 서울시민이 되었지만
종로 회사까지는 여전히 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도심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15분이라니.
지하철 역에서 회사까지도
10분은 걸리던 나에게
이 거리는 감개무량이었다.
내 평생의 통학 인생이
한방으로 보상받나 싶어 감격스럽기도 하고.
체력과 시간은 확실히 절약됐다.
대신 책이 사라졌고,
팟캐스트가 사라졌고,
출퇴근길에만 가능했던
작은 즐거움들이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동선이 너무 효율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육아의 몫이 커졌다.
아이 등원부터 하원까지,
올 케어 가능.
회사 동료들은
“집 가까워 육아하기 좋겠다 “고 부러워했지만
편하면서도 힘들었다.
줄어든 이동 시간은 자연스레 아이에게 쓰였고,
믿을 구석이 생긴 남편은 야근과 회식 일정을
조금 더 편하게 잡는 듯했다.
등원도 힘들지만 하원까지 챙기는 건
체력보다 정신이 더 소모됐다.
그렇다고 아이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힘들긴 했지만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은 아니어서
나는 또 버텼다.
장거리 출퇴근을 견뎌온 사람답게
이번엔 단거리 고효율의 육아를 견뎠다.
그제야 알게 됐다.
출퇴근에 쓰던 이동 시간이
내게는 생각의 시간이었고,
독서의 시간이었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숨 쉴 수 있는
나만의 숨구멍이었다는 걸.
그 시간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시간을 일부러라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걸.
내 생활은 누군가에게는
참 여유로워 보였고,
나조차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숨이 막혔다.
작은 집,
초단거리 출퇴근,
고효율의 워킹맘 생활.
더 이상 줄일 것도,
바꿀 것도 없어 보이는
완벽한 효율이라는 덫에
나는 갇혀 있었다.
이 보다 더 생산적일 수가 없어
조금도 바꾸지 못하겠는 덫.
답답한 이유를 더 일찍 알았더라면
숨구멍을 더 빨리 찾았을 것이다.
완벽한 효율을
조금은 느슨하게.
내 시간을 나에게 더 쓰면서.
도심에서의 빡빡한 2년을 지나
바다에 가까운 집에서야
잃어버렸던 숨구멍들을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