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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23. 2022

목화 아닌 모화(母花)

REAL flower-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목화

보통 졸업식에서는 형형색색의 향기로운 꽃다발이 오고 간다. 장미, 튤립, 프리지어, 작약…. 제각기 모양과 가격은 달라도 축하 선물은 늘 그런 꽃들이 차지해 왔다. 성인이 되는 순간, 학생들의 노력을 축복하는 의미로 말이다. 가능한 한 화사하고 생기발랄한 꽃으로 기쁨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많고 많은 청춘 드라마와 학생 드라마에서도 변치 않는 광경일 만큼. 그런데 장식용으로도 쓰이지 않고, 외면받았던 꽃이 새롭게 등장했다. 여태껏 없었던 꽃다발 유행과 함께,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것이다!    

 

삼신, 도깨비, 저승사자, 귀신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중심은 도깨비 신부 ‘은탁’이다. 앞선 존재들에 비하면 흔해도, 일으키는 변화가 남다르다. 천 년 묵은 인연을 풀어내는 여고생의 모습은 차라리 전사란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겉으로만 봤을 땐’ 그렇다. 당당하게 도깨비와 귀신들의 한을 풀어주는 어린아이는 속으로 늘 외로워한다.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해줬던 엄마가 일찍 떠나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가족보다 사랑을 주는 도깨비나 친절한 사장님을 만나도 바뀌지 않았다. 엄마의 빈자리는 누구도 채워줄 수 없었으니까. 그래, 엄마의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목화. 열매가 터지며 솜털이 나온다.>

목화가 등장한 건 그런 이유라고 여겼다. 꽃말부터가 ‘어머니의 사랑’이지 않은가. 목화는 보통 꽃이 아니다. 역사에서도 귀하게 대우받는 꽃이다. 먼 옛날 문익점이 고심해 훔쳐온 보람이 차고 넘치게 온기를 흩뿌린 식물이다. 그래서인지 꽃말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도, 목화의 꽃말만은 쉬이 수긍한다. 목화라면 그 의미에 딱 어울린다면서 말이다. 나 역시 그중의 한 명이었다. <도깨비>에도 고아로 외로워하는 은탁에게 온기를 전해주기 위해, 그런 꽃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졸업식에 목화 꽃다발이 등장하는 이유로는 타당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목화의 전설까지 알아보니 그 발상은 얕은 것이었다.     


옛날 한 마을에 ‘모노화’란 여인이 살았다. 부자도 마다하고 연모한 사람과 혼인해 자식을 낳고 잘 살던 그녀였지만, 전쟁이 난 후 남편을 잃고 딸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궁리를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렸지만 가난과 굶주림에 지쳐 결국 딸에게 자신의 살점을 먹였단다. 당연하게도 그 상처는 감염되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이를 안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는데, 어느 날 무덤에서 새싹이 돋았다. 딸은 어머니의 선물이라 여기고 키우려 했지만 전쟁통에 물을 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새싹은 물 한 방울 없이도 잘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가 보드라운 솜을 맺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혼자 남은 딸이 걱정돼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모노화의 이름에서 따 ‘모화’라고 불렀다. 나중에 이 이름이 목화로 바뀌어 전해졌다고 한다.      


기구한 가족의 사랑이다. 귀신이 되어서도 홀로 남은 딸을 걱정해 집으로 왔던 은탁의 어머니와도 겹쳐 보인다. 드라마에서 굳이 목화가 나온 건, 그런 사랑을 더 상징하고자 한 거였을지도 모른다. 꽃말만이 아니라 전설까지도 인물들의 사연과 닮아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들은 죽어서도 자식을 염려하고 있노라는 메시지를 삼신과 함께 전하려 했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 꽃이 나오고 이야기가 등장했을 텐데, 어떤 우여곡절로 저렇게 지어졌나 싶었다.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물론 맨 처음 든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목화의 솜이 얼마나 따뜻했으면 그게 어머니의 살처럼 느껴졌을까 한 게 전부였다. 사람들이 따뜻하고 편안한 품을 표현할 때 곧잘 어머니의 품이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의 사랑이라니 과하단 생각이 스치는 순간, 내 옷이 보였다. 요즘이야 옷을 기계가 만들어 주지만, 옛날엔 다 어머니들이 바느질해 주셨다. 일상복 하나 지어도 고생길인데 솜옷은 몇 배로 복잡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그냥 솜의 따스함이 전설을 다 만들었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분명 솜옷의 정성과 온기 때문에 목화 전설이 태어났을 거다.     


목화는 이토록 우리 생활에 녹아든 꽃이다. 개나리, 민들레, 진달래, 철쭉보다도 우리와 가깝다. 그저 ‘꽃’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젠 그것도 옛말이고, 오랜 외면 이후에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그 존재감을 제대로 자랑했지만 말이다. 한동안 어떤 학교든 간에 목화 꽃다발이 꼭 사진에 보였던 게 기억난다. 어떤 유행은 상술에 불과하지만, 목화 꽃다발의 유행은 너무 좋았다. 이런저런 배경을 다 떠나서 단순한 축하 이상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힘든 시간을 보낸 당신에게, 이렇게 잘 자라준 당신에게, 이제 나의 품을 떠나 성장할 당신에게 내 사랑을 선물한다고…. 누구라도 좋으니, 한 명이라도 목화 꽃다발을 보고 엄마의 사랑을 떠올려 서로 행복했다면, 그걸로 작가의 의도는 넘치게 성공한 걸지도 모른다. 은탁도, 우리도, 한동안 그 밋밋한 꽃송이를 잊기는 힘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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