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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Nov 15. 2021

옷에도 역사가 담겨 있다

<옷장 속의 세계사-이영숙>

모든 것에는 역사가 있다. 내가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사실은 실감이 안 난다. 사람은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던가?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불행도 자신을 피해 갈 것 같다고 여긴다던데…. 그 기분이 이해된다. 내 물건들은 내 물건들일뿐인데 그 물건에 역사가 있다! 분명 수없이 배우고, 읽고, 들었는데도 말이다.    

 

트렌치코트와 청바지라는 흔한 물건들만 봐도 그렇다. 청바지가 골드 러쉬라는 사태로 등장했다니. 일꾼들이 입는 질긴 바지로 유행을 탔다는 건 유명해진 이야기지만, 여전히 낯설다. 청바지는 내게 가장 흔한 바지였으니까. 바지를 입었다고 하면 청바지를 의미하는 거였지, 트레이닝 바지나 면바지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기본적인 선택이라 큰 선호나 불평이 없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머리가 좀 굵어지고 나서야 알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충격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머릿속으론 알고 있고 이해도 했는데, 몸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접할 때마다 새삼스러운 걸 보면 받아들이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이론과 현실의 괴리 때문일 것이다. 이론에서는 서부 개척 시대 사금이 나오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몰려 원주민이 쫓겨나면서도 금에 대한 열망으로 도시가 구성되고, 그 사이에 오히려 생필품을 팔았던 사람들이 큰돈을 벌었다고 나온다. 그중 한 명이 청바지를 발명한 사람이라고. 본래는 마차에 쓰는 천이었는데 군수업자가 거래를 갑자기 무르는 바람에 청바지가 나오게 되었다고. 불발된 거래로 인해 어려워진 사업가의 모습은 요즘에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기에 친근하기까지 하지만, 그게 청바지의 시초였다니 무슨 운명의 장난 같다. 귀한 선물인 금이 있었음에도 원래 주민들은 불행을 맞이했다. 거기다 금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통을 겪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귀한 선물에 가장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제일 좋은 운명을 움켜쥐었다. ‘골드 러쉬’는 그 당시에도 ‘포티나이너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에 큰 흔적이었지만, 그때 나온 금보다도 그때 입은 옷이 이토록 큰 흔적을 남길 줄 누가 알았을까? 이 이야길 과거에 돌아가서 한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낯설어하는 건, 나와는 관계없는 역사여서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대임에도 가쿠란에 대해서는 확실한 경계를 느끼는 걸 보면 말이다. 청바지는 그냥 청바지지만, 가쿠란은 일제강점기부터 임진왜란까지 많은 교차점이 있어 그냥 옷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곳의 원주민이 아니라서 ‘남의 이야기’인 역사를 어색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기적인 발상이다. 트렌치코트도 얼마나 비극이 담긴 옷인가. 요즘에야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옷이고, 날씨만 받쳐주면 당장 꺼낼 예쁜 외투다. 시작은 예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말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의 양상이 뒤바뀌며 많은 희생이 따랐단 건 알고 있었다. 참호가 등장하고, 탱크와 기관총, 독가스가 등장하고…. 덤덤히 나열했지만, 저 단어 하나하나가 비극이다. 저 단어들이 나타남으로써 대체 몇 명의 목숨이 사라졌을까. 트렌치코트가 그 참상 속에서 버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건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트렌치라는 단어부터가 참호인 것도 몰랐는데, 비록 유행한 건 우수한 기능 덕분이라지만 괜찮다고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동물의 가죽으로, 깃털로 옷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사람들의 피로 나온 옷에도 끌리는 것이 아닐까. 터무니없이 잔인한 짐작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비극에 힘겨워하면서 비극에 열광하지 않던가.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들 중 대다수가 총알받이로 온 아프리카계 사람들이었다는 건 더 알려지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전쟁 당시 모순된 계약을 해 분쟁을 일으킨 것도. 자신들의 비극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우리의 짐작보다도 훨씬 잔인하고 사악해질 수 있다.  

   

물론 모든 물건들의 역사와 유래를 따지면, 편하게 쓸 수 있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건 가혹행위로 찾아내고, 어떤 건 결국 많은 피를 보았고, 어떤 건 악용되어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끼쳤으니까. 일일이 생각하자면 마음도 몸도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물건의 역사를 아는 건 중요하다. 외면할 일이 아니다. 물건을 사용하는 건, 그 물건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행동이다. 그러니 우리가 뭐든 써야겠다면 어떤 일로 물건이 나왔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난 비극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않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세상이 나오지 않겠는가. 역사의 힘을 모르는 우리가 아니다. 변화의 방법은 간단하다. 

조금 더 바람직한 세상을 위해서는 역사가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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