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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AND PEACE 27화

27. 오디션 날

by 이문웅

드디어 대망의 오디션 날이 되었다. 하루 종일 기다려온 순간, 우리가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중요한 무대. 호텔에서 오디션 장소인 아폴로 시어터까지는 약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가 이른 아침에 호텔을 떠났을 때는 시간이 넉넉할 거라 생각했지만, 뉴욕의 아침 교통은 예상을 벗어났다. 서울보다 더 심각한 교통체증에, 길은 끊임없이 밀리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긴장을 풀고 오디션에 집중하기 위해서 일찍 출발한 것이었지만, 길 위에서만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불행히도 앞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은 오디션 장소인 아폴로 시어터와 불과 5분 거리에 있었지만, 그 짧은 거리조차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차들이 꼼짝도 하지 않자, 우리는 더 이상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모두가 한순간에 긴장과 초조함에 휩싸였다. 차 안에는 우리만의 긴장감이 흘렀다.


재민이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해병대는 그냥 팍 뛰어갈 수도 있는데..."

그 말에 잠시 웃음이 나왔다. 나연이 대답했다.

"웃기시네. 해병대만 뛰냐? 나도 뛸 수 있다. 뭐."

미연이도 그 대화를 듣고 웃으려 했지만, 그때 박실장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차례는 거의 뒤로 밀려 있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박실장의 말투는 확신에 차 있었고, 그 말은 마치 긴장을 풀고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보았다. 차는 여전히 멈춰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10시가 조금 지나서, 드디어 극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비해 박실장은 여전히 여유롭게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면서 여전히 긴장감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힐끗 히 보았다.

박실장이 여유 있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은 제가 알아서 조절할 테니, 컨디션만 잘 조절하세요. 오디션의 긴장은 늘 그렇듯, 마지막까지 이겨내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의 말이 우리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긴장감을 풀어가며, 우리는 오디션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디션이 열리는 아폴로 시어터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장으로, 과거에 많은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펼쳤던 곳이다. 우리가 발을 디디며 처음 본 아폴로 시어터의 내부는 단순히 공연장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인 상징처럼 느껴졌다. 벽에는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사진과 기록들이 가득했고, 무대는 꿈을 꾸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 신비로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위기 속에서도 마음을 가다듬고 오디션에 임할 준비를 했다.


"우리 번호는 77번이야. 조금 기다려야 할 거야, " 박실장이 다시 말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 번호가 우리에게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참가자들이 오디션 대기실을 가득 채우며 불안과 기대가 섞인 목소리들을 내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와 발걸음 속에서, 이곳이 얼마나 많은 꿈과 열정이 함께하는 공간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곡을 부를까?" 기호가 물었다. "‘We Are’로 가자." 나연이 대답했다. 우리의 첫 곡으로 선택된 'We Are'는 밴드 피스의 대표적인 곡으로, 자유와 에너지를 상징하는 곡이었다. 우리는 이 곡을 통해 우리의 음악적 색깔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We Are'는 단순히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 아니라,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느낀 자유로움과 도전적인 정신을 표현한 곡이었다.


기호는 기타를 손에 쥐며 곡의 시작을 되새겼다.

"이 곡으로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줘야 해. 우리가 느끼는 뉴욕의 에너지를 그들한테도 전달하고 싶은 거야, " 기호가 말했다.

"맞아, 'We Are'는 우리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를 보여주는 노래야, " 나연도 힘주어 말했다.


연습이 끝나고 우리는 무대 뒤로 향했다. 무대 앞에서는 이미 다른 참가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 각자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 했다. 긴장이 풀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긴장이 더 강한 에너지로 변했다.


드디어 우리의 번호가 불렸다. 77번, 밴드 피스의 차례였다. 우리는 무대 뒤로 한 걸음씩 내딛으며, 함께 합을 맞추어 숨을 고르고, 각자 주어진 자리에 서서 마음을 다잡았다.


"Let's do this, " 재민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음악이 시작되었다. 기호가 기타를 치며 리듬을 타고, 재민이 드럼으로 강렬한 비트를 내며, 나연과 미나는 함께 노래를 시작했다. ‘We Are’의 첫 소절이 울려 퍼지자, 우리의 목소리는 하나로 어우러져 무대 위에서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관객들 역시 우리의 음악에 이끌려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무대 위에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오디션이 아니라 우리의 음악을 세상에 보여주는 기회였고,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놓치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부른 'We Are'는 우리만의 에너지로 가득 찼고, 무대는 우리의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노래가 끝났을 때, 우리는 숨을 고르며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눈빛 속에는 자신감과 기쁨이 가득했다. 오디션은 이제 우리의 손에 달려 있었다. 우리가 놓쳤던 시간도, 교통사고도 모두 의미 없어진 순간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누구보다 강렬하고, 진정한 자신을 표현한 무대 위에 있었다.


마침내, 밴드 피스의 공연이 끝났다. 'We Are'의 마지막 소절이 울려 퍼지자,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는 박수 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밴드 피스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눈을 맞추었다. 긴장과 기대,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이 한순간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심사위원 전원과 관객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해냈어, " 나연이가 웃으며 말했다.


밴드 피스는 무대 뒤로 물러나며 짧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음악이 끝난 직후의 그 순간, 밴드 피스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터뷰 시간이 다가오자, 나연이가 자리를 잡고 나섰다. 밴드 피스의 영어 실력을 고려할 때, 나연이는 당연히 이 자리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Hello! We are Band Peace, and we are so honored to be here today. Performing at the Apollo Theatre is a dream come true for all of us, " 나연이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We chose 'We Are' because it represents our journey and the energy we feel as a band. It’s not just a song, it’s our story."


나연이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밴드 피스는 뒤에서 그녀의 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차례차례 답을 기다렸다. 그녀의 영어는 유창하고 자연스러워서 인터뷰는 금세 흘러갔다. 밴드 피스는 나연이가 말하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지켜보았다.


그 후, 인터뷰를 마친 나연이는 돌아와서 말했다.

"다 끝났어요, 다들 잘했어요!"

밴드 피스는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능숙한 영어 덕분에 밴드 피스는 훨씬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연이는 그때부터 밴드 피스의 모든 의사소통을 맡게 되었다. 햄버거를 살 때도, 쇼핑을 할 때도,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속도위반 딱지가 붙었을 때도, 나연이는 통역을 맡아 밴드 피스를 대신해 상황을 해결했다. 이제 그녀는 단순히 통역자에 그치지 않고, 밴드 피스의 중요한 연결 고리이자, 밴드 피스와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없었다면, 밴드 피스의 여행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나연이 없으면 못 살아, " 기호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 밴드 피스의 비밀 병기야, " 재민이도 덧붙였다.


그런데 나연이는 그 모든 칭찬에도 여전히 겸손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저 팀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저는 그냥 여러분을 돕고 싶었을 뿐이에요.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멋진 경험을 하고 있잖아요."


밴드 피스의 여행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밴드 피스는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믿음 속에서 밴드 피스는 점점 더 큰 무대와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꾸며 나아가고 있었다.


다 끝나고 모두 한숨을 돌리려 할 때 그동안 조용히 연주에만 집중해 있던 미나가 환호성을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고 나연과 재민 그리고 기호와 수연까지 모두 함께 손을 잡고 환호성을 질렀다.


신대표와 박실장, 제이미도 함께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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