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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웅 3시간전

뜨레베르소네(1)

1. 칠수와 완수의 아침

충청도의 조용한 농촌 마을. 이곳의 아침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사방을 감싸는 산등성이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이 이슬이 맺힌 평야를 서서히 비출 때쯤, 칠수는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바람이 스치는 논둑에는 아직도 새벽 공기의 싸늘함이 남아있었다.


칠수는 언제나 그렇듯 먼저 소여물통을 확인했다. 농장 한쪽에서 우직하게 서 있는 황소들이 칠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배고팠지? 자, 많이 먹어라.” 소들에게 여물을 주며 칠수는 손으로 거칠게 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은 이미 땅과 소와 함께 살아온 흔적들로 거칠었다. 그의 손끝에 묻은 흙냄새는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기도 했다.


여물 주기를 마치면 닭장을 찾아가는 게 칠수의 일과였다. 닭장 문을 열자 몇 마리의 닭들이 깃털을 부르르 떨며 그의 발치로 모여들었다. 칠수는 닭들을 살피며 “오늘도 알 많이 낳았네, 고맙다.”라며 닭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닭장에서 알을 하나씩 주워 모아 손수건으로 닦아내던 그의 손길은 어느새 능숙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 곁에서 배웠던 이 일은 이제 그의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농장의 일을 마친 뒤에야 칠수는 집으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아침밥상에는 늘 그렇듯 직접 기른 채소와 된장이 올라와 있었다.


그의 식사에는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것이야말로 그에게는 소중한 일상이었다. 식사가 끝나면 칠수는 언제나 빠지지 않고 믹스 커피를 타서 한 잔 마셨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에게 이 뜨거운 커피 한 잔은 잠시나마 일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커피잔을 들고 마당에 나가 햇살을 받으며 한숨을 돌렸다.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논둑 사이로 흘러가는 물소리, 그리고 먼 산자락에서 울려 퍼지는 새소리가 그의 하루를 채웠다. 하지만 그는 마냥 조용한 아침을 즐기기보다는 언제나 장난기 넘치는 친구를 생각했다.


“오늘도 완수는 늦잠 자겠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완수는 그의 오랜 친구였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아침마다 전화로 나누는 농담은 둘에게 하루를 시작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전화 벨이 울리자 한참 만에야 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칠수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야, 완수야. 벌써 해가 중천인데 너는 아직도 자냐? 이렇게 잠만 자다가는 벼가 아니라 잡초나 수확하겠네.” 그의 말끝에 피식 웃음이 섞여 있었다.


완수는 잠기운을 떨쳐내지 못한 채 푸념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아이, 칠수야, 나는 밤 늦게까지 일했어. 시스템 하우스는 밤에도 챙겨야 된다고. 나도 곧 일어나니까, 좀 쉬라고.”


칠수는 여전히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네가 쉬라니, 내가 일을 멈추면 누가 이 마을을 다 먹여 살리냐. 빨리 일어나서 농장 좀 돌아봐라.” 그는 농담을 던졌지만, 그 안에는 늘 완수의 게으름을 놀리는 의도가 있었다.


완수는 칠수의 잔소리가 익숙한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알겠어. 너 커피 마시고 있을 시간에 나는 여기서 와인 잔에 물이라도 담아 마셔야지.”


둘의 대화는 마치 오래된 레코드처럼 반복되었지만, 그 속에는 서로를 향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어릴 적부터 옆집에서 자라나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던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아이처럼 서로를 놀리곤 했다. 그들에게 농사일과 농담은 마치 한 몸처럼 늘 함께였다.


칠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여전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완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요놈, 아직도 자는 건 아니겠지?” 전화벨이 한참 울리다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뚝 끊겼다. 칠수는 기다리지 않고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뚝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몇 번의 신경전 끝에, 완수는 결국 전화를 꺼버렸다.


칠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혀를 차고 웃었다. “요놈 봐라! 이젠 완전히 아웃시켜 버리네!” 그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이내 옆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당을 가로질러 완수네 집 대문 앞에 도착한 칠수는, 그 익숙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완수야! 노올자! 어딨냐, 이놈아! 완수야!”

완수는 창문을 살짝 열고 칠수를 힐끔 쳐다봤지만, 일부러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저놈은 절대 포기 안 해. 결국 들어올 거야.’

칠수는 대문 앞에서 계속 소리치며 끈질기게 완수를 부르고 있었다. “못 들은 척 해도 소용없어, 다 들려!  친구놈아, 나오라니까!” 칠수의 목소리는 그 고요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대문 너머에서는 완수의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여전히 침대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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