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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Nov 28. 2015

도시의 나이테를 읽는다-쾰른,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하는 출사지 16번째 이야기

[2014년 포토키나 참관차 쾰른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틀 동안 전시장을 샅샅이 누비고 마지막 날 반나절의 여유가 생겼다. 욕심 부리지 않고 타박타박 걸으며 도시를 구경하기로 했다. 2010년에 방문했을 때는 관광코스의 추천에 충실히 따랐던 만큼 이번엔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걷기로. 행선지는 주변 지도에서 보았던 히로시마-나가사키 공원. 대략 걸어서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가방도 두고 달랑 카메라만 메고 길을 나선다. 니콘 D60은 크기도 주먹만 한 데다가 Voigtlander 20mm 팬케익 렌즈를 물려 놓으니 가지고 다니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RAW로 찍으니 화질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으니 여행용으로는 딱이다. 다만 초점을 수동으로 맞춰야 하는 게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리저리 초점을 맞추는 동안 파인더의 구석구석을 한 번 더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크게 불만은 없다. 





평일 오전 시간, 출근 시간대의 분주함은 살짝 벗어난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가롭다. 깔끔하게 정리된 쇼핑가의 가게들도 아직은 문을 열지 않았다. 눈에 익은 브랜드들이 제법 보인다. 파주 아웃렛에서 만나는 브랜드들이다. 파주와 쾰른의 거리가 화락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유럽 쇼핑가 스타일로 디자인되어 있는 아웃렛의 거리 풍경과도 닮아 있다. 다만 세트장과 현실의 장소만큼의 차이라고 할까?

쾰른은 로마시대부터 로마제국의 전초기지로 성장해 왔다. 도시 구석구석에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그 위에 중세 시대의 건축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중세 건축물 위에 현대적인 건물들을 덧붙여 개축한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무너져 내린 돌덩어리들을 따로 치우기도 난감할 테고, 건물의 토대로 삼자는 실용성이 읽히는  듯하다. 

잔뜩 흐린 채로 머리 가까이 내려와 있던 구름이 살짝 빗방울을 떨구기 시작한다. 마침 저 앞에 근사한 성당이 보인다. 무거운 문을 열고 살며시 안으로 들어간다. 높이 달려 있는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으로는 성당 내부를 밝히기엔 많이 부족하다. 700여 년의 세월을 버텨 온 성당은  바깥세상과는 다른 세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시간의 무게가 이런 것일까? 






기차 길을 건너고 제법 넓은 대로를 지나 공원에 다다랐다. 특별한 기념물도 없고 그냥 넓은 잔디밭과 나무숲이 자리 잡고 있을 뿐, 자그마한 표지판만이 이 곳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2차 대전의 동맹국으로서 일본의 원폭피해가 남 이야기 같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발길을 돌려 쾰른 대성당이 있는 시내 중심가로 향한다. 화려한 광고로 래핑 되어 있는 현대적인 디자인의 트램과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다. 수백 년의 시간 간극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것, 디자인의 힘이고 내공이 아닐까 싶다. 수십 년의 간격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어설픈 조형물들로 도시를 채워 나가는 서울과는 참 대조적이다. 조금씩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밖에. 

저 멀리 대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50층 높이의 건물인데다 주변에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도시계획을 해 놓은 탓에 제법 먼 거리에서도 눈에 띈다. 역시나 성당 주변엔 사람들이 많다. 쇼핑가를 어슬렁거린다. 딱히 살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맛있는 초콜릿 샵이나 지나치면 좋겠는데, 결국 찾아내지는 못했다. 역시 포토키나 기간이어서 그런지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생김새도 제각각이다. 사람 구경도 은근한 재미가 있다. 

여러 블록의 시가지를 거닐면서 커피도 마시고, 샌드위치로 점심도 때우고, 대성당 옆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가서는 2유로를 내고 초도 하나 밝혔다.  마침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가 점검인지 연습인지를 하고 있어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던 덕이겠지. 예배 보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정면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살짝 졸음이 몰려온다. 쾰른에 도착한 지 나흘 째, 시차도 뒤죽박죽이고 몸도 피곤하다. 하지만 인적 없는 교회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이 없어지는 것 같다. 몇 백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심난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최대한 제거하며 유지해 온 공간일 테니... 





이제 곧 기차역으로 돌아가 맡겨 놓은 짐을 찾아 고속열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야 한다. 한 시간 남짓 걸릴 것이고, 서너 시간 후면 이 나라를 벗어나게 되겠지. 떠나기 전 반나절의 시간을 한가로이 거닐 수 있어 좋았고, 자칫 놓치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성당과 교회 안쪽 공간의 엄숙함과 경건함도 고스란히 챙겨 간다. 아마도 쾰른에 대한 나마의 추억으로 오롯이 남겠지.


여행이란 빈 가방을 가지고 와서 무엇인가를 가득 담아 가는 것이다. 면세점에서 구입한 명품 들일 수도 있고, 여기저기서 수집한 여행 기념품 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살면서 언제든 꺼내어 뒤적거릴 수 있는 추억을 한 보따리 챙겨 담는 것이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먹고 와야 한다는 계획에 치이다 보면 남는 것은  인증샷뿐인 경우가 많다. 다만 하루라도 시간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엇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보자. 그 곳의 공기, 그 곳의 냄새,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스카이 라인과 그 너머의 구름, 내 앞에 있는 커피의 향기, 신발을 통해 전해 오는 보도블록의  느낌... 언제든 피곤하고 지칠 때 부비적 부비적 꺼내어 툭툭 먼지를 털어 펼쳐놓고, 커피 한 잔,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살포시 눈을 감는 순간 그 곳에 가 있는 마술 양탄자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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