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꿈(2)

2. 권 씨와 기수

by 이문웅

덕수가 이 마을에 들어온 지 벌써 1년이 지나갔다. 38세의 총각인 그는 10년을 사귄 애인과 헤어진 뒤, 감정의 혼란과 삶의 방향을 잃은 채 방황하게 되었다. 이 외진 마을로 온 것도 그런 방황의 연장선이었다. 처음에는 마을의 술집에서 하루하루 술만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채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마을 어귀의 바위에 쓰러져 있던 덕수를 모퉁이의 권 씨가 발견하게 되었다.


권 씨는 급히 119에 신고했고, 덕수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병원에서 깨어난 후, 권 씨는 덕수를 자신의 아들처럼 돌봐주었고, 그의 따뜻한 정성 덕분에 덕수는 서서히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었다. 그는 마을의 일상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그 경험을 노트에 적어보며,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어느 날, 덕수는 아침에 일어나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지난 1년 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 권 씨의 배려, 그리고 기수 형님과의 유쾌한 식사들이 그의 마음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덕수는 조용히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글을 써내려갔다. "이 마을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주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힘들 때 서로를 도와준다." 그렇게 그는 글을 쓰며 마음의 짐을 조금씩 덜어냈다.


그때, 기수 형님이 덕수의 앞에 나타났다. "덕수야! 뭐해?" 그의 목소리는 항상처럼 밝고 힘차다. "막걸리 한 잔 할 겨?" 기수는 동네에서 소문난 막걸리 애호가로, 매일같이 술병을 들고 다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인물로 통하고 있었다.

"아뇨, 형님! 오늘 할 일도 많고, 아직 해가 중천인데 무슨 술이에요? 형님, 저하고 밥이나 먹어요." 덕수는 기수의 알콜 중독을 걱정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기수는 덕수의 제안에 일순 망설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아, 싫여... 밥은 뭐한다고 먹냐! 하는 일도 없음서..." 그 말 속에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삶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기수는 그동안 덕수에게 여러 번 술을 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간간이 먹어줘야지! 몸에 좋단 말이야." 기수는 덕수의 건강을 걱정하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덕수는 형님의 손에 밥그릇을 쥐여주며, "아, 할 일 만들려고 밥 자시는거 아녀유... 참... 나."라며 쑥스러워했다. 기수는 덕수가 쥐어주는 숟가락을 들고, "그럼 우리 동생이 주는 밥이니께 한술 떠 볼까? 잉."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고, 김치와 멸치볶음, 된장국이 올려진 밥상을 마주하고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 덕수는 가족 같은 정감을 느끼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식사를 하며 덕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이제 노는 것도 지겨운디,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유."

기수는 막걸리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말했다. "그거 참 반가운 소리네. 잘 생각 혔어. 낳고 괴기 잡으러 나가볼텨?"


덕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하고 같이 나가면 월매나 벌어요?"

기수는 덕수의 말에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야, 이놈아! 너한테 누가 돈 주고 일 시키냐? 하하하." 그의 웃음소리는 마을의 분위기를 환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덕수는 그런 기수의 유머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이... 그건 그렇죠... 하하하하." 덕수는 기수의 웃음에 동참하며 상황이 우습다고 느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중요한 순간이 되어갔다. 그런 기분으로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계속했다.


기수가 갑자기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으응... 박 선장! 원지 배 나갈 겨?"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이...잉... 내가 한 사람 데불고 가도 되것쓔?" 그는 덕수를 바라보며 대답을 듣고, 잠시 후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기수가 전화를 끊은 후, 얼굴이 갑자기 침울해졌다. 덕수는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 안되는겨?"

기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김치 한 점을 집어 먹으며 혓바닥을 내밀고 말했다. "같이 오랴....!" 그리고는 갑자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덕수는 그의 반응이 너무 유쾌해서 순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형님, 요즘 이 배 타는 일 구하기도 쉽지가 않아요. 하여튼 이번에 잘 배워서 너도 귀어정책자금 받을 수 있자녀. 잘 한 번 혀봐...잉." 기수는 진지하게 덕수에게 기대를 건네며, 그를 격려했다.

"네! 형님! 저 열심히 해볼게유!" 덕수는 그 말에 신나서 기수가 마시던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켰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이 마을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그들에게 기분 좋은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의 일상이 덕수에게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었다. 기수와의 대화 속에서 그는 자신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덕수는 지금의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며, 마을에서의 삶에 점점 더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리움과 아쉬움이 조금씩 희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날 저녁, 덕수는 조용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마을의 정적 속에서, 그의 마음속에서는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그동안의 힘든 경험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수 형님과의 만남 덕분에 그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 덕수는 다짐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기로 결심했다. 이 마을에서의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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