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숨이 트이던 주말의 공간
오피스텔 입주일에 맞춰
잔금을 치르고 키를 받았다.
문서 몇 장과 열쇠 하나로,
집은 그렇게 '내 것'이 되었다.
텅 빈 공간은 다시 봐도 좋았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집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기는 채우는 집이 아니라,
비워도 괜찮은 집 이라는 듯.
도심집에서 쓰던 것들을 나눠
주방 세간과 목욕 용품만 최소한으로 채웠다.
전부터 '언제가'를 위해 모아두었던 캠핑 용품들이 이 집에서는 제 역할을 했다.
소파 하나쯤은 있어야 하나 싶어
중고 가구 가게도 들렀지만,
그것이 들어선 집을 상상해 보곤 고개를 저었다.
이 집엔 눕는 것보다 앉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더 어울렸다.
이 집을 위해 새로 산 것은 수면 매트와
작은 빔프로젝터뿐이었다.
잠은 잘 자야 하고,
놀러 온 기분은 조금 내고 싶었으니까.
가장 큰 방에 매트를 깔고 이불을 펴자
아이는 구르며 웃었다.
거실엔 캠핑 의자 세 개와 도심집 창고에
묵혀 두었던 아이의 장난감들이 자리를 잡았다.
원래부터 거기 있던 것 처럼 어울렸다.
남편은 그동안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했던
물건들을 이 집으로 옮겼고,
가장 눈엣가시처럼 보던
내 디지털 피아노도 이참에 분해해서 실어 날랐다.
도심집이 한결 비워졌다.
버린다고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바다집에서
끝내 놓지 못했던 것들과 다시 마주하게 됐다.
남편은 이 정도면
이 집의 효용가치는 충분하다며 만족했다.
적당히 간소하게,
없어도 되는 건 없는 상태.
이 집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도심집에서는 주말에도 늘 바빴다.
치워야 할 게 있었고, 해야 할 일이 떠올랐는데
바다집에서는 달랐다.
빨래도 없고, 설거지도 없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치울 게 없으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주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 가족은 꽤 만족스러웠다.
아이는 신축 단지 곳곳에 있는 놀이터를 탐험하며 하루를 보냈다.
놀이터들에 이름을 붙이고는 하루에 한 번은
그 놀이터들을 가야 하루가 끝났다.
남편은 실컷 잠을 잤다.
도심집에서는 좁은 집이 답답해 나가자고 조르던
내가 있었고, 놀아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여기서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니,
남편은 마음 놓고 잤다.
나는 주말 새벽의 고요함을 누렸다.
아이가 깨어나기 전,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시간.
도심에서도 늘 새벽에 일어났지만
그 고요함은 달랐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집에서는 책 한 장을 펴도
마음이 자꾸 흩어졌다.
여행지 같은 이 집에서는 달랐다.
할 일이 없으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제야 숨이 트였다.
고요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나를 놓아주자.
아이가 깨어나면 간단히 아침을 먹고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서 바다로 향했다.
해양 라이프는 온전히 나의 계획이었으니
남편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남편은 자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건 여행이라기보다
다시 숨 쉬는 연습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