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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지 Sep 12. 2021

<잇츠 어 신> 누가 환자를 돌보는가?

에이즈 시대, 소외된 어떤 성별

※ 스포일러 경고

<잇츠 어 신>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놔둘 수는 없다. 한 사람만이 도울 수도 없다. 적절한 의료적 지원과 간병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정상적인 대처는 당연하게도 질병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일인데, <잇츠 어 신>은 이런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느 시대의 환자 그룹에 관한 이야기다. 의료인이 있기는 했지만 질병에 관한 정보와 대처는 물론 의료 의식까지도 충분하지 않았고, 간병인이 있기는 했지만 운이 좋아야만 친구와 가족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사회가 이렇게까지 방치한 이 질병은 무엇인가. <잇츠 어 신>은 1980년대 런던으로 간다. 그리고 그 시절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에이즈를 다룬다.


에이즈는 면역 결핍증을 말한다. 의료계의 설명을 참고하자면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감염으로 면역 세포가 파괴되어 면역 기능이 떨어짐으로써 기회 감염이 생기는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이다. 똑같이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15년 이상 무증상인 경우도 있지만, 면역력 저하로 몸이 작은 질병에도 대처하지 못해 악성 종양을 키우다가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에이즈는 혈액이나 정액의 교환을 통해 주로 감염이 이루어지는데, 수혈을 통한 전염은 미미한 편이고 주사에 의한 마약성 약물 주입이나 성적인 접촉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잇츠 어 신>의 등장인물 대다수는 성관계를 통해 HIV에 감염된 게이다.



에이즈 유행의 원인이 부주의하게 성생활을 즐긴 개인들 탓이기만 할까? 1980년대를 런던에서 보낸 게이로서 각본가 러셀 T. 데이비스가 성찰적으로 쓴 이 작품은 그렇다고 수긍할 때가 있다. 작품은 게이 여럿과 공동 주택에 사는 친구 질 백스터(리디아 웨스트)의 입을 빌려서 말한다. “콘돔도 안 쓰고, 얘랑 자고 또 쟤랑 자고.” 그런데 이때 질 백스터의 화법은 이른바 ‘거 봐 내가 뭐랬어I told you’식 상투적인 질책이 아니다. 그 말 속에 화자가 점한 도덕적 우위나 성소수자에 대한 경멸은 전혀 없다. 질 백스터가 하는 원인 분석은 누구도 반문할 수 없는 이상적인 토론의 시작에 가깝다. 문제를 직시하고 경각심을 갖고 차차 해결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이런 단계적인 논의를 통해 질문이 전환될 수도 있다. 이로써 문제의 본질도 전환된다. 이렇게 치명적인 유행병이 도는 건 개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 이 질병에 관한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못해서가 아닐까? 


질문이 달라지면 답을 찾는 방식도 달라진다. 질 백스터는 미국 출장을 가는 콜린(칼럼 스콧 하웰스)에게 에이즈에 관한 각종 정보지를 챙겨 오라고 부탁한다. 실제로 에이즈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의 게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집단 발현한 것으로 1981년 미국 의학계가 처음 보고한 질병이다. 질 백스터의 당부는 시대적으로 통제된 정보 공유 문제를 가리킨다. 정보가 있어도 전파가 늦고 공론화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거리가 멀기도 한 데다 이 의학적 정보는 자신의 성 지향성을 수치로 알고 성장해온 그 시대의 퀴어들의 사회에서 오픈 소스가 되지도 못했다. <잇츠 어 신>의 구성원 대다수는 성인이 되어 대도시에 정착해서야 벽장에서 나온 게이고, 그들을 잠식한 에이즈는 의학계와 제약계의 시급한 의제이기 이전에 사회가 배제하고 가족에게 오명을 주는 징벌로 그려진다. 



이 문제를 깊게 파고드는 <잇츠 어 신>의 시선은 과연 장려할 만하다.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묵직하다. 이 작품은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 리얼리티를 명분으로 약자를 비난하고 학대하기를 즐기는 가학의 전시장이 아니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주책맞은 여러 게이 캐릭터 개개인에게 풍성한 사연을 부여하고, 구석구석 유머와 사랑, 연민을 잃지 않으면서도 비판적인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일에 철저하다. 시대와 사회의 방치로 죽어간 게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슬픔과 분노와 죄의식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나아가 소수자 사회의 공감을 넘어 전 사회의 인식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각본과 연출이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의미한 반응이 따라왔다. 영국에서 <잇츠 어 신>이 자국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2021년 1월 공개된 후 HIV 검사율이 급증했다. 마침 영국 내 HIV 테스트 주간 직전이었고, 2019년과 비교해 하루 만에 네 배 높은 검사 수치가 보고되었다.


작품은 이 이야기가 더 부드럽게 굴러가도록 게이들 사이에 한 여성을 넣었다. 그가 질 벡스터다. 앞서 적은 것처럼 에이즈 대응을 위해 게이 공동체의 회의를 주최하고 정보 수집을 기획한 오거나이저 역할을 맡았다. 사실 질 벡스터가 이 집단을 위해서 하는 일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게이 사회를 위해 당대 게이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아픈 게이를 누가 돌봤는가?


버스 운행 보조원으로 일하는 그레고리(데이비드 칼라일)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늘 마주치는 유쾌한 친구였는데. 그레고리는 많이 아프다.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다. 휴직을 하고 집에 박힌 그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집에만 있다가는 굶어 죽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식료품을 사다 줄 사람, 그리고 이 비밀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때 질 백스터의 됨됨이가 확인된다. 그는 그레고리의 부재를 가장 먼저 눈치 채고 집에 찾아간 친구다. 


질 벡스터는 일에도 열정적이다. 직업은 배우로, 성실하게 극단 활동을 지속한 끝에 대출을 어느 정도 끼고 친구들과 공동 주택을 살 수 있게 됐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도 무보수로 출장 간병인 역할을 한다. 아픈 친구의 집에 찾아가 밥을 챙겨주고, 엉망이 된 집을 청소해준다. 전 사회가 에이즈를 잘 몰라서 환자와 접촉만 해도 옮는다고 믿던 시절에 그는 고무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아픈 친구의 집 구석구석을 닦고 설거지까지 다 해준다. 그건 환자의 가족조차도 못 하는 일이다. 이후 질 백스터가 관리해야 할 대상은 차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는 피로와 부담을 모르고 이 일에 천사처럼 헌신한다.



그가 웃을 때,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다. 맑은 눈에 맑은 정신을 가진 질 백스터는 사랑이 넘치는 존재로, 그 충만한 사랑은 그만큼 따뜻한 부모에게서 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얻은 아름다운 마음을 게이 친구들한테만 쓴다. 연애할 기회를 안 주기 때문에 그의 성 지향성을 알 수 없지만, 이런 관점에서 그의 입장을 파악하자면 엘라이ally다. 사전적으로 동맹하거나 협력하는 대상을 뜻하는 이 단어는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비성소수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도 확대됐다. 그러나 질 벡스터는 그토록 성적 지향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 작품 속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젠더(사회적 성)가 아닌 섹스(생물학적 성)로 특정되는 인물이다. 그는 그냥 여성이고, 작품은 보편적으로 여성에게 전가하는 역할을 그에게 맡긴다. 그것은 돌봄이다. 가족도 안 해주는 경우가 있고, 게이 친구들도 그만큼 적극적으로 해내지 못하는 일이다.


선의에서 비롯된 질 백스터의 봉사 활동은 우리에게 가족과 친구가 어떻게 다른 의미를 갖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가족이 나를 키웠다면 친구는 나를 보다 나답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사회에서 만난 어떤 친구는 가족보다 편안하고 따뜻하며 희생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개인의 비밀이 지켜진다. 이렇게 신뢰가 전제된 사회에서 우리는 더 나은 가치관을 공유하기도 한다. 성소수자 사회로 들어간 <잇츠 어 신>은 이러한 이상적인 친구 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연인간의 사랑이 있긴 하지만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고, 자식을 아끼고 걱정하는 부모도 있긴 하지만 그 부모들은 제 자식을 친구만큼 깊숙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질 백스터는 우정이야말로 인간을 더 나아가게 하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설파하는 이 작품에서 이 숭고한 사랑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질 백스터가 죽어가는 게이를 돌보는 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속한 사회의 에이즈 유행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검토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에이즈 환자에게 적절하게 약을 공급하지 않는 제약회사를 상대로 시위도 연다. 성 지향성을 이유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구조적 현실과 싸우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기만 하지 자식의 특징, 즉 제 아들이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친구의 부모에게 간절하게 호소하기도, 엄중하게 경고하기도 한다. 그렇게 투쟁하는 동안 질 백스터가 사랑한 많은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말 괜찮은 것일까?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죽었는데 질 백스터의 정신적 외상은 누가 보듬어주고 있는가? 그의 돌봄은 누가 책임지는 것일까?


<잇츠 어 신>이 작품으로서 유지하는 따뜻한 시선은 게이 친구들에 대한 질 백스터의 시선과 일치한다. 시작부터 그는 주인공 리치(올리 알렉산더)를 벽장에서 꺼낸다. 그가 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신다워질 것을 고취한 것이다. 그런 리치에게 에이즈라는 비극이 닥쳤을 때, 리치와 함께하기 위해 질 백스터는 리치의 가족을 포함한 사회적 혐오와 싸운다. 이런 시선과 싸우기 위해 질 백스터는 계속해서 역할을 바꾼다. 다정한 친구였다가, 희생적인 간병인이 되었다가, 질병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감독이 되었다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비폭력적으로 대응하는 뜨거운 활동가가 된다. 그렇게 공익을 위해 애쓰는 동안 사소해서 오히려 더 소중한 개인사는 누락된다. 질 백스터는 훌륭한 캐릭터이지만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좋은 작품이 남성 캐릭터를 그릴 때와는 다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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