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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 여인 Jun 16. 2023

지금은 장난이고?

유쾌한 아이랍니다.

언제부터인가 '유쾌하다'라는 말이 좋아졌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당신은 유쾌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준다면 참 좋겠다. 아직 들어본 적 없는, 희망사항이다. 


나의 최측근 중에 유쾌한 사람이라면 남편과 아들, 우리 집 두 남자를 꼽을 수 있겠다. 남편은 점잖은 외모와는 달리 귀여운 구석이 있으며 그의 재치는 언제나 나를 '까르르까르르' 웃게 만든다.

감사하게도 아들은 아빠를 쏙 닮았다. 누군가에게 아들을 소개라도 하게 되면 "유쾌한 아이랍니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내가 느끼기엔 퍽 적절한 표현이다. 유쾌한 두 남자와 살아서 그런가? 속상한 일에 질질 짜다가도 끝내 웃어버리며 '난 참 행복한 사람'으로 마무리된다. 


아들이 중 2 때의 일이다. 외모에 한창 신경 쓸 나이인데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나니 대략 난감이다. 좀 잠잠해져 이제 지나가나 싶다가도 또다시 울긋불긋 올라오는 여드름이 참 얄미웠다.


아들은 코로나 시기라  얼굴을 2/3 가량이나 가려주는 마스크를 의지했다.  웬만해서 마스크 쓰고 못생겨 보이기도 힘드니 말이다. 피부에 안 좋다는 걸 알지만 막상 가릴 수 있으니 마스크를 쓰면 편안해했다. 어쩌면 마스크 일상이 여드름을 더 악화시킨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슬림한 몸매를 자랑하더니 초등 고학년이 되어가며 점점 살이 올랐다. 평생 살이 안 붙을 것 같던 아들이었는데 한동안 길었던 목은 찾아볼 수가 없고 날렵한 턱 선도 살에 묻혔다.


지금 딱 보기 좋다? 고 다독이듯 말해주었지만 아들이 믿을 리 없었다. 어느 날, 아들이 다가와 물었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어?"


사뭇 진지한 태도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얼마나 귀여운가?

"엄마 눈엔 잘 생겼기만 한데? 엄마가 네 또래라면 너 엄청 쫓아다녔을 것 같아."

살이 찌고 부쩍 많이 생긴 여드름으로 외모에 자신이 없어졌나 보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 외모로는 지금이 네 인생에 가장 흑역사 시기니까 점점 멋져질 거야, 아빠만큼."


아들이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진지한 얼굴로 다가왔다.


"엄마, 나 좀 봐봐."


곧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시며 콧대가 드러나게 만들더니 힘겹게 말했다.


"내 코가 딱 이랬으면 좋겠어."


오, 아주 날씬한 콧날이 되었다. 표정은 아주 웃겼지만. 아들은 아빠의 오뚝한 콧날을 닮지 않아서 고민인 모양이다.


"살이 빠지면 콧대가 더 높아질 거야. 아빠도 크면서 점점 높아졌대."


위로해 준답시고 한 마디 더 거들었다.


"아휴, 우리 아들 살이 조금만 빠지면 장난 아닐 텐데."

아들이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며 맞받아쳤다.


"지금은 장난이고?"


순간 우리 부부는 물론 딸들까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아들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몸짓까지, 자꾸만 생각나서 화장실 가서도 웃고 설거지하다가도 쿡쿡거렸다.

'아들, 네 덕분에 엄마가 많이 웃는구나. 고마워.'


마음껏 웃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감사하고 감사한 하루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힘들어하는 아들이 그 특유의 유쾌함으로 이 시기를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다. 그땐 너무 웃겨서 못 해준 말 이제라도 해줘야겠다.


"아니~~ 지금도 장난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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