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아프다.

by 한자유
한잔을 마시자 심장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누린내가 나는 추한 괴물이 된 거 같았다.



해가 뜨고 저무는 당연한 순리에 맞게 하나둘씩 규칙을 따르는 가운데 유일하게 굉음 내며 반기를 드는 건 나의 심장소리뿐이었다.


불규칙한 심박동 소리가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처럼 겁도 없이 반항 어린 소리를 내었다.


그럴 때마다 생체시계와 세상의 시계가 초마다 소리를 내며 제대로 살아라고 타박했다.

당장 일어나서 정신 차려! 넌 이미 사춘기가 지났을 나이란말이다. 그리고 사람들 좀 봐 저리 차려입고 몸을 구석구석 닦고 밤새 마른입을 헹군 다음 물을 마시며 일을 하려 하는데 너는 왜 하지 않냐고…


그런 잔소리는 우스러웠다. 심장은 더 큰소리로 곧 튀어나올 것처럼 한청 목청을 올렸고 그런 심장은 배불리더니 점점 몸을 키우며 만족하기 시작했다.


몸은 사이비에 세뇌가 된 사람처럼 심장의 말만 듣기 시작했다. 내가 주인인데 심장이 지배권이 빼앗겨버렸다. 잠시 지친 사이에 조용히 뛰던 심장이 나를 독차지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좋아도 내 몸의 일부이고 싫다면 없애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럴 순 없다. 결국 나는 인간관계에서도... 나 자신한테도 을인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심박동에 눈치 보며 생활했다. 자라면 자고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유독 한번 잠들기 시작하면 잠시 몇 시간만 깨 있고 다시 잠드니 일주일은 우습게 지나가있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 어디 아픈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난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다..


나는 취한 것도 아니다. 무리해서 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침대에 누워서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병원에 가서 심장을 검사를 해봐도 어디에도 이상은 없었다.


이건 단순한 몸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고작 몇 달 뒤면 20살을 앞두고 있는 나이 아닌가? 대학은 커녕 살아간다는거에 염증을 느껴 당장 죽어버리지않는게 다행이었다. 아무리 다들 힘내라는 한가한 위로를 해줘도 소용없었다. 내가 잘해보려고 할수록 심박동 소리는 버거워졌고 반항을 할 때면 새로운 징벌을 받기 시작했다.



심장이 무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웃기는 일이다 매일같이 손에 쥐고 다니는 폰도 그 무게를 궁금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가슴에 잘 붙어 저절로 움직여주기까지 하는 장기 하나가 무겁다라니.. 게다가 그 소리는 오로지 나에게만 들린다니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전능한 신 마저 나의 심장의 무게와 소리를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오롯이 혼자서만 꾸준히 느끼는 고통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 없어졌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신에게도 나는 이방인이 될 뿐이다. 외로운 이 길.. 유일한 둥지는 눅눅한 방 한편이었다. 마치 뱀처럼 똬리를 튼 채 오랫동안 움직이지도 먹지도 않아도 방 안에서 벽만 보며 누워있었다. 마치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구렁이 되어 방안에 격리당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사람이긴 했던가.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더라?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니 나의 얼굴을 잘 볼 수가 없었다. 형태가 흐릿하다. 거울을 조심스레 닦아보았다. 유리를 깨지지 않았다. 거울을 다시 벅벅 닦았다.


이럴 수가 이게 뭔가.. 이건 인간도 동물도 아닌 그 무언가… 심장의 본능만을 따르는... 사람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구렁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가진 좋은 건 다 너 차지해라 나의 영혼과 정신까지 그리해서 나를 다시 무의 존재로 만들어다오

나를 지워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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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하게 기도했다. 무의 존재가 되게 해 주세요.... 다른 존재도 되어버렸는데 없어지는 것 하나 뭐가 어렵습니까? 어찌해도 좋으니 태어날 일이 없는 그런 존재로 날 구원해 주세요.


나의 기도가 닿은 걸까 아님 구렁이가 이루어준 걸까 나의 심장는 점점 양동이가 달린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지만 누가 달아준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건 물을 꾸준히 누가 부어주었다.


물 먹은 솜이 가볍게 느껴질 만큼 나의 몸은 둔해졌다. 계단 3칸을 오르는 것도, 수저를 들고 밥을 먹는 것도 그리고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이 내게는 고역이 되었다.


점점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둥지에서 도저히 나오는 법을 알 수가 없었다. 현실에 발버둥을 쳐 움직일수록 더 빨리 침식될 뿐이었다.


심장에는 새로운 양동이가 달아지고 내 몸은 무거워졌으며 심박동 소리에 맞춰서 천천히 땅을 밀기 시작했다.

언뜻 새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드디어 내 기도를 들어 주신건가? 무의 존재로 만들어 준건지 이전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점점 내 육체와 달리 나의 영혼은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나의 몸은 내 것이 아니게 된 것만 같았다. 살결을 쓸고 꼬집어봐도 알 수 있었던 건 없었지만 적어도 내 몸을 씹고 뜯어봐도 인간의 고기 맛은 나지 않았다.


구렁이가 탈피를 하듯 나의 영혼이 허물이 되어 둥둥 떠다니며 누워있는 나의 육체를 제삼자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밥을 먹지 않아서인가 아무튼 맘에 들지 않았다. 저게 나라니 끔찍할 뿐이다. 이제는 괜찮다 없어져도 되니 그래.. 저건 인간도, 동물도, 나 자신도 아니다… 저걸 버리고 다른 육신을 찾자….


그렇게 구렁이는 첫 탈피에 성공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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