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평범한 교사입니다.>
정말 싫었다. 전화기에 울리는 뒷번호를 볼 때마다 등줄기가 찌릿하고 섰다. 또 어떤 것으로 사람 성질을 긁어놓을까, 이번에는 몇 시간이나 시달려야 하나, 번호를 보자마자 심장이 두근두근 댔다. 아침에 지각한 아이에게 "내일은 좀 일찍 와라~"하면 "우리 아이한테 지각이야! 하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아이 생기부에 '지각'이라고 표시되는 거예요?" 하고 전화가 오고 하루를 정리하며 아이 스스로 체크하는 생활 기록장 급식란에 X표라도 쳐 가면 "우리 아이가 밥을 안 먹나요? 그럼, 선생님은 매일 밥을 다 먹으세요?" 하고 전화가 온다. 한번 전화를 하면 기본 한 시간은 붙들려있어야 했는데 퇴근 시간이 지나고 유치원 아이를 키우고 있고 하원 차에서 아이를 받아야 한다는 내 말에 " 그건 선생님 사정이잖아요!!!"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학부모였다.
급기야 그녀는 내게 어느 문구점에서 외상을 하고 갚으라는 사진이 왔다며 그 영수증 위에 남편 휴대폰 번호가 찍혀있었다며 어떻게 선생님이 학부모 번호를 사칭하고 외상을 하고 다닐 수 있냐며 따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학교에서 물건을 살 때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교감선생님께서 한 시간이나 설명을 해주었고 그 문구점에서도 주인아주머니가 자신이 나이가 많아 실수로 번호를 잘못 보냈다고 해명까지 해주었다는데도 그녀는 내게 전화해 미심쩍다며 추궁을 해댔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써 놓은 시나리오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내가 그것을 인정할 때까지 몰아붙일 기세였다.
그런 식의 추궁으로 1년을 시달린 나는 그만 이 말에 폭발해버렸다. "그럼,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죠." 경찰에 신고해 어떻게 된 일인지 밝히고 내가 그 일과 관련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내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그 말에 그녀는 노발대발했다.
어떻게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경찰을 운운할 수 있냐며, 나더러 삼자대면을 하자고 한다.
삼자대면이 누구냐고 하니, 자기와 자신의 남편 그리고 교장선생님이란다.
그날 저녁에 곧바로 두 부부가 교장실로 날아들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내 아이는 홀로 유치원 원장실에 맡겨졌다.
교장실에서 만난 그녀는 내게 눈길도 안 마주치더니 자신이 아주 상처 받았단다.
교사의 입에서 어떻게 학부모를 경찰에 신고한다고 할 수 있느냐면서.
같이 온 남편은 내게, 직장에서 자신도 민원을 받는 입장에 있다고 하면서 민원을 받다 보면 말도 안 되는 민원도 있지만, 말도 안 된다고 해서 받는 사람이 그렇게 똑같이 되받아치면 되겠냐면서 선생님이 "경찰"이라는 말만 안 꺼냈어도 교장실까지는 안 왔을 거란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 교육에 힘을 합해야 할 교사와 학부모가 이렇게 대립하면 되겠냐면서 서로 사과하라고 화해를 권하셨고 나는 감정이 섞여 말이 지나쳤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자 그녀,
결국 이렇게, 민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말도 안 되는 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훈계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씁쓸했다. 이렇게 교권은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인가.
교사는 무조건적으로 참아야만 하는 건가.
왜 교사는 학부모의 그 더러운 오물을 다 받아내야만 하는 건가.
쓴 소주를 삼켰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는 거라고.
나도 한낱 직장인일 뿐이라고.
요즘 교사가 뭐 그리 존경받는 시대인가, 어딜 가도 흔해 빠진 선생님이니 뭐 그리 특별한 사이도 아니고.
1년 동안 아이와 함께 지낼 담임선생님께 예의라도 갖춰주면 다행인 시대이지..
그렇게 현실을 탓하고 나를 위로하면서 소주 한잔에 그 일도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런데 그게 넘어가지 않고 목구멍에서 막힌 모양이다. 자꾸만 헛구역질이 올라왔고 캑캑거렸다.
집에 와서 내 아이와 있는데도 갑작스럽게 그 일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었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하고 느낄 만큼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머리는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