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나는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길 위를 걸어서 폐허가 된 놀이터(이제는 그저 '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앞 정자에 앉아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난 우리가 게임이나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세계를 사는 사람일 확률은 아주 낮다고 말했다. 친구는 만약 우리가 게임 속 캐릭터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된다는 말을 했고 나는 수긍했다. 내가 하는 말에 친구가 토를 달면, 그게 또 맞는 말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이런 내가 줏대 없다고 했다. 그 말마저 맞는 말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나눌만한 말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고 짤막한 물음만이 입가를 떠다녔다. 너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행복은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아야 찾아오는 거야. 그렇지만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으면 결국 행복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행복은 뭔데? 몰라. 그래? 나도 몰라. 현재를 살어, 친구야. 나도 그러고 싶어.
친구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길 위를 걸었고 급기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대화 상대가 간절하게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은 지쳐 보였고 나는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포카리 스웨트 하나를 집어 계산을 했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밖은 추웠다. 발이 얼었고 손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말 상대고 뭐고 너무 추워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윽고 그건 찰나의 치기일 뿐이었고 내가 집에 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금 길을 걸었다.
세상은 적막했고 한편으로는 지난했다. 손에 음료를 들고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 24시 스터디 카페로 향했다. 끔찍이도 고요했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도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누가 와서 당신 뭐 하는 거냐고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포카리 스웨트는 한입도 마시지 않았다. 한입과 한 입의 차이를 아는가? 한 입은 숫자가 중심이 되는 띄어쓰기고, 한입은 행위가 중심이 되는 띄어쓰기다. 나는 두 개의 의미를 같이 담고 싶었다. 정말 한 입도 마시지 않았고, 한입도 마시지 않았다. 이 재미없는 난제에 웃을 때 나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페인은 이미 온몸에 침투했고 공복의 상태는 이를 악화시켰다. 카페인은 필요할 때는 곁을 안 주면서 이상하게 필요하지 않을 때만 나를 괴롭혔다.
새벽은 길었다. 나는 긴 거리의 가로수만큼이나 외롭고 느긋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괴로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나조차도 가로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항상 있던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뇌리에 얕게 파묻혀 있을 뿐이었다. 가로수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 걸까. 그걸 생각하다 보면 항상 눈물이 난다.
서울의 밤은 깊었고, 여독은 가시질 않았다. 나는 못다 한 말들을 허공에 담아 날려 보냈다. 그리곤 보이저 1호의 수명처럼 질기고 구차하게 타자를 쳤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곳은 의미가 너무 많다고 느꼈고 나는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한순간, 무엇이든 의미와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나는 홀로 무의미의 도그마를 선언했다. 이제 의미를 가지지 말자. 화장실 가듯 글을 배설하자. 그러고 나면 그만이다. 의미를 가지려 하지 말자.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자.
글을 쓰면서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이 글을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부끄러운 마음과 모든 이가 나의 글을 봐줬으면 하는 교만한 마음이 그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내 생각이 읽히는 건 부끄럽고 교만한 마음이다. 이 글을 쓸 때는 평소처럼 젠 체하며 온갖 미사여구를 붙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글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설하듯 써 내려간 글을 읽고 물을 내려 버려라.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