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만큼이나 운 좋았던 취업
군대는 3년짜리 임시직이었기에 같은 부대에서 일했던 동기들은 자주 모여 술을 기울이며 미래를 이야기하곤 했다. 공부를 이어갈 사람도 있었고, 취업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K는 늘 ‘데이콤’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그냥 월급 많이 주는 회사, 시험이 까다로운 회사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차츰 천리안에 깊이 발을 들이면서 나의 희망직장이 되어 갔다. 이런 서비스를 만드는 곳이라면 내 청춘을 쏟아부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3년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도대체 올 것 같지 않았던 시간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93년 2월 천리안으로 채팅을 나누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전화선 너머 모뎀의 핸드셰이킹Handshaking 소리에 겹쳐 호통을 하셨던 그녀의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장인어른이 되셨다. 동남아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게 유행이었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해외를 나가려면 수속이 너무 복잡해 그냥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 왔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9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장교 출신은 취업 전선에서 유리했다. 많은 기업이 장교 출신을 따로 뽑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사병으로 복무하면 30개월, 여기에 대학에서 교련 수업을 마치면 2개월 줄여줘서 28개월이었지만, 학사장교는 훈련 4개월 후 꼬박 3년을 복무해야 했다. 합치면 40개월이니 사병으로 갈 때보다 1년을 더 복무하지만, 제대 후의 혜택을 생각하면 충분히 고민해 볼만한 트레이드 오프가 있었다.
하지만 데이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장교 특채 프로그램은 없었다. 대신 입사시험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당시 대학생 사이에 1, 2위를 다투는 인기 직장이었던 만큼 경쟁은 고시에 비교할 정도로 치열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토익 점수도 올려놔야 했고, 상식 공부도 해야 했다. 하지만 K와 나는 희망만 있었을 뿐 준비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어디든 장교 출신을 따로 뽑는 회사 중 골라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시험 준비를 하면서까지 데이콤을 가야 할 이유가 없었던 탓도 있다.
K와 나는 몇 곳의 증권회사에 취업이 결정되었고 그중 S증권의 연수 프로그램을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증권회사의 여러 업무에 관해 교육을 받던 중 쉬는 시간에 K가 말을 걸었다.
“이중위, 데이콤에서 장교 특채를 한다는데? 너 천리안 좋아하잖아. 가서 내 것까지 원서 두 장 받아다 줘.”
확인해 보니 정말이었다. 전례 없이 장교 출신 특채가 진행 중이었다. 바로 용산의 데이콤 본사를 찾았다. 찾아가 보니 나에게 은하철도 999를 처음 들려주었던 하사관의 집 바로 앞 대로변이었다. ‘거참 묘한 인연이네.’ 고개를 갸우뚱하며 원서를 받아와 다음날 K에게 전달했다.
입사 일정을 확인해 보니 S증권의 연수 기간 중에 면접이 있었고, 합격 발표는 연수가 끝나고 며칠 후였다. S증권뿐만 아니라 장교 특채를 진행하는 회사는 대부분 특별한 사유 없이 연수를 빠지면 바로 입사 취소라는 규정이 있었다. 애써 뽑아 놓은 자원을 다른 회사에 빼앗기기 싫었기 때문이겠지. K와 나는 모두 서류 전형을 통과했고, 면접 전날 K에게 물었다.
“내일 데이콤 면접 가야지?”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냐. 난 S증권 그냥 다닐래. 다른 회사 면접 간다고 하루 빠지는 걸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어. 데이콤에 무조건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고.”
결국 다음날 면접은 나만 갔다. 그래도 입사시험이 까다로운 회사였던지라 나름대로 며칠 동안 상식 문제집을 붙잡고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잔뜩 긴장하면서 면접장에 들어섰다.
“이동구 씨는 술 좋아해요?”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즐기기는 합니다.”
“결혼했던데, 아직 신혼인 것 같아요? 퇴근하고 상사가 술마시자고 붙잡으면 어떻게 할 건가요?”
“상사와의 술자리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충분히 이해해 줄 겁니다.”
면접은 싱겁게 끝났다. 어차피 합격할 놈이니 농담이나 한 것일까? 어차피 떨어진 놈이니 아무 소리나 한 것일까? 집에 와 보니 S증권 인사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고 다음날 입사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행히 며칠 후 데이콤에서 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93년 데이콤의 대표이사는 신윤식 사장이었다. 이 분이 공군 장교 출신이었고, 실무진의 반대를 꺾어가며 장교특채를 진행한 것이었다. 그 이후 내가 데이콤을 다니는 동안 장교 특채 프로그램은 없었다. 내가 무모했던 걸까? 겁이 없었던 걸까? 운이 정말 좋았던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