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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평살이 Apr 23. 2021

윤단비감독의 남매의 여름밤(2019)을 보면서

식구의 밤은 아침을 향해 일상이란 운동을 반복한다.


윤단비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을 보았습니다.


계절은 시시때때로 기억을 회상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계절의 궤적을 쫓아가다 보면 그 시절 숭고하게 빛났던 마음들이 어렴 풋이 대화의 주제로 소환되곤 합니다. 어쩔때는 무더운 여름에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시원한 콩국수를 후루룩 먹으며 나눴던 담소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에어컨이 없었던 어느 한 여름에 온 식구가 집에서 그나마 가장 컸던 선풍기 앞에서 수박을 입에 힘 껏 베어 물며 더위를 해소하던 그런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이는 여름날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장례소식을 이웃들에게 부랴부랴 전하면서 느꼈던 감정의 추위가 이제는 부재할 수 없는 식구의 의미를 되새김질 할만큼의 여물처럼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계절은 계절 나름대로 흘러가는 장면을 담은 추억의 상영관이기도 합니다.


윤단비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일상을 말하는 영화입니다. 남매의 여름밤은 한국 영화 특유의 신파로 점철 된 질척 질척한 가족사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가난'을 위시하여 역경과 고난을 해쳐 나가는 성장영화도 아닙니다. 일상을 일상대로 그대로 풀어나간 이 영화는 식구가 주는 커다란 안정감과 포근함 같은 성질의 것을 집이라는 공간에서 담백하게 표현해 냅니다.

재개발로 인해 집에서 쫓겨나게 된 옥주(최정운)의 가족은 2층 양옥집인 할아버지의 집에 거주하게 됩니다. 그 공간에 한동안 일면식이 없었던 고모와 함께 살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추억을 담고 있는 이 집이라는 공간은 윤단비감독이 2개월동안 헌팅을 하면서 까지 공을 들였던 공간이라고 합니다. 옛날 가옥의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살리면서 따뜻함까지 잘 유지한 집처럼 느껴지지요. 2층의 구조로 되어 있는 이 집은 특이하게 2층을 가기 전에 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을 갖고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은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거주하는 옥주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게끔 자연스럽게 설정이 되어서 문이 닫히거나 열리는 장면들은 고스란히 옥주의 감정을 상징하는 역할로써 등장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집을 구성하는 각각의 장소들, 정원, 거실, 옥주의 방, 할아버지의 방, 베란다, 계단 등등은 가족 구성원이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장소로 마치 공간이 실제로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영화에 또 한가지의 특징적인 지점이라고 한다면 옥주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옥주는 가난함속에서 바쁜 아버지 대신에 동생인 동주를 잘 보살펴야 하는 어떤 가장과 같은 철 든 장녀처럼 비춰집니다. 그래서 옥주는 해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한 신념들이 있습니다. (극 중에서 이혼한 엄마를 찾아가려는 동주를 향해 '자존심'도 없느냐라는 말을 종종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눈썹 수술을 하고 싶었던 옥주는 아버지의 차에서 아버지가 판매하는 짝퉁의 신발을 몰래 훔쳐 중고거래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옥주가 가장이 아닌 한 여자로써 존재하고 싶은 어느 한 모습을 일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아는지 경찰서에서 나온 아버지가 차를 타고 가면서 옥주가 "짝퉁"이냐고 물었을 때 혼내는 것이 아니라 "공장은 똑같다"는 대답을 하고 씬이 넘어갑니다. (이 씬을 일부로 차안에서 위로 찍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더라구요.  차안에서 두 사람이 얼굴이 비스듬히 나오거나 짤려서 나오는데, 감정을 방향이나 장면의 이미지로 연출했다고 할까요) 또한 옥주는 자신의 방에 모기장을 쳐 놓고 잠을 자는데, 이 공간을 처음에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고모와 함께, 그리고 결말부에는 동주를 안에 자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옥주의 밤은 아침을 향해 쭉 뻗어나갑니다.

연출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중에 하나는 술에 취한 할아버지가 밤에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미소를 지으며 음악을 감상하는 장면을 목격한 옥주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지 않고 뒤돌아 계단에 앉아서 함께 감상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화면을 왼쪽과 오른쪽을 나눠서 시퀸스를 잡는데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연출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두번째로 장례식장에서 할아버지영정 앞에서 가족들이 정면으로 한명, 한명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비추는 시퀸스는 영화적으로도 깊이 있는 연출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 그대로 '식구' 인 것이죠.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함께 식구로써 존립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매의 여름밤은 식구의 의미를 무던하고 덤덤하게 풀어 낸 수작입니다. 영화에서 울려 퍼지는 신중현씨의 '미련'이란 곡은 윤단비감독의 자기담화 같은 메시지처럼 들려집니다. 그리워 할 사람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미련 없이 변함 없이 진정으로 '다정'해야 한다는 올 곧은 신념 말이지요. 그게 식구라면 그렇게 해야 겠죠.


신중현 - 미련


내 마음이 가는 그 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끝이 없이 생각할 때

보고싶어 가고싶어서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미련없이 잊으려 해도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가을 하늘 드높은 곳에

내 사연을 전해 볼까나


기약한 날 우리는 없는데

지나간 날 그리워 하네


먼 훗날에 돌아 온다면

변함없이 다정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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