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상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생) 드라마를 보셨나요? 저도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주인공의 이름이 뭔지 아시지요? 이익준, 안정원, 김준완, 양석형 그리고 누구지요? 맞습니다. 채송화!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저마다 매우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비슷한 특징도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캠핑을 가거나, 누구와 데이트를 하다가도 병원에서 이것이 오면 지체하지 않고 달려갑니다. 바로 응급 전화입니다. 그들은 환자가 위급하거나 응급 수술이 있으면 핑계 대지 않고 달려가 온 힘을 쏟습니다. 맛있는 간식이 있으면 누구보다 친구나 동료를 찾아 음식을 나눠먹습니다. 퇴근 후에는 밴드 연습이나 캠핑도 함께 갑니다. 슬생을 보며 내가 근무하는 학교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율제병원이 우리 학교인 듯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사실 의사와 교사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끗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의사와 교사는 비슷한 것이 참 많습니다. 교사들도 가끔 하얀 가운을 입습니다. 과학실이나 보건실 또는 식당에서 말이죠. 근무시간이나 업무량, 보람도 의사와 비슷합니다. 의사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교사는 학교에서 수술을 합니다. 밤이나 주말에 호출이 오면 언제든 달려가고, 낮 업무가 끝난 줄 알다가도 학생이 힘들다고 하면 바로 학교로 뛰어갑니다. 휴일에도 전화기를 놓지 않고, 불 꺼진 교무실 문을 다시 열고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학교 일인지 집안일 인지 구분 없이 주말을 보냅니다. 물론 의사와 교사의 가장 큰 차이는 연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환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환자를 사랑하고 목숨 다해 수술하는 의사처럼, 제자를 사랑하고 힘을 다해 영혼을 살리는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의사는 사람의 육체를 고치지만, 교사들은 영혼을 온전하게 만들기에 더 중요한 사역이라 생각합니다. 제자들이 학교에서 마음껏 도전하고, 마음껏 꿈을 꾸고, 마음껏 성취하도록 돕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때로는 실수하고 실패해도 책망하지 않고, 실패를 결론이라 여기지 않도록 말입니다.
올해 7학년(중1) 담임을 하는데 제자들과 1년간 멋진 추억을 쌓고, 나와 동역하는 교사들과 같은 꿈을 꾸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 ‘후회 없이 놀았다! 원 없이 도전했다! 최고의 것을 배웠다!’라고 고백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그러한 태도로 후배들과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슬생에서 모든 수술이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환자 보호자에게 욕을 배부르게 먹을 때도 있었고 아무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비난하지 않고 서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순간순간 그들은 최선을 다하는 것을 넘어 목숨을 걸고 일하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저도 그런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반 아이들이 친구의 잘못을 매~일 같이 고자질하고, 빌려간 물건을 돌려주지 않아 매~일 같이 싸우고, 방금 설명한 것을 마치 태어나서 처~음 듣는 것처럼 24번을 질문해도, 교무실 문지방이 달토록 수십 번 찾아와도, 결단코 화내지 않고 짜증 내지 않고!! 위로와 공감하기를 힘쓰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잘 될지는 장담 못합니다.^^
안정원의 대사 중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예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 하나밖에 없어요!"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것은 참으로 위험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먼바다를 돌아 거친 강을 거슬러 험난한 계곡을 뛰어 올라가는 연어와 같이, 이 사회를 역류해야 하는 길이 바로 이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분명 위대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을 거슬러 언젠가는 세상에 소망이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병원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율제병원을 상상하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병원 문을 열었습니다. 환하게 나를 반겨주는 간호사,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상상하며 갔습니다. 어땠을까요?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같은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는 없었습니다. 무뚝뚝하고, 상투적이고,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와 현실은 달랐습니다. 교사인 나도 때로는 화가 나고, 짜증이 치솟고, 인격이 무너져 도망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훈계를 하며 소리를 높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적은 별로 없지만요. 그러나 그럴 때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할 것입니다.
세상은 영웅을 남들보다 최고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영웅은 남과 다른 길, 좁은 길, 외로운 길, 험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안교육을 선택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대안학교 교사는 진정한 영웅입니다. 저도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어 이 땅의 교육에 희망을 뿌리고 싶습니다. 이 시대에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