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감정의 외줄타기

아내의 시선

by OHS

길을 잃었던 밤

남편과 만난 지 1년이 좀 넘었던 어느 날 처음으로 크게 다퉜다. 퇴근길 평범한 대화에서 시작된 작은 의견 차이가 새벽까지 이어지는 큰 싸움이 되었다. 우리는 대화를 원했지만 어느새 각자의 의견이 얼마나 타당한지, 왜 상대가 틀렸는지에 대한 장황한 설명만이 오갔다. 그 텅 빈 대화는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문득,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반쯤 포기의 심정으로 중간 협의점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이 날은 처음으로 '우리가 안 맞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날이었다.


나는 이 경험을 잊지 않고 같은 다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캘린더에 기념일로 등록했다. 누가 더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보다는 서로 당시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집중했다면 그날의 다툼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자 이야기하던 때에도 혹시 이런 글쓰기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감정이 지배한 대화

최근 회사에서 있었던 대화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평소 내가 신뢰하지 못하던 팀원이 주최한 미팅이었는데, 나는 그분의 의견에서 허점을 발견했고 미팅의 본질을 제대로 짚고 싶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미팅이 끝나고 난 후 깊은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그 팀원에 대한 감정이 말에 담겨 나왔던 것이다. 미팅의 목적이 아닌 그 사람을 몰아세우는 대화로 변질되었다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감정이 개입된 탓에 내가 의도한 본래 목적은 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에서 감정을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더 깨달았다. 특히 이해관계가 얽히거나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도, 감정이 개입되면 본래 메시지가 왜곡되고 상대방에겐 그저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대화에 있어 불필요한 감정은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공감은 또 다른 언어

사람들은 종종 MBTI를 공감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기도 한다. 특히 ST 유형에 대해 공감 결여라는 오해 석인 시선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내 남자친구는 ISTP라 공감을 잘 안 해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말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이성적인 사고와 공감은 분명 다른 영역이다. 꼭 같은 감정에 맞장구를 쳐야만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감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온도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해서 빵 샀어"라고 말했을 때, "우울한데 왜 빵을 사?"라고 되묻는 것은 결코 이성적인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감정이나 행복을 헤아릴 의지가 부족하다는 신호에 가깝다. 최소한 우울했던 그 감정을 먼저 알아봐 주거나 "무슨 빵 샀는데?" 하며 작은 관심이라도 보여주는 것이,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공감은 상대의 논리를 따지기 보다, 그 사람의 상황을 잠시나마 공유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이 세 가지 경험은 대화에 있어 감정이 지닌 두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첫째, 불필요하거나 격한 감정은 대화의 목적을 흐리고 관계를 해칠 수 있다. 남편과의 첫 다툼과 회사 미팅에서 겪었듯이, 객관성을 잃은 감정의 개입은 본래의 의도를 왜곡하고 소통을 단절한다. 둘째, 그럼에도 대화의 궁극적인 목표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세 번째 경험에서 느낀 공감의 의미처럼,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고 그 마음에 반응하는 것은 관계를 깊게 만드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 글을 적어내기 전 요즘 우리 부부는 어떤 대화를 많이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태어날 아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많이 고민해보고 있는데, 그중 더 나은 학업 환경을 위해 좋은 학군지로의 이사가 하나의 큰 대화 주제가 되고는 한다. 각자 생각하는 '거주지'의 가치란 무엇일까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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