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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평살이 Jun 08. 2021

홍상수감독의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을 보면서

그렇게 미끄러져 우물에 빠진 부조리의 종말들

홍상수감독의 데뷔작이자 한국영화계의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한국영화사를 진동시킨 총성"이라 비유 할 정도로 충격적인 작품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영화의 특징은 비매개적이며 무의미로 언표되어 시종일관 모호함을 유지한 채 미끄러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연은 본질적으로 코드화 되지 않고, 정밀하게 번역되지 않은 채 서서히 일상이란 공간으로 스며 들어 홍상수식의 유머로 발현된다. 영화에 흐르고 있는 음악은 끊어 질 듯 기괴한 음질로써 등장인물들의 몽타주를 대변하는 쇼트들을 알 수 없이 흐트려져 있다. 홍상수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표면에 있으며, 영화는 표면을 담아내는 데 가장 적합한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표면이라 함은 그가 '일상성'을 주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멜로적인 환상으로 점철 된 영화언어에 철저하게 반기를 들고 있다는 것을 그의 영화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결국 그는 관습을 추종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선 매설 되어 있는 밀도 높은 직관성이 영화 매체가 예술로써 승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본질적이지 않으며, 한편으론 실존적이자 초현실적 에너지들이 홍상수의 영화들을 이끄는 주요한 요소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홍상수가 주로 활용하는 영화적 도구인 불륜, 술, 담배등을 통해 서울이란 도시의 균열을 미시적인 관점으로 되풀이 해서 바라보게 하고, 등장인물들이 불륜이란 사랑의 부조리와 지속적으로 마찰하면서 돼지처럼 허둥지둥 벗어나기를 시도한다. 종말에는 일상들이 뒤섞여 처참하게 살해 당한 효섭과 민재를 비춘다. 그 다음날에 보경이 신문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를 정확히 관객들은 알지 못한다. 그 후에 그녀가 신문을 바닥에 하나 둘 씩 깔고, 베란다를 향해 서서히 걸어가 창문을 여는 보경이 답답함에 바람을 쐬고 싶어서인지, 절망하며 투신을 하려고 한 건지 또한 알 수 없다. 이는 감독의 의도로 밖에 설명 될 수 없다. 이것은 식별할 수 없는 '공백'이다. 영화는 잠재되어 있는 일상이 무균질적으로 인간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공허함마저 증발되어 영화적 갈증을 느낄 틈새도 없이 영화는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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