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파벌 갈등과 임시정부의 위기
1. 이승만과 김구의 갈등
이승만과 김구의 갈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정치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두 인물의 갈등은 단순한 개인적 불화가 아닌, 당시 건국운동의 방향성과 전략적 차이를 반영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국제 외교를 통해 한국의 독립을 인정받으려 했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중요시하며 국제적인 외교적 지원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외교적 접근은 국제 사회에서의 인정을 통한 독립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김구는 무장 독립운동과 국내의 민중 참여를 강조했다. 그는 무장 독립군의 조직과 민족주의적 접근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실현하려 하였으며, 실제로 무장 투쟁과 국내 독립운동을 통해 독립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승만의 외교적 접근과 김구의 무장 독립운동은 서로 다른 전략을 추구하였으며, 이는 임시정부의 정책 결정과 실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갈등은 임시정부의 정치적 안정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두 사람의 이념 차이가 내부 분열을 초래하였다.
2. 임시정부 내부의 파벌 싸움
임시정부 내부의 파벌 싸움은 조직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건국운동의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었다. 임시정부의 내부에는 다양한 정치적 세력과 인물들이 있었으며, 이들 간의 갈등은 임시정부의 운영에 복잡성을 더했다. 이승만 계열은 이승만의 외교적 접근을 지지하는 측은 주로 외교적 노력과 국제적 인정을 강조했다. 이들은 임시정부의 외교적 활동을 주도하며, 국제 사회에서의 지지 확보를 우선시했다.
김구 계열은 김구의 측근들은 무장 독립운동과 국내 독립운동의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이들은 무장 독립군의 지원과 국민 참여를 강화하려 했으며, 실질적인 독립을 이루기 위해 무장 투쟁을 강조했다.
이러한 내부 갈등은 임시정부의 정책 결정과 실행에 혼란을 초래하며, 조직의 단합과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파벌 싸움은 임시정부의 주요 업무와 목표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었으며, 독립운동의 성공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3. 임시정부의 재정난과 외교적 고립
임시정부의 재정난과 외교적 고립은 건국운동을 지속하는데 중요한 어려움이 되었다.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을 위한 재정적 자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자원 부족은 정부의 활동을 제한하며, 독립운동의 지속성에 영향을 미쳤다. 재정난은 군사적 작전과 외교적 활동을 원활히 수행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다. 임시정부는 국제 사회에서의 인정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여러 외교적 문제와 제약으로 인해 국제적 고립 상태에 놓였다. 외교적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일본의 강력한 반발과 국제 사회의 관심 부족으로 인해 임시정부는 국제적으로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
4. 서재필의 불참과 건국운동의 관점
서재필은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강점기 초기에 중요한 개혁가였으며, 공화정 체제 수립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았다.
서재필은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을 지향하며, 임시정부의 초기 목표와 전략과는 다른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임시정부는 독립과 자주권 회복을 중심으로 한 활동을 진행하였으나, 서재필은 공화정 체제를 우선시하였고, 이로 인해 정치적 방향성이 달랐다. 서재필은 외교적 접근과 국제적 인정을 중시하였으나, 임시정부의 초기 활동은 주로 군사적 작전과 내부의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전략적 접근 방식의 차이로 인해 서재필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서재필은 미국으로 이주한 후, 임시정부는 상해에서 활동을 강화하였다. 정치적 상황과 거리감이 있었던 서재필은 임시정부와의 협력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직접적인 참여가 어려웠던 측면이 있다.
서재필의 불참은 임시정부와의 정치적, 전략적 차이와 개인적인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임시정부의 건국운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임시정부의 노력과 한계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서재필은 사실상 공화국의 아버지 이자 건국운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 당시 왕정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독립협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서 공화정을 주장한 이승만과 함께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 사회에서 외교적 방법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시정부가 겪고 있던 이승만과 김구의 의견 대립은 서재필에게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되질 않았다.
결국 임시정부는 건국운동의 주요 조직으로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내부의 갈등, 재정난, 외교적 고립 등 여러 도전에 직면했다. 이승만과 김구의 갈등, 내부 파벌 싸움, 재정적 어려움과 외교적 제약은 임시정부의 운영과 건국운동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재필의 불참은 정치적 이념과 전략의 차이로 인한 것이며, 이는 임시정부의 건국운동에 대한 이해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이러한 분석은 임시정부의 노력과 한계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며, 건국운동의 역사적 맥락을 깊이 있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