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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샘 Mar 04. 2024

엘리베이터 소동

선교를 떠나기 전, 에피소드 #1

필리핀 쓰레기 마을로 단기선교를 간다.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12월 어느 날. 이날도 나와 영우샘, 한나샘은 야근을 했다. 야근을 해도 행복한 것은 자원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7시 30분부터 세미나실에서 시작된 비누 싸기, 선물 포장, 밴드 안내를 마치니 밤 10시다.

 

포장한 짐을 가지고 1층으로 내려가야 해서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중학교 엘리베이터는 어르신이나 환자, 그리고 짐을 나를 때만 사용해서 어지간해서는 잘 타지 않는다. 혼자 내려갈까 하다가 한나샘에게 인심 쓰는 척 같이 타자고 했다. 잠시 후 쓰레기 박스를 든 영우샘이 지나가길래 같이 타자고 했다. 가이드북 완성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지만 선물 포장이라도 다 끝내서 행복했다. 영우샘이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렀다.


'스르륵~~~!

'더더들 틱틱, 덜덜덜 킥킥'


출입문이 처음에는 잘 닫히는가 싶더니 턱 멈추었다. 거의 닫힐락 말락 하다가 5센티 정도를 남겨놓고는 계속 굉음만 낸다. 이상한 소리를 쉴 새 없이 쏟아 내며 문은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곧 열리겠지! 괜찮아지겠지!' 이런 생각으로 잠시 여유 있게 기다렸지만 소용없었다.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갔다. 액션 영화에서 엘베가 떨어져 모두 죽는 장면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외쳤다.


'일단 엘베 손잡이를 잡아요~!'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점점 패닉에 빠졌다. 한 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오전에 엘베가 고장 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방금 전에 영우샘이 1층에서 잘 타고 올라왔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당황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순간 선명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 기도하면서 선교 준비하고 있니?"


너무나 강력하게 들려왔다. 순간 양심이 콕 찔렀다.


'주님 죄송해요.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사역 준비만 했지 기도를 게을리했습니다!'


짧지만 간절한 기도에 평안을 되찾았다. 다시 닫힘, 열림 버튼을 눌러봤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출입문은 여전히 굉음을 내며 공포분위기를 만들었다. 밤 10시 아무도 없는 건물은 AI로봇 괴물이 내뿜는 소리만 들려왔다. 숨소리조차 너무 크게 들렸다. 엘베에서 나는 작은 소리도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 엘베 위쪽에 노란색 긴급 버튼이 보였다. 키 큰 영우샘이 버튼을 눌렀다.


'뚜~~ 뚜~~ 뚜~~'


다행히 신호가 갔다. 누군가 받겠지? 선진 대한민국인데! 신호음을 기다리는 엘베 안은 조용했다. 그 짧은 시간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곧 신호가 바뀌었다.


‘뚜뚜뚜뚝!!!’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신호는 곧 끊겼다. 아무 응답이 없었던 거다. '저 전화는 도대체 어디로 연결된 거야!' 짜증이 올라오려고 했다. 점점 생각이 복잡해지고 시간은 흘러갔다. 엘베 안에서 세 명의 교사가 이대로 사고가 나면 누가 선교팀을 이끌지? 이런 생각이 몰려왔다. 자영샘과 이삭샘 둘이서 우하나를 이끌고 필리핀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두 명의 교사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잘할 수 있을 거야!'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다시 정신을 차려 방법을 생각했다. 주머니를 보니 다행히 핸드폰이 있었다. 관리하는 샘에게 전화할까, 교직원 전체 카톡에 올릴까, 119에 전화할까? 뭐부터 해야 할까. 광현샘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번호를 찾아 놓았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도 후에 영우샘과 한 번 더 엘베 문을 힘주어 닫았다.  


'하나, 둘, 셋! 으~~ 읏샤!'


힘껏 밀었다. 뭔가 변화가 있었다. 센서가 접촉이 되었는지 '짜잔' 하고 엘베 문이 열린 것이다. 문이 열리자 우리 셋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엘베를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엑시트 영화를 찍는 듯했다. 한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고작 10여분이 흘렀다. '휴~~ 하나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사히 탈출하고 2층 교무실 앞 소파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한참 동안 웃음이 터져 나와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는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선교는 기도 없이 이루어질 수 없네요!'


맞다. 세명의 교사는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하나는 기도해야 한다. 이것을 알려주시려고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신 것 같다. 기도로 다음 선교를 준비하자!


이제 단기 선교 출발이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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